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26) Douglas DC-9(2)

제트 여객기의 계보 (26)
Douglas DC-9 (2)

 
 
707, 727로 더글러스 앞질러
DC-9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항공사가 바로 델타항공이다.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공항에 거점을 두고 미국 전역에 걸쳐 수많은 국내선을 운항하는 델타항공은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이어주는 지방노선에 투입할 적당한 기종을 필요로 했다. 1960년대 초에 들어서자 델타항공뿐만 아니라 유나이티드항공, 아메리칸항공 등 미국의 주요 항공사는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할 새로운 기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보잉은 707을 기본으로 항속거리를 단축한 보잉 720을 내놓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720의 실패를 분석하고 대안으로 개발한 727은 4발 엔진을 3발 엔진으로 변경하고 지원설비가 부족한 지방공항에서 취항이 가능하도록 편의장비를 설치하여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여객기 사업에 있어서 DC-1을 시작으로 DC-3, DC-4, DC-7에 이르는 일련의 히트작을 내놓았던 더글러스는 여객기 분야에서 경쟁업체인 보잉 대비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판매량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트엔진 여객기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등장한 707은 만년 후발업체이던 보잉을 선두업체로 올려놓았고 더글러스는 경쟁에서 뒤쳐지게 됐다.

보잉의 제트여객기 사업에 크게 기여한 기종은 707이지만 실제로 생산수량과 매출액 분야에서 회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종이 바로 727이다. 707이 856대, 보잉 720 기종이 154대가 생산됐던 반면에 727은 무려 1,832대가 생산됐고 보잉은 707, 727 등 단 2가지 기종만으로 제트여객기 사업에서 최강의 업체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중단거리용 여객기 개발 결정
상황이 이렇게 되자 원년의 여객기 선두업체인 더글러스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다급한 마음에서 무리하게 개발한 기종이 바로 DC-8이었다. 그러나 DC-8은 급한 마음에 항공사의 의견을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개발한 관계로 707과 비교할 때 항속거리는 충분했지만 객실 내부가 좁아 2-3열 배치로 좌석을 배치하여 경쟁기종인 707 대비 승객탑승 능력이 떨어졌다. 물론 좌석의 간격을 줄여 3-3열 배치를 할 수 있었지만 장거리 기종인 만큼 승객의 입장에서 좁은 좌석을 선호하지 않아 DC-8은 판매가 저조했고 707의 절반 수준인 556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한편, 제트 여객기의 경쟁이 장거리 국제선에 이어 중단거리 국내선으로 이어지고 보잉에서 적절한 시기에 707의 개발기술을 활용, 3발 엔진으로 변경한 727을 내놓자 더글러스 입장에서는 매우 초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DC-8 개발을 추진하면서 회사의 경영사정이 급격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국내선 전용 기종을 새롭게 개발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글러스 경영진은 새로운 기종의 개발에 주저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이 1959년에 프랑스 수드 카라벨(Sud Caravelle) 여객기를 국내선 기종으로 도입하자 더글러스는 카라벨 쌍발 여객기를 미국 내에서 면허생산을 하여 판매하는 대안을 검토하기에 이르렀고 프랑스 수드와 1960년부터 2년간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수드 카라벨은 1950년대 항공기술로 개발한 구형 기종인 만큼 기술적으로 진부했고 엔진을 교체하더라도 경쟁기종인 727과 경쟁을 펼치기 힘들었다.

더글러스와 슈드가 공동으로 카라벨 여객기를 개조한 국내선 기종의 개발을 검토하던 1961년에 영국의 BAC는 단거리 노선에 적합한 BAC 1-11 쌍발 여객기를 새롭게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 경영진과 개발팀은 구형 기종을 개조하여 매력이 업는 기종을 내놓을 경우 BAC 1-11 기종과 사실상 경쟁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더글러스 경영진은 다소 무리하더라도 시장 전망이 밝은 중단거리 노선용 여객기를 새롭게 개발하기로 했다.

더글러스 D-2086 개발을 시작하면서 개발팀은 경쟁기종인 수드 카라벨이나 BAC 1-11 기종을 강하게 의식해 쌍발엔진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기체의 크기는 최대의 경쟁기종인 727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개발한다면 727이 취항하기 힘든 지방도시의 소규모 공항까지 커버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소규모 공항에서 주로 활약하던 50인승 구형 여객기를 대체하는 최대이륙중량 31톤, 63인승 쌍발 여객기로 개발을 진행했다.

