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25) Douglas DC-9(1)

제트 여객기의 계보 (25)
Douglas DC-9 (1)

 

중단거리용 신형기 개발
넓은 국토를 가진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주요 대도시를 이어주는 국내선 항공노선이 일찌감치 발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군용기로 사용하던 C-47 수송기가 민간 항공사에 대량 매각됐고, 마틴 2-0-4, 콘베어 CV-240 등 새로운 중형 여객기가 속속 등장하면서 대도시에 이어 중소도시를 연결하는 지방노선도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민간 항공시장의 발전에 힘입어 1950년대 말에 보잉 707, 더글러스 DC-8 기종과 같은 대형 제트여객기가 등장하면서 뉴욕, 워싱턴 DC, 시카고, LA 등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장거리 노선에 제트 여객기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제트 여객기는 아직 진귀한 기종이었기에 대도시를 이어주는 제트 여객기와 대조적으로 중소도시를 이어주는 중단거리 노선은 아직도 왕복엔진을 사용하는 구형 여객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일부 노후한 DC-3, DC-4 여객기를 대체하는 틈새시장을 노리고 콘베어 CV-540, 록히드 L-188 엘렉트라와 같은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기종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조차 지방노선에 제트기를 투입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거리가 짧은 지방노선의 경우 왕복엔진 여객기를 운항하더라도 속도 측면에서 그렇게 뒤지지 않기 때문에 터보프롭 엔진으로 개량하는 편이 적당하다고 주장하는 편이 있는가 하면 제트 여객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일반 여객을 계속 구형 여객기에 탑승하도록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처사라고 주장하는 편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국의 록히드와 영국의 빅커스는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여객기를 내놓으면서 틈새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었다.

여러 국가들이 인접한 유럽의 경우 비행거리가 비교적 짧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찌감치 프랑스의 수드항공은 중단거리 노선에 적합한 카라벨 제트 여객기를 개발하여 이 부분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형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과 더글러스는 확고하게 대형 제트기의 개발을 고집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대서양 횡단노선과 같은 장거리 노선의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이윤이 적은 소형 제트 여객기를 새로 개발하는 것은 영업 측면에서 실익이 적다고 생각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보잉과 더글러스 역시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과 달리 내부적으로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할 제트 여객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존의 장거리 제트 여객기를 기초로 소형화한 중단거리 노선용 제트 여객기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기종이 바로 보잉 720 여객기이었는데 4발 엔진을 탑재하고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한 결과 기대와 달리 그리 경제적인 운항 기재가 아니었기에 865대가 판매된 보잉 707 기종과 달리 불과 154대를 판매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더글러스의 경우에도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당시 개발 중이던 DC-8 여객기를 보완할 수 있는 중단거리 노선용 여객기를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중거리용 4발 엔진 여객기로 개발을 검토한 모델 2067 기종은 경제적이지 못하여 초기 검토 단계에서 스스로 개발을 포기했다.
 

더글러스, 프랑스 수드사와 협업 시도
결국 더글러스는 항공사의 의견을 다양하게 청취한 결과 중단거리 노선에 필요한 신형 기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며 경쟁회사인 보잉에서 중단거리 노선에 적합한 신형 기종인 보잉 727 여객기를 선보였고 미국의 2대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항공과 이스턴 항공이 선도적으로 보잉 727 기종을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하면서 일반 승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유나이티드항공이 1959년에 프랑스 수드 카라벨 여객기를 20대 구입하자 인건비 측면에서 유리한 유럽제 여객기가 미국 시장을 점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더글러스는 보잉 727 기종에 경쟁할 수 있는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는 것이 회사의 급선무가 됐다. 그러나 당시 더글러스는 DC-8 여객기를 개발하는 데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상황이었기에 중단거리 노선용 신형 제트 여객기 개발을 병행하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는 새로 개발하는 대신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의 수드 카라벨 여객기를 미국으로 들여와 생산하는 방법을 실행하고자 했다.

