제트 여객기의 계보(55) Fokker F100

제트 여객기의 계보(55)
Fokker F100



글/ 이장호
 
2차 대전 중 등장한 제트 엔진은 작고 간단하지만 강력한 파워를 낼 수 있는 동력원으로 주목받았다. 1940년대만 해도 아직 제트 엔진이 완벽하게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잠재력이 충분했다. 전쟁이 끝나고 이름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영국의 D.H.106 코메트(Comet) 여객기는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로 구름보다 더 높게 비행할 수 있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항공사들은 제트여객기 도입을 주저하고 있었다. 이미 검증된 프로펠러 여객기로도 여객 수요를 충분하게 감당할 수 있었는데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신형 여객기를 구매하는 모험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코메트 여객기가 취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추락 사고에도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1940년대 후반에는 항공기를 이용하는 여행객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는 점도 있다. 이처럼 제한된 여객 수요는 제트여객기가 보급되는 데 큰 장애물이었다.

포커, 제트여객기 시대 직감
이러한 배경에서 1950년대의 단거리 노선은 제트여객기가 아닌 터보프롭 여객기가 주력 기종으로 활약했다. 1950년대 후반에 항공 회사와 항공 전문가들 역시 터보프롭 여객기의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영국의 BEA(British Europe Airways) 항공은 시속 600마일(약 966km/h)로 비행할 수 있는 제트여객기를 검토하고 있었고 엘렉트라(Electra), 뱅가드(Vanguard)와 같은 대형 터보프롭 여객기는 의외로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포커(Fokker)는 단거리 노선용 제트여객기를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보프롭 여객기 시대는 의외로 오래 지속됐고 단거리 터보프롭 여객기의 대명사인 포커 F27 프렌드십(Friendship) 여객기는 1986년까지 786대가 판매됐다. 그렇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고 있었던 포커는 단거리 제트 여객기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봤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 1962년 4월 F28 펠로우십(Fellowship) 개발을 발표했다. 후퇴각을 가진 주익, 2중 타이어, 3점식 착륙장치, 리어엔진(rear engine), T자형 미익을 가진 F28 여객기는 경쟁 기종인 BAC 1-11 여객기와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Fokker F27>

BAC 1-11 여객기는 고속비행에 적합하도록 개발돼 이착륙 거리가 길었다. 따라서 활주로가 짧은 지방공항에 취항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포커 F28 여객기는 정반대로 소형 공항에 취항이 가능한 단거리 여객기로 개발됐고 이착륙 거리와 여객 탑승 능력을 절묘하게 맞췄다. BAC 1-11 여객기가 89~109명이 탑승하는 데 비해 포커 F28 여객기는 동체 길이를 단축해 55~65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주익도 후퇴각을 절제하면서 양력이 많이 발생하도록 했고 이중 간격 플랩을 장착해 1,524m 이하의 짧은 활주로에서 운항이 가능했다. 착륙할 때는 주익 상면에 있는 스포일러와 동체 뒤쪽에 있는 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해 활주 거리를 줄이도록 했다. 포커 F28 여객기에 탑재되는 롤스로이스(Rolls-Royce) RB183 엔진은 소음이 적고 역추진장치(thrust reverser)도 없을 정도로 구조가 간단했다. 이렇게 개발된 F28 여객기가 우수한 단거리 이착륙 성능을 갖고 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늘날에는 일반적인 국제공동개발 방식을 처음 시도한 여객기도 포커 F28 기종이다. 개발자금이 부족했던 포커는 네덜란드 정부에 개발지원을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포커는 당시 서독 VFW, 영국의 항공업체와 제휴해 공동개발을 이끌어냈다. 포커는 기수, 중앙동체, 주익 페어링을 생산하고 최종조립, 시험평가, 마케팅을 맡았다. 한편 VFW는 전방동체, 미익을 생산하고 MBB는 엔진 포드와 파일론을 포함한 후방동체,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쇼트(Short)는 착륙장치와 주익 제작을 맡았다.



<Fokker F28>

1965년 11월에 서독의 LTU항공에서 첫 번째 주문을 받은 F28 여객기는 1968년 6월, 미국의 페어차일드(Faircgild)에서 미국 시장용 10대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페어차일드는 이전에도 포커 F27 여객기를 미국 시장에 들여와서 FH-227이라는 명칭으로 면허생산을 한 경험이 있다. 정확하게 시장의 요구를파악하고 단거리 여객기로 개발된 포커 F28 기종은 수주가 계속 이어져 1969년까지 25대가 판매됐다.