 
DC-9, 단거리노선에서 큰 인기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어렵게 등장한 DC-9은 경쟁기종인 727과 같은 프랫 앤 휘트니의 JT8D 터보팬 엔진을 탑재하면서도 엔진을 쌍발로 축소했지만 최대 109명이 탑승 가능하다. 최대 125명이 탑승할 수 있는 727과 비교할 때 탑승 인원은 약간 적었지만 쌍발엔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항공사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성이 높은 기종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더글러스 개발팀은 DC-9을 개발하면서 보유한 개발기술을 활용하고 새로운 시도에 따른 위험을 피하고자 DC-8 의 동체를 이어받아 2-3열 배치를 유지했다. 이러한 시도는 새로운 기종에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할 수 있지만 새롭게 동체를 설계하는 것보다는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당시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더글러스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개발비용을 줄이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장거리 노선용으로 개발한 DC-8와 달리 비행시간이 짧고 승객이 많지 않은 중단거리 노선용으로 개발한 DC-9이 경쟁기종인 727보다 객실이 좁다는 점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6열로 좌석을 빼곡하게 설치한 727과 비교할 때 5열로 배치한 DC-9은 오히려 덜 답답한 측면도 있었다. 미국의 국내선 노선의 경우 요일별로 탑승률의 변동이 심한 편인데 작은 규모에 좌석 배열이 고밀도가 아닌 DC-9의 경우 승객이 많지 않더라도 탑승률이 크게 나쁘지 않아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기종이었다. 더구나 2개의 엔진을 사용하는 DC-9은 연료소비를 727보다 1/3 정도 절약하면서도 탑승 인원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인기 만점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727은 주로 승객이 많은 중거리 지방노선을 차지했고 DC-9은 승객이 덜 몰리는 중단거리 지방노선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DC-8과 달리 인기를 모으면서 성공한 DC-9은 판매를 시작한 이후 급속하게 판매수량이 증가했는데 1965년에 최초의 고객인 델타항공에 5대를 인도하면서 운항을 시작한 이래 1966년 69대, 1967년 153대, 1968년 202대로 생산과 판매량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DC-9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인 시리즈(Series) 10은 최대의 경쟁기종인 BAC 1-11 기종이 미국 시장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개발한 기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쌍발엔진, T자형 꼬리날개를 비롯한 외관이 비슷하며 기체의 규모도 비슷하다. 모두 137대가 생산되어 델타항공을 비롯한 주요 항공사에 판매됐으며 여객기뿐 아니라 화물기로도 활약했다. 최대 109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도록 미연방항공청(FAA)의 인증을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이코노미 클래스로는 90인승, 퍼스트와 이코노미를 혼합할 경우에는 72명(16명+60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성공적으로 시작한 시리즈 10에 이어 등장한 시리즈 20은 스칸디나비아(SAS)항공의 요구로 개발했으며 엔진의 파워를 높여 좀 더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주익을 개량한 모델이다. 불과 10대만 생산됐지만 ‘DC-9 Sport(스포츠)’라고 불릴 정도로 상승능력이 우수했으며 SAS항공에서 높이 평가한 기종이다.
 

다양한 파생형으로 진화
경쟁기종인 727보다 작은 기체에 쌍발 엔진을 조합하여 경제성이 높은 여객기로 등장한 DC-9은 제트 여객기 시장에서 일종의 틈새시장을 개척하면서 항공사로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사정이 이러하자 경쟁업체인 보잉 측에서도 뭔가 DC-9에 대항할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보잉은 기체의 사이즈가 큰 727 여객기보다 작은 기종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등장한 새로운 기종이 바로 보잉 737-100이다. 737은 DC-9와 같이 JT8D 엔진을 쌍발로 탑재하고 최대 103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개발한 기종으로 경쟁기종인 DC-9를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경쟁기종인 737-100이 등장하면서 소형 기체에 경제성을 갖춘 DC-9의 장점이 사라지자 미국의 항공사들은 기존의 DC-9를 개량한 대형 기종을 요구하게 됐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등장한 기종이 바로 DC-9 시리즈 30이다.

