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35) Douglas DC-10 (Pt.1)

제트 여객기의 계보(35)
Douglas DC-10 (Pt.1)
 

1966년 초,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은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엔진 공장을 견학했다. 이때 방문단의 눈에 들어온 엔진이 바로 군용으로 개발된 TF39 엔진이었다. 보잉 747 여객기가 개발되기도 전에 TF39 엔진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본 아메리칸항공 방문단은 TF39 엔진을 사용해 250인승 여객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팬암항공 때문에 국내선만 주로 운항하던 아메리칸항공으로서는 이를 통해 새로운 노선을 성공적으로 이끌 기회였다. 그렇게 등장하게 된 기종이 바로 더글러스(Douglas)의 DC-10이다.
 
보잉에게 역전당한 더글러스
한때 DC(Douglas Commercial) 시리즈로 미국의 대표적인 여객기 제작업체로 성장하던 더글러스는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 DC-4 프로펠러 여객기를 개량한 DC-6, DC-7 여객기를 내놓으면서 미국의 국내선 여객기 시장을 넓히고 있었다.

당시에 제트 여객기는 아직 생소한 기종이었고 이름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영국의 D.H. 106 코메트(Comet) 제트 여객기가 연속으로 추락하면서 제트 여객기에 대한 신뢰가 낮은 실정이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는 이미 확보한 프로펠러 시장에서 무리하게 신형 제트 여객기를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 미국 지방공항은 제트 여객기가 취항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급유지원만 하더라도 프로펠러 여객기와 제트 여객기는 연료의 종류가 다르다. 그런데 기존의 항공기용 가솔린 연료에 더해 제트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모든 지방공항에 설치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더글러스 경영진은 기존의 시장을 수성하는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 초, 보잉의 빌 앨런(Bill Allen) 회장은 후안 트립(Juan Trippe) 팬암(Pan American World Airways) 회장과 뜻을 같이하고 미 공군의 후원을 받아 보잉 707 제트 여객기 사업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1950년대 초반에 보잉 707 제트 여객기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제트엔진 기종이었고 모든 항공사가 앞을 다투어 구입하려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더글러스의 경영진은 자사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여객기 시장에서 실적이 한참 뒤지는 보잉에게 역전을 허용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미 보잉 707 여객기가 등장한 다음부터 보잉과 더글러스의 여객기 사업은 눈에 띄게 실적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더글러스는 이에 뒤질세라 서둘러 DC-8 제트 여객기를 개발했다. 제트 여객기 시장에서 선수를 빼앗긴 더글러스는 보잉 707 기종보다 약간 더 큰 여객기를 내놓았지만 정작 항공사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더구나 무리하게 자금을 동원해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면서 회사의 재정상태가 악화됐다. 그나마 국내선에 주로 취항하는 DC-3 여객기를 대체하기 위해 내놓은 DC-9 제트 여객기가 인기를 입으면서 판매가 일부 회복됐다.
 



군용기 사업과 함께 성장한 여객기 개발
한편 여객기의 발달 역사에서 군용기와의 관계는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여객기와 군용 수송기는 서로 다른 기종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기술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보잉 367-80 시제기에서 발전한 미 공군 KC-135 공중급유기와 보잉 707 제트 여객기는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간 여객기는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지 않고 항공업체 부담으로 개발하기 때문에 신형 기종을 개발할 때 업체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신형 여객기를 개발할 때에는 기체 자체의 설계보다는 엔진, 항전장비, 유압장치, 전기장치 등 세부적인 장비를 개발하는데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투입된다. 이러한 장비를 기체와 함께 개발하는 경우 비용도 많이 필요하며, 어느 하나의 장비 개발이 지연되면 전체 여객기의 개발이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민간 여객기를 개발하는 경우에는 되도록 이미 검증된 장비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새로운 개념의 여객기를 개발할 때 기존 장비를 사용하기 힘든 경우 부득이하게 새로운 장비를 개발해야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보잉 747 점보제트(Jumbo Jet) 여객기의 개발사례다. 보잉 747 여객기의 경우 기존의 여객기와 차별되는 초대형 여객기로 기존에 사용하던 제트엔진으로는 추력이 부족했고 새로운 대형 엔진 개발이 필요했다.
그러나 신형 제트엔진을 새로 개발한다는 것은 매우 큰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엔진의 개발이 지연되면 신형 여객기는 이륙조차 할 수 없다. 보잉 747 여객기의 경우에도 초대형 여객기에 적합한 제트엔진을 새로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보잉의 개발팀은 미 공군 C-5 갤럭시(Galaxy) 초대형 수송기의 개발 성과를 사용해 개발 위험을 크게 줄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미 공군 C-5 초대형 수송기를 개발하면서 100톤에 달하는 화물을 싣고 이륙할 수 있는 충분한 파워를 공급할 수 있는 TF39 엔진이 개발된 것이다. 국방예산으로 개발한 TF39 엔진은 곧바로 민간 여객기의 개발에도 응용됐고 민간용 CF6 엔진이 개발됐다. 보잉 747 여객기에서 자리를 잡은 제너럴 일렉트릭 CF6 제트엔진은 1970년대 초반에 경쟁자가 없는 최강의 엔진이었다. 또한 미 공군 C-5 수송기 개발과 보잉 747 여객기 개발은 대표적인 민군 겸용 기술의 성공사례다.

