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5) 더글러스 DC-1/DC-2



보잉사가 모델 247을 내놓으면서 현대적 여객기의 분야를 개척하면서 선도기업으로 성공을 거두자 경쟁 업체인 더글러스사는 이에 대항하는 DC-1과 DC-2를 개발하게 되었다. 더글러스 DC-1/DC-2는 후계 기종인 DC-3와 함께 빛나는 업적을 남긴 기종이며, 더글러스사의 민간여객기 시리즈인 DC시리즈를 탄생하도록 한 기종이기도 하다. 실제로 DC-1/DC-2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간항공기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도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1931년 3월 31일에 발생한 트랜스콘티넨탈 & 웨스턴 에어(Transcontinental & Western Air : TWA)의 포커 F-10A 3발기의 비극적인 추락사고를 계기로 미국 항공국은 미국 내에서 운항중인 목제(木製) 민간항공기에 대하여 특별 정밀안전점검을 실시할 방침임을 각 항공사에 통보하였다. 따라서 경비와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점검작업으로 운항사업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자, TWA의 운항담당 부사장인 잭 프라이(Jack Frye)는 금속으로만 제작한 새로운 여객기를 고안해줄 것을 항공기 제조회사에 요청하였다.

TWA가 요구하는 여객기는 1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3발 엔진의 단엽기로, 순항속도 241km/h, 최대속도는 적어도 298km/h이고, 착륙시의 속도는 105km/h이하, 순항고도는 최저 6,400m이며 항속거리는 적어도 1,738km이상일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이 여객기는 TWA가 대륙횡단노선에 사용하는 공항에서 2발의 엔진만으로도 이륙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질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TWA가 취항중인 공항 중에는 뉴멕시코주 알버커크(Albuquerque)공항이 있었는데, 이 공항은 해발고도가 1,510m에 이르며 기온도 32℃가 넘는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공기의 밀도가 아주 희박하기 때문에, 당시의 저마력 엔진을 장착한 프로펠러 항공기에게는 악조건에서 이륙을 해야만 하는 공항이었다.
 

더글러스사의 제안

1932년 8월 2일에 TWA가 요구한 조건에 맞추어 콘솔리데이티드(Consolidated), 커티스(Curtiss), 더글러스(Douglas), 제네럴 에이비에이션(General Aviation), 마틴(Martin)이 설계안을 제시하였으며, 그로부터 열흘 후에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사의 대표이사가 ‘더글러스 커머셜 원’(Douglas Commercial One : DC-1)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DC-1은 당초의 TWA사의 요구와는 다른 쌍발엔진의 여객기로, 더글러스사는 몇 주에 걸쳐 TWA의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DC-1이 TWA가 요구하는 사양에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납득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1932년 9월 20일에 TWA는 DC-1의 초도기를 12만 5,000달러에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이 계약에는 향후에 60대의 DC-1을 대당 5만 8,000달러(엔진가격은 제외)에 구입한다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더글러스사로서는 대단히 큰 계약이었다.

출력 690마력의 라이트제 SGR-1820-F 9기통 래디얼 피스톤 엔진을 2대 장착한 DC-1은 1933년 7월 1일에 산타 모니카(Santa Monica)의 클로버 필드(Clover Field)에서 초도 비행을 하였다. 조종간은 더글러스의 수석 테스트 파일로트 겸 영업담당 부사장인 칼 A. 코바(Carl A. Cover)가 잡았으며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DC-1은 TWA의 요구사항을 충족하였으며 아리조나주 윈슬로우(Winslow)와 뉴멕시코주 알버커크(Albuquerque)를 연결하는 TWA의 ‘고온 고지’노선에서 이륙에서 착륙까지의 전체 비행노선을 한쪽 엔진만으로 비행하는데 성공하였다. TWA는 DC-1의 비행성능에 크게 만족하여 DC-1의 개량형인 DC-2를 20대 확정 발주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나중에는 31대로 증가하였다. 따라서 TWA에는 1대의 DC-1만이 인도되었으며 ‘하늘을 나는 연구실’로 사용하였으며, 신형기체가 인도될 때까지 시험운항에 사용되었다.
 

