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슈퍼점보 Boeing 747



하늘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보잉의 초대형기 747은 기존의 여객기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무장, 항공기를 잘 모는 사람도 747은 알아볼 정도로 대형여객기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왔다. 지금은 A380에게 슈퍼점보의 자리를 내어줬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점보기 하면 보잉 747을 떠올리고 있다. 보잉 747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다뤄봤다.

글 홍은선

 

우여곡절 끝에 2층으로 디자인 확정

1965년 미 공군은 전략수송기(CX-HLS)를 개발하기 위한 입찰을 진행했고,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보잉은 록히드에게 패배, 이 수송기 디자인은 폐기처분 위기에 놓이게 된다. 당시 민항기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보잉 707, 더글라스 DC-8이 대서양을 연결할 정도로 긴 항속거리를 갖고 있지만 좌석 수가 적다는 한계에 직면한 상태였고, 이에 만족하지 못했던 팬아메리칸항공의 후안 트리페 회장은 보잉에 707, DC-8보다 항속거리도 2배 길고, 좌석 수도 2배 이상 늘린 신 기종을 개발할 것을 요청한다.

후안 트리페 회장은 25대의 항공기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했고, 때마침 수송기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던 보잉은 이것을 수정해 신형 여객기로 개발을 결정했다. 여기에 함께 참여했던 엔진제작사 프랫 앤 휘트니도 수송기사업 실패로 파산위기에 직면해있던 만큼 747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당시 737 개발팀에 있던 조 서터를 747 설계팀장으로 임명했고, 4,500여 명의 엔지니어를 747 개발에 투입했다. 조 서터는 처음에 완전한 2층 구조로 이뤄진 여객기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전체 2층 구조로 할 경우 더 긴 활주로가 필요하고, 안전상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우려되어 임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1층 구조로 설계를 변경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콩코드여객기가 함께 개발되고 있었고, 만약 콩코드가 성공한다면 모두들 초음속여객기를 원할 것이고, 747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747 여객기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화물기로의 변경을 염두에 두고 재설계에 들어갔다. 부피가 큰 화물을 쉽게 적재하기 위해 결국 부분 2층 구조로 디자인을 했고, 기수부분을 문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종석을 2층에 집어넣었다. 이를 통해 항공기 앞부분은 볼록하고 뒷부분은 얇고 길쭉한, 이전에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독특한 디자인이 탄생하게 됐다.

1968년 9월 30일 첫 번째 시험기체가 출고됐는데, 기존의 항공기보다 모든 면에서 크고 또 길었던 747이 과연 하늘로 무사히 날아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의 목소리가 컸지만 다음해 2월 9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보잉은 747의 크기와 새로운 생산 방식을 위해 미국 워싱턴 주 에버렛에 생산시설을 세웠고, 이후 그곳에서 717, 727, 737, 757 등 단일통로기를 제외한 모든 항공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첫 비행에 성공한 이후 1년간 비행시험프로그램을 진행했고, 1970년 1월 20일 발주항공사인 팬암에서 첫 상업운행에 들어가게 되는데, 뉴욕-런던을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747은 큰 문제없이 운항을 시작했고, 이 초대형기의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눈으로 확인한 다른 항공사들은 앞 다투어 747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1968년 9월 30일 시애틀 에버렛 공장에서 747이 처음 공개됐다. Photo Boeing


경제위기로 하향세

707이 최대 219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는 반면, 747 최초 버전은 이코노미만으로 객실을 꾸밀 경우 무려 550석을 장착할 수 있었다. 한 개의 항공편에 수용할 수 있는 승객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항공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더불어 항공권 가격도 저렴해진다. 결국 747의 등장으로 인해 항공여행의 문턱이 낮아졌고, 항공여행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다. 처음에 747의 크기가 워낙 크고, 긴 활주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 세계 공항들이 747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 세계 공항들이 747을 위한 활주로공사와 공항 리모델링을 진행했고, 전 세계 대부분의 공항에서 무리 없이 뜨고 내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747이 계속해서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1969년 미국에 큰 경제위기가 찾아왔고, 보잉은 747을 3년간 미국 항공사에 단 한 대도 판매하지 못했다. 오일 쇼크로 인해 747의 높은 운영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던 항공사들은 747을 속속 도태시켰고, 더 작은 기종인 DC-10,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 등으로 대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메리칸항공은 여객기인 747을 화물기로 전환시켰다. 미국 이외의 항공사들은 747을 허브공항과 작은 도시를 연결하는 노선에 주로 투입했고, 원래 주로 운항했던 노선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 일본항공 등 많은 항공사들은 여전히 747을 많은 승객을 운송해야하는 국내선 인기노선에 투입했다.
 