1967년 5월 9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F28 여객기는 1969년 2월 24일에 네덜란드 정부의 감항인증을 받아 같은 날 LTU항공에 납품됐다. 포커 F28 시리즈는 Mk.1000을 시작으로 개량형이 연속으로 등장했다. Mk.1000 시리즈는 65인승 표준형이며 Mk.2000 시리즈는 동체를 2.21m 연장해 79인승으로 개량한 모델이다. 이어서 개발된 Mk.5000(단축형 동체)/Mk.6000(연장형 동체) 시리즈는 주익 앞전에 슬랫(slat)을 설치하고 동체를 연장한 모델이다. 그러나 주익의 슬랫은 고객 항공사에 인기가 없었는데 이에 대응해 슬랫을 생략한 Mk.3000(단축형 동체)/Mk.4000(연장형 동체)을 내놓았다. 포커 F28 여객기는 1986년까지 1달에 1대씩 생산됐으며 전 세계 37개국 57개 항공사에 241대가 판매됐다.



<Fokker F28 Roll-Out>

100인승 기종으로 개발
F28 여객기 판매 호조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말 포커는 F28 여객기를 대체할 신형 여객기를 검토했다. 핵심은 급증하는 항공여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70~80인승에 불과한 F28 기종의 동체를 연장한 100~130인승 "슈퍼 F28" 여객기를 개발해 1984년까지 시장에 내놓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많은 항공사에서 소형 여객기(오늘날의 리저널제트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F28 여객기는 틈새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판매 증가에 한계가 있었다.

"슈퍼 F28" 계획은 보잉(Boeing) 737 여객기의 동체를 사용해 150인승으로 개발한다는 F29 계획으로 발전했다. 한편 포커는 MDF100 계획을 진행하던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와 제휴를 진행했지만 결국 1980년대 중반에 결렬되고 독자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협상이 중단되면서 개발 자금의 압박이 있었지만 포커는 성능이 입증된 F28 여객기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1983년 11월, 포커는 F28 여객기를 100인승으로 개량한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당시 포커는 기존 F27 터보프롭 여객기를 개량하는 F50 프로젝트를 병행해 추진했다. F100 여객기의 목표 가격은 당시 화폐 가치로 1,490만 달러(약 170억 원)였고 개발을 마치고 1987년부터 납품을 시작해 최대 750대를 판매할 계획이었다. F100 여객기는 F28 Mk.2000 시리즈의 동체를 5.51m 연장해 최대 107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길이가 연장된 주익, 글래스 콕핏(glass cockpit), 롤스로이스 테이(Tay) 엔진이 적용된 포커 F100 여객기는 앞서 등장한 F28 여객기와는 전혀 다른 기종으로 등장했다.

F28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F100 프로젝트 역시 많은 항공업체와 제휴해 개발과 생산이 진행됐다. 독일의 DASA는 중앙동체와 미익, 영국의 쇼트 브라더스(Short Brothers)는 주익, 영국의 다우티(Dowty)는 전방 착륙장치 생산을 담당했다. 미국의 노스롭그루먼(Northrop Grumman)은 복합재 엔진 나셀(nacelle), 역추진장치의 생산을 맡았고 메나스코(Menasco)는 주 착륙장치 생산을 담당했다.


<Rolls-Royce RB.183 Tay>

최대 실적 이끌어내
F100 여객기의 최초 고객은 스위스항공으로 1984년 7월에 구형 DC-9 여객기를 교체하고자 8대의 F100 여객기를 주문했다. 그렇지만 최초의 고객 유치에 성공한 이후 다음 고객을 찾기까지 포커는 1년 이상 어려움을 겪었다. 두 번째 고객은 네덜란드 KLM항공으로 1985년 5월에 10대를 주문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아메리칸항공의 요청에 따라 추력이 증가한 롤스로이스 테이 Mk.650 엔진을 탑재한 개량형 제작이 시작됐다. 아메리칸항공은 당초 10대를 주문했는데 고객 유치에 힘들었던 포커로서는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큰 결과를 거뒀다.

포커는 F100 여객기에 하니웰(Honeywell) FMS 및 콜린스(Collins) EFIS를 결합한 조종실을 적용하는 등 최신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F100 제트여객기와 F50 터보프롭 여객기 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무리가 따랐고 마침내 생산 지연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당초 1986년 중반에 예정했던 F100 시제기의 초도비행은 같은 해 11월 30일로 지연됐고 형식인증의 취득 역시 1987년 가을로 미뤄졌다.