1960년에 더글러스는 중단거리 노선용 여객기의 개발개념을 연구하고자 프랑스 수드 항공사와 2년간 기술협력을 시작했으며 시장의 수요와 신형 중단거리 여객기의 개발 관계를 공동으로 연구했다. 더글러스의 경우 수드 카라벨의 기술적인 장점을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협력을 시작했고 프랑스 수드의 경우 자사의 성공한 기종인 수드 카라벨을 기반으로 더글러스와 협력하여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협력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더글러스는 미국의 항공사가 관심을 보인다면 국내 항공시장의 수요를 기반으로 수드 카라벨 여객기를 미국에서 대량으로 면허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더글러스는 수드 카라벨을 기반으로 신형 GE 엔진을 개량하여 생산하려고 했는데, 카라벨 여객기가 개발한 지 이미 8년이 경과한 기체라 각종 시스템이 구형이었기 때문에 엔진만 교체한다고 해서 신형 여객기로 볼 수 없는 기종이었다. 다만 GE 엔진으로 개량할 경우 경쟁기종인 보잉 727 여객기와 동등한 탑재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술적인 가능성은 확인했다.

한편, 1961년 5월에 영국의 브리티시 에어크래프트(BAC)에서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중단거리 노선에 적합한 BAC 1-11 여객기의 개발을 시작하자 더글러스는 수드 카라벨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됐다. 결국 더글러스는 2년 만에 기술협력을 중단하고 카라벨 여객기의 국내 면허생산을 포기했으며 1962년부터 신형 중단거리 노선용 제트 여객기 개발을 시작했다.
 

지방 공항에 적합한 기종 개발
1962년에 더글러스 항공은 새롭게 설계한 D-2086 개발계획을 미국의 항공회사에 제안하기 시작했다. 더글러스의 영업 담당자는 수드 카라벨, BAC 1-11, 보잉 727 기종과 비교하여 자사의 새로운 기종이 보유한 장점을 열심히 설명했는데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소음이 많이 발생하는 제트 엔진을 동체 후방에 설치하여 객실에서 승객이 느끼는 엔진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주익에 엔진과 같은 기계장치를 부착하지 않기 때문에 양력의 발생이 효율적이고 이로 인하여 많이 발생하는 양력 덕분으로 이착륙 거리가 줄어들어 활주로가 짧은 지방 공항에 적합했다.

그리고 엔진의 위치를 적절하게 선택함으로서 랜딩 기어의 길이를 짧게 줄일 수 있어 승객이 타고 내릴 때 편리하도록 배려했다. 특히 랜딩기어의 길이를 단축한 점은 매우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이었는데 당시 보잉 707과 같은 제트 여객기는 대형 제트엔진을 주익에 설치했기 때문에 랜딩기어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럴 경우 승객이 탑승하는 출입문이 지면에서 높아지기 때문에 여객기에 탑승하려면 매우 긴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지금은 공항청사에서 여객기에 탑승할 때 탑승교를 거쳐 직접 여객기에 도달할 수 있어 항공기의 출입문이 높더라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탑승교 시설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여객기에 탑승하려면 공항 청사에서 밖으로 나와 한참 걸어간 다음에 다시 탑승 계단을 이용하여 항공기에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기 매우 불편했다. 더구나 짐이 무거운 승객의 경우에는 손에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 국내선의 경우 웬만한 크기의 가방을 별도로 부치지 않고 승객이 직접 휴대하고 여객기에 탑승하기 때문에 가방을 들고 오르고 내리는 탑승과정은 승객의 입장에서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더글러스가 제안한 간편한 탑승방식은 매우 획기적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또, 더글러스는 활주로가 짧고 제반 지원시설이 부족한 지방공항에서 여객기를 운영하는 항공사의 입장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지방공항은 그저 자그마한 여객청사와 짧은 활주로만 갖추고 있을 뿐 넓은 주기장, 승객탑승용 브리지, 정비용 격납고, 보조동력 공급 장치 등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왕복엔진의 경우 자동차처럼 자체적으로 간편하게 시동을 걸 수 있는 반면에 당시 제트 여객기는 커다란 팬을 구동하여 시동을 걸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외부에서 동력공급장치를 사용하여 전력과 압축공기를 공급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따라서 이렇게 제반 지원시설을 갖추기 못한 지방공항에 신형 제트 여객기가 취항하려면 종전과 다른 개념으로 여객기를 개발하여야 했고 이러한 설계개념의 덕분에 더글러스 D-2086 여객기는 항공사의 관심을 받게 됐다.

