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백곰에서 현무-4까지” 국내 지대지미사일 개발사

장거리 대응 타격 능력을 기반으로 오늘날 우리 군의 강력한 억제전력으로 자리 잡은 지대지미사일. 1979년부터 42년간 미사일 개발을 제한해 온 ‘한미 미사일지침’이 지난 5월 21일 종료되면서 앞으로 더욱 강력한 억제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1987년 우리나라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백곰’을 시작으로 최근 개발 중인 ‘현무-4’에 이르기까지 우리 군의 지대지미사일 개발 역사를 되돌아봤다.
 
백곰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
1970년대 북한의 위협과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개발된 백곰(NHK-1)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세계 7번째로 개발한 탄도미사일이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자적인 미사일 개발을 극비메모를 통해 지시해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말기인 1978년에 사거리 160km의 백곰 미사일이 탄생했다. 


▲현무-2A (Photo : 국방부)

당초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할 기술이 부족했다. 다행히 1972년 미국과의 협정을 통해 도입한 나이키 허큘리스(Nike Hercules) 지대공미사일을 역설계해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 나이키 허큘리스가 1950년대에 개발된 미사일인 만큼 진공관 회로 대신 반도체를 사용하고, 아날로그 방식의 유도신호 처리도 컴퓨터화하는 등 기체를 새로 재설계했다.
또한 미사일 개선을 위해 전문가들이 직접 미군과 레이시온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록히드로부터는 고체 미사일 추진제를 구매하는 등 끈질기게 개발에 매진한 결과 1978년 9월 26일 백곰 시험에 성공했다. 이후 8회에 걸친 비행시험을 거쳐 1980년 말 사업을 완료하면서 1개 포대분(시험용 운용포대)이 육군에 배치됐다.  


▲1978년 9월 26일 국산 지대지 미사일인 ‘백곰’의 시험발사를 참관 중인 박정희 대통령
(Photo : 대통령 기록관)

하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핵무기 개발을 조용히 추진하던 가운데 미 정부가 백곰을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미사일로 간주한 것은 물론,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박정희 정부가 지대지미사일을 확보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러한 미 정부의 입장을 담은 권고 서한이 1979년 9월,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을 통해 한국 정부에 전달됐고, 이에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이 동의하면서 미사일 사거리를 180km로 제한했다.
백곰이 개발된 뒤 초기 생산물량이 시험용 운용포대에 배치됐지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 등으로 양산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군사반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백곰에 대해 “나이키에 페인트를 칠한 것을 국산 미사일이라고 사기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신군부는 국내 미사일 개발 조직을 모두 해산시키는 등 독자적인 탄도미사일 개발 계획을 모두 포기했고, 한미 미사일지침을 통해 사거리 180km, 탑재중량 500kg으로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고, 발사체 개발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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