DC-9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은 수량인 662대가 생산되어 베스트셀러로 인정을 받는 시리즈 30은 전체 DC-9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시리즈 30은 1967년에 이스턴 항공에 처음 납품됐으며 기존 DC-9-10/-20 시리즈의 동체를 4.5m 연장하여 최대 127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다. 시리즈 30의 주익은 기본적으로 시리즈 20과 같은데 시리즈 10 대비 폭이 0.9m 늘어났으며 날개 전체 폭에 걸쳐 앞부분에 슬랫이 설치되어 이착륙 속도를 줄여주는 동시에 비행속도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공기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다.

시리즈 40은 시리즈 30 보다 동체를 2m 더 연장한 모델로 최대 128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다. 엔진은 시리즈 20/30과 같으며 모두 71대가 생산됐는데 최초의 고객인 스칸디나비아항공에 1968년부터 인도했다.

DC-9의 마지막 모델인 시리즈 50은 그동안 개발한 기술을 모두 집약한 모델로 시리즈 40 대비 동체를 2.49 m 연장하여 최대 139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다. 1975년 8월에 이스턴 항공에 처음으로 인도했으며 모두 96대가 판매됐다. 시리즈 50은 단순하게 시리즈 40의 동체를 연장한 모델이 아니며 엔진을 JT8D-15 또는 JT8D-17으로 개량하여 엔진의 파워를 높여 전체적인 비행성능이 높아졌다. 또한 비행성능의 향상과 더불어 경쟁기종인 보잉 737을 의식하고 실내 디자인을 새롭게 변경했다. DC-9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파란색 좌석 역시 시리즈 50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디자인이다.

미국의 여객기 전문업체인 더글러스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67년에 전투기 제작사 맥도넬(McDonnell)에 합병되어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에도 DC-9-50 시리즈는 주력 기종으로 생산을 계속했다.
 

DC-9, 군용기로도 적극 활용
그러나 1968년 2월에 경쟁기종인 보잉 737이 상업운항을 시작한 이후 DC-9 시리즈는 여객기 시장에서 급격하게 지위를 잃었다. 판매실적을 보더라도 1968년에 202대를 판매하면서 최고 정점을 찍은 이후 1969년 122대, 1970년 51대, 1971년 46대, 1973년 32대, 1974년 48대, 1975년 42대 등 부진한 판매실적을 이어갔다. 이러한 결과는 같은 쌍발엔진 여객기이지만 3-3 배열로 좌석을 설치한 737이 좀 더 많은 승객이 탑승할 수 있었고 경제성이 높았다. 무엇보다도 737이 DC-9 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장점은 727을 보유한 항공사의 경우 737과 유사한 점이 많고 일부 부품과 지원 장비를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어 운용유지가 쉽다는 것이었다.

727을 겨냥해 개발한 DC-9은 틈새시장을 개척하면서 순조롭게 성장했지만 결국 737의 반격에 패하고 말았지만, 여객기뿐만 아니라 미 공군과 해군에서 군용기로도 크게 활약했다.

중단거리노선에 적합한 경제적인 기종으로 등장한 DC-9의 장점에 주목한 미 공군은 긴급 환자수송을 위해 DC-9-32F 화물기를 도입했고, 개조해 C-9A 나이팅게일이라는 명칭으로 1968년과 1969년에 21대를 구입했다. C-9A 기종은 평소에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전출과 휴가로 여행하는 미군 병사를 수송하며, 긴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긴급후송이 가능하도록 의료설비가 기내에 설치되어있다. C-9A 수송기는 환자수송이나 화물적재가 편리하도록 좌측 동체에 대형 화물도어와 램프를 설치하여 지원 장비가 없는 공항에서도 지원임무가 가능하도록 제작됐다. 미 공군은 C-9A 수송기를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 배치하고 베트남 전쟁 당시 중상을 입은 미군 병사를 후방지역으로 후송하는데 투입했다.

미 해군의 C-9B 스카이트레인 II 수송기는 미 해군, 해병대에서 인원 및 화물수송에 사용하는 기종으로 1973부터 1976년까지 24대를 구입했다. 미 공군은 C-9A 수송기와 별도로 귀빈수송용으로 3대의 VC-9C 수송기를 1976년에 구입했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