더글러스의 경영진은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자금을 동원해 새로운 민간 여객기를 개발하는 사업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특히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면서 미 공군, 해군과 해병대는 새로운 군용기를 개발해 공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영진의 시각에는 민간 여객기 사업보다는 전통적인 군용기 사업이 더 매력적이었다. 군용기 사업은 정부의 예산을 선수금으로 받아 개발하고 생산하기 때문에 사업 자금을 부담할 필요가 없는 특징이 있다. 더구나 당시에는 전쟁으로 인한 군용기 생산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글러스 경영진은 군용기 사업에 더욱 집중했고 전투기, 공격기, 폭격기, 수송기 등 다양한 종류의 군용기를 개발하고 생산해 미국 정부에 납품했다.

1964년, 미 공군은 100톤의 화물을 탑재하고 태평양을 직접 횡단할 수 있는 새로운 초대형 수송기의 개발을 시작했다. CX-HLS라고 이름이 붙여진 신형 수송기 개발 사업은 군용기 사업을 중요시하는 더글러스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경쟁사인 보잉, 록히드(Lockheed) 역시 초대형 사업인 CX-HLS 사업에 도전했고 결국 록히드 C-5 갤럭시 기종이 승리했다. 이 사업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보잉은 미 공군에 제안서를 제출하기 이전에 상당한 수준으로 기본설계를 마친 상황이었다. 이러한 개발 성과를 버리기 어려웠던 보잉은 CX-HLS 설계기술과 TF39 엔진을 활용해 보잉 747 여객기를 개발했다.
 



수송기 사업 실패로 착수된 DC-10
더글러스 개발팀도 C-124,C-133 수송기와 같은 대형 수송기를 개발한 경험을 충분하게 활용해 의욕적으로 도전했다. 그러나 프로펠러 수송기와 제트 수송기의 기술격차는 매우 컸으며 경쟁에서 실패했다. 더글러스의 개발팀은 비록 미 공군 대형 수송기 사업에서 실패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에 따라 개발팀은 이미 작성한 개발방안을 활용해 DC-8 여객기를 능가하는 새로운 대형 여객기의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 더글러스 개발팀이 검토한 개념은 2층 구조로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대형 여객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경쟁사인 보잉에서 개발하던 보잉 747 여객기와 비슷했다. 더글러스 개발팀은 당시 생산 중인 DC-9 여객기의 뒤를 이어 개발하는 기종인 만큼 DC-10이라는 명칭을 붙여 진행했다. 이처럼 대형 여객기로 시작한 DC-10 프로젝트는 단순히 크다는 것이 아니라 DC-8 여객기로 회복하지 못했던 제트 여객기 시장을 다시 되찾는다는 더글러스 개발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2층 구조의 대형 여객기로 진행하던 DC-10 개발은 그대로 진행됐더라면 보잉 747 여객기와 비슷한 경쟁기종으로 완성됐을 것이다. 그러나 1966년에 제너럴 일렉트릭 엔진 공장을 방문한 아메리칸항공의 관계자는 TF39엔진을 보고 전혀 다른 개념으로 신형 여객기를 구상했다. 미국과 유럽을 이어주는 황금노선인 대서양 횡단노선을 팬암항공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아메리칸항공은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국내선에 집중했다. 국토가 넓은 미국은 국내선 노선의 경우에도 장거리 노선은 6~7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뉴욕~로스앤젤레스, 워싱턴 DC~로스앤젤레스, 뉴욕~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마이애미와 같은 주요 노선은 대서양 횡단노선에 뒤지지 않는 황금노선이다. 이러한 노선에 보잉 707, DC-8 여객기와 같이 폭이 좁은 기종을 투입해 좌석공급 부족에 시달리던 아메리칸항공은 국내선의 간선노선에 투입할 대형 여객기의 개발을 요구했다. 또한 이 기종들은 1950년대 기술로 개발된 구형 기종이었다.

아메리칸항공이 요구한 국내선용 대형 여객기는 25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1층 구조의 여객기로 1966년 3월 25일 정식으로 제안요구서를 공고했다. 이때 요구한 주요 성능은 다음과 같다.
 
1) CF6(TF39)급 추력(40,000lb)을 가진 고 바이패스 터보제트 엔진(high by-pass turbofan engine)을 탑재
2) 일반석(economy class) 기준으로 250명의 승객이 탑승(좌석의 간격은 36인치(약 91.5cm))
3) 승객 1인당 250파운드(약 113kg)의 수하물과 별도로 5,000파운드(약 2,270kg) 위탁화물 적재
4) 1,850해리(약 3,430km)를 비행할 수 있는 항속거리
5) 기체의 크기는 날개폭 155피트(약 47m), 길이 180피트(약 55m) 이내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더글러스는 바로 개발에 착수할 것을 공식으로 발표했고, 경쟁사인 록히드 역시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아메리칸항공이 요구한 성능은 더글러스 개발팀에서 검토하던 설계안과 약간 다르기는 했지만 설계를 약간만 바꾸면 바로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더글러스 경영진과 개발팀은 아메리칸항공이라는 대형 항공사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기종을 적시에 개발한다면 보잉에게 빼앗긴 민간 여객기 시장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DC-10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