더글러스 D-2086 개발팀은 앞서 소개한 탑승용 계단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하여 랜딩기어의 길이를 단축하여 승객의 불편함을 줄였고 여객기가 도착하면 승객 탑승용 계단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항공기를 지원하는 일손을 줄이기 위하여 여객기 내부에 접이식 탑승 계단을 탑재하여 지상조업이 필요 없이 여객기에서 직접 계단을 펼치도록 설계했다. 또한 동체 뒷부분에 설치한 양쪽 엔진의 가운데 부분에도 탑승용 계단을 설치하여 객실 뒷부분에 탑승한 승객도 기다릴 필요가 없이 신속하게 뒤쪽 계단으로 내릴 수 있게 배려했다.
 

항공사와 공항시설 편의 고려
이 정도의 설계적인 배려라면 중단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종전에 운항하던 구형 왕복엔진 여객기와 비교할 때 제트 여객기로 교체하더라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고 운항이 가능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여객기가 지방공항에 도착하면 여객 터미널 근처의 주기장에 그대로 정지하고 스스로 탑승 계단을 내리면 승객이 앞뒤로 신속하게 내릴 수 있었고 수하물의 경우에도 승객이 직접 휴대하면 별도로 항공사의 지상조업이 필요하지 않았다. 더구나 급유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은 지방공항의 경우에도 비행거리가 짧을 경우에는 그대로 기내 연료만으로도 왕복이 가능한 연료탑재량을 가진다면 매우 편리한 기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남다른 장점을 갖춘 더글러스의 D-2086 기종은 항공사의 입장에서 별도로 공항시설을 개선할 필요성이 적었기에 주목을 받았으며, 속도가 느린 왕복엔진 여객기를 대체하여 제트 여객기를 투입한다면 비행시간이 단축할 수 있고 같은 시간에 여러 번 왕복할 수 있기 때문에 항공기의 수량을 감축할 수 있어 경제적이었다.

더글러스 개발팀은 신형 여객기의 주익설계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큰 후퇴각에 대형 플랩을 적용한 보잉 727 여객기를 의식하여 수드 카라벨 여객기와 비슷하게 2중 간격 플랩을 주익 뒷전에 설치하고 주익의 후퇴각도 크게 주어 높은 비행속도를 내는 동시에 이착륙할 때 활주거리가 길어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항공사 입장에서 매우 민감한 연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엔진의 경우 종전의 터보제트 엔진이 아닌 프랫 앤 휘트니 JT8D 터보팬 엔진을 채택하기로 했다. 다만 더글러스 D-2086 기종에 적용하기에는 엔진의 파워가 높았지만 항공사의 입장에서 보잉 727 기종과 공용으로 사용할 경우 정비·관리가 쉬웠기에 그대로 JT8D 엔진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새롭게 개발한 더글러스 D-2086 기종은 자사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DC-8 기종의 뒤를 이어 DC-9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1963년 4월에 미국의 델타 항공에서 확정 15대, 옵션 15대를 주문하여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아메리칸 항공과 모호크 항공은 미국제 여객기가 아닌 영국제 BAD 1-11 여객기를 대량 주문했는데 영국 BAC 입장에서도 경쟁기종인 보잉 727, 더글러스 DC-9을 이기고자 초도비행 이후 비행시험을 빠르게 진행했다. 요즘도 그렇지만 항공기 개발을 시간과의 싸움이며 당시에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종인 BAC 1-11, DC-9 이 등장했기에 좀 더 빨리 항공사에 항공기를 납품하려고 신속하게 개발을 진행했는데 BAC 1-11 기종은 1963년 8월 20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하고 1965년부터 항공사에서 취항을 시작했다. 더글러스 DC-9 기종은 간발의 차이로 1965년 2월 25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최초 고객인 델타항공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6월부터 5대의 항공기가 시험운항을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 8일부터 정규노선에 취항을 시작했다. 최초로 납품한 기종은 DC-9-10 기종으로 개발을 시작한지 불과 30개월 만에 완성했고 초도비행을 시작한지 9개월만인 1965년 11월에 형식인증을 취득, 같은 해 12월부터 상업운항을 시작했으니 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초스피드로 개발을 진행했고 기술적으로도 큰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