 




747-400으로 인기 급상승

그러나 보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뛰어난 성능으로 업그레이드된 파생형을 계속해서 개발한다. 엔진을 더 가볍고 추력이 좋은 모델로 변경하기도 하고, 연료탱크 크기를 늘려 항속거리를 연장시켰다. 항공사들은 이러한 보잉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다시 747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노스웨스트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에어프랑스 등 전 세계의 대형항공사들이 747-200, 747-300 등 업그레이드모델들을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대한항공이 1972년 10월 보잉 747-2B5를 처음 도입해 미주노선을 운항했다. 서울-도쿄-호놀룰루를 경유해 LA로 가는 장거리노선으로 비행시간은 총17시간에 달했다. 당시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747의 국내 도입은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던 중 1985년 보잉은 747의 최대 히트 기종인 747-400 개발을 공식화하고, 1988년 4월 28일 첫 비행, 1989년 2월 9일 발주항공사인 노스웨스트항공이 첫 상업운항을 시작한다. 747-400은 이전의 모델보다 탑재량이 크게 증가했고, 조종석도 대폭 디지털화됐으며, 엔진 교체에 따라 연비가 한 층 개선됐다. 747-400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윙렛’을 장착했다는 것. 그래서 747-400은 이전의 747과 외형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1988년부터 단종 된 2009년까지 총 694대가 생산되어 747 모델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운용항공사에는 에바항공, KLM, 루프트한자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콴타스항공 등이 있고, 우리나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747-400을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747은 상용기 이외의 목적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됐다. 에어포스원으로 불리는 미 대통령 전용기로 선택을 받았고,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의 일본정부전용기, 중국도 국가주석전용기로 747-400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새 에어포스원으로 747의 최신형 버전인 747-8i를 선정하기도 했다. 또, 미항공우주국(NASA)은 747-100을 특별 개조해 우주왕복선 셔틀로 활용했다. 이는 가장 무거운 수송화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였다. 747을 개조해 만든 항공기 수송기 드림리프터는 보잉의 신형기 787드림라이너의 동체를 수송하기 위해 총 4대가 제작됐다. 군용기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E-4 나이트워치가 있다. 이는 핵전쟁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국가 최고 지휘권자를 태우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최고사령부의 역할을 하는 비행기이다. ‘심판의 날 항공(Doomsday Plane)’으로도 불린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747-8. 기존 747과의 공통성이 뛰어나고 효율이 대폭 상승했다. Photo Boeing



747-8, 영광 되찾을까

747은 1970년 첫 인도를 시작한 이래로 37년간 ‘하늘의 여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슈퍼점보로서의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747-8이 나오기 전까지 총 1,418대를 생산, 737 다음으로 많이 생산됐다. 그러나 에어버스가 2005년 ‘하늘의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완전 2층 구조로 디자인한 600석 이상의 초대형기 A380을 내놓으면서 여왕의 자리를 내줘야했다. 여기에 더불어 뛰어난 항속거리와 채우기 쉬운 3~400석 규모의 좌석 수로 무장한 자사의 777까지 위협을 가해와 747-400의 주문량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잉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되찾기 위해 또 한 번의 모험을 시도했다. 바로 747-8 개발을 발표한 것. 엔진은 787 드림라이너에 장착한 GE의 신형엔진 GE-nx엔진을 채택했고, 2층인 어퍼 덱과 전체 길이가 길어졌다. 레이키드 윙팁(raked wingtip)을 장착해 항력을 줄여 연료효율을 향상시켰고, 소음을 대폭 줄여 환경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747-8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항공기는 중국시장을 겨냥한 모델이었다. 세계상용기시장 수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에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8’을 선택했다. 2010년 2월 8일 첫 비행에 성공하고, 1년 6개월 뒤인 2011년 10월 12일 발주항공사인 루프트한자항공에 처음으로 인도됐고, 현재까지 약 101대가 생산되어 고객사에 인도됐다. 우리나라의 대한항공은 여객기버전인 747-8i와 747-8F 화물기를 동시에 주문한 유일한 고객이기도 하다.

보잉은 초기 747 모델의 교체시기가 돌아오고 있다고 예측했고, 이에 대응하기위해 747-8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747-8은 구형기종과 95% 이상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어 조종사가 새 기체에 적응하는데 무리가 없고, 취항하는 공항 역시 기존 747이 내리는 모든 공항에 뜨고 내릴 수 있어 항공사에 큰 이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쟁기종인 A380의 경우 너무 큰 동체 크기로 취항할 수 있는 공항의 수가 제한적이었고, 긴 활주거리로 인해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공중에서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히 이 점을 강조했다.
 

747, 생산중단 위기

그러나 747-8은 보잉이 기대했던 만큼의 판매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2011년 생산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100대를 겨우 넘어섰고, 그나마도 여객기보다 화물기의 수가 더 많다. 2015년에는 단 한 대도 판매하지 못했고, 올해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황. 결국 보잉은 747-8 생산률을 월 0.5대로 줄일 수밖에 없다고, 심지어 생산중단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해 747-8을 새 에어포스원으로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아직 정식 주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보잉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747-8 수주잔고는 단 32대이다.

747이 1970년 한 해 동안에만 92대가 생산됐고, 1990년대까지는 호황을 누렸으나 747의 인기는 계속해서 둔화되고 있다. 화물기 수요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가파른 감소세를 보였다. 게다가 787, 777, A330, A350XWB처럼 효율은 높고, 적절한 좌석 수를 보유한 기종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747의 경쟁기종인 A380도 마찬가지. 에어버스도 2018년부터 A380의 생산률을 낮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잉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앞으로 구형 747의 교체 수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7월 보잉 상용기부분 담당 부사장 랜디 틴세스는 “최근의 상황은 약간의 부진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항공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고, 수요 역시 증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보잉은 화물기시장에서 930대의 신규수요와, 1,440대의 교체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747이 지난 40년간 1,500대 이상이 생산됐고, 현재까지도 상당한 수가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는 만큼 세계상용기시장의 성장과 항공여행 대중화에 미친 지대한 영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보잉의 전망처럼 747이 교체바람에 힘입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아니면 40년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영원한 슈퍼점보 747의 앞길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