F100 시제 2호기는 1987년 2월 25일 초도비행에 성공했으며 1,100시간의 비행시험을 마치고 같은 해 11월 20일에 네덜란드 정부의 형식인증을 취득했다. 1988년 2월 9일에는 최초 고객인 스위스항공에 1호기를 납품했고 같은 해 4월 3일부터 취리히~빈 노선에서 상업운항을 시작했다.


<Fokker F100>

한편 같은 해 7월 8일에는 테이 Mk.650 엔진을 탑재한 첫 번째 F100 여객기가 비행에 성공했다. 이 기체는 아메리칸항공의 요구로 개발된 개량형으로, 성능에 만족한 아메리칸항공은 1989년 2월에 기존 10대를 구입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75대로 수정했다. 이러한 판매 계약은 포커 F100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최대의 영업실적으로 프로젝트의 성공에 큰 동력원이 됐다. 1989년 5월 30일에는 추력이 증가한 개량형 F100 기종이 형식인증을 취득했고 같은 해 7월 1일에 US항공(이후 US Airways, 현재 아메리칸항공)에 처음 인도됐다. US항공은 아메리칸항공의 대량 구매를 보고 40대를 주문했다.

네덜란드에서 선보인 포커 F100 여객기는 유럽이 아닌 미국의 민간항공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점은 민간 항공시장에서 미국의 시장규모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F100 여객기의 판매에 성공하면서 포커는 크기를 80석 급으로 축소한 F80, 130석 급으로 확대한 F130 여객기 개발 가능성을 검토했다. 검토 결과 1992년 70인승 F70 여객기를 먼저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F28 Mk.4000 기체에 롤스로이스 테이 620 엔진을 탑재한 F70 여객기는 기존 포커 F27, ATR 42 기종은 너무 작고 보잉 737, MD-80 기종은 너무 큰 규모의 지방노선에 적합한 기종을 목표로 했다.


<Fokker F100>

기술서 성공했지만 파산으로
기술적으로는 개발에 성공했지만 F100 및 F50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자금이 부족했던 포커는 개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됐고 1987년 무렵에는 파산 직전에 몰리게 됐다. 다행히 네덜란드 정부의 긴급지원자금으로 위기를 넘길 수는 있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한 네덜란드 정부는 포커로 하여금 전략적인 파트너를 찾도록 했다. 전략적인 파트너로는 영국의 BAe(British Aerospace), 독일의 DASA를 대상으로 길고 힘든 협상을 벌여 1993년에 DASA는 포커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다만 ASA의 모회사인 다임러-벤츠(Daimler-Benz) 역시 구조개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포커에 큰 자금을 지원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포커 F70 기종 개발과 마케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개발비를 절감하기 위해 F70 시제기는 기존 F100 시제 2호기를 개조해 제작됐으며 1993년 4월 2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다음 같은 해 6월에 열린 파리에어쇼에서 정식으로 발표돼 15대(확정 10대, 옵션 5대)를 판매했다. F70 여객기는 1994년에 비행시험을 마쳤는데 고속으로 비행할 때 소음이 낮은 우수한 기종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1994년 10월 14일,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형식인증을 획득한 F70 여객기는 같은 해 10월 25일, 포드 자동차에 사내용 셔틀항공 기종으로 1호기를 인도했다. 1995년 3월 9일에는 인도네시아의 셈파티항공에 인도됐다.


<Fokker F70>

1994년 6월 9일, 포커는 자사에서 250번째로 생산한 제트여객기를 아메리칸항공에 인도했다. 그러나 DASA의 경영권 감독을 받는 포커는 경영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고 경쟁이 심한 민간여객기 시장에서 고전했다. 포커의 경영상황이 악화되면서 1995년 말까지 임직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했지만 1996년 1월, 다임러-벤츠는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고 포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그 결과 같은 해 3월 15일, 포커는 파산했다. 법적으로는 자산관리인의 감독 하에 생산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포커의 제트여객기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1996년 3월 21일에는 마지막 F100 여객기가 브라질의 TAM항공에 인도됐고 1997년 4월 18일에는 마지막 F70 여객기가 네덜란드 KLM 시티호퍼항공에 인도됐다. F100 여객기는 모두 551대, F70 여객기는 모두 77대를 수주했지만 생산공장이 파산하면서 F100 여객기 280대, F70 여객기 45대로 생산이 중단됐고 포커 F130 여객기 프로젝트 역시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다.


 
<Fokker F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