DC-2의 등장

DC-2는 DC-1의 동체를 0.61m 연장하여 14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개량한 기체이며, TWA는 DC-2용으로 출력 710마력의 라이트제 사이클론 SGR-1820-F3 엔진을 선택하였다. DC-2는 전금속제의 저익 단엽기이며 세미 모노코크 구조의 동체와 캔틸레버식 주익과 미익, 접이식 메인 랜딩기어 등 현대적인 여객기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메인 랜딩기어를 접었을 경우에도 타이어가 엔진 나셀에서 절반가량 노출되도록 설계하여, 랜딩기어가 펼쳐지지 않는 고장이 발생하여 비상착륙을 하여도 동체의 손상이 최소화되도록 배려하였다. 객실 내부에는 진동을 흡수하는 고무로 제작한 마운트가 부착된 좌석이 설치되었으며, 승객용 좌석은 뒤로 눕힐 수 있도록 하였다. 객실과 조종실의 중간에 설치한 전방 화물실은 엔진과 같은 위치에 있으며, 454kg까지의 화물과 우편물을 적재할 수 있었다. 또한 객실 후방에도 화물과 수하물을 적재하는 화물실이 별도로 설치되어있었다. 탑승시에는 동체 좌측에 있는 문을 이용하며, 출입문의 뒤쪽에 있는 뷔페코너가, 객실 뒤쪽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DC-2의 초도기인 ‘시티 오브 시카고(City of Chicago)’는 1934년 5월 11일에 초도 비행을 하였으며, 곧바로 3일 후에 TWA에 인도되었다. 객실 내부는 14인 좌석을 장착하였으며, 통로를 좁혀 특별히 설계한 라운지 체어를 2열로 배치하였다. 좌석은 충분하게 스프링을 사용하여 쿠션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리클라이닝은 물론 좌석을 돌려서 뒷좌석의 승객과 마주 앉을 수도 있게 하는 등 당시의 여객기로서는 상당히 고급 좌석을 채택하여 인기가 높았다. 또한 모든 승객이 편안하게 비행을 즐길수있도록 각 좌석마다 개별적으로 창문을 설치하였으며, 주익보다 높은 위치에 좌석을 설치하여 어느 좌석에서나 바깥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상업 운항의 시작

TWA는 1934년 5월 18일에 오하이오주 콜럼버스(Colombus)~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Pittsburgh)~뉴욕주 뉴와크(Newark)를 연결하는 노선에 DC-2의 상업 운항을 시작하였고, 1주일 후에는 시카고와 뉴와크를 연결하는 노선에도 상업 운항을 시작하였으며, 이들 2개 도시를 운항하면서 비행시간기록을 8일 동안 4번이나 갱신하는 등 초기의 운항실적이 우수하였다. ‘스카이 치프(Sky Chief)’라고 이름 붙인 대륙횡단 서비스는 뉴욕을 출발하여 시카고, 캔자스 시티, 알버커크를 경유하여 로스 앤젤레스까지 운항하였다. 이 노선의 총 비행시간은 동쪽으로 비행할 때는 16시간 20분, 서쪽으로 비행할 때는 18시간이 소요되었으며, 경쟁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이 운항하는 보잉 247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다. 이러한 DC-2를 사용한 TWA의 운항 기록은 미국의 다른 항공회사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스턴항공은 TWA의 운항실적에 자극받아 곧 바로 14대의 DC-2를 발주하였으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Miami)에서 동해안 노선에 DC-2를 취항하였다. 이밖에도 더글러스사는 아메리칸 항공과 팬 아메리칸 그레이스로부터 합계 14대, 팬 아메리칸 항공으로부터 16대, 제너럴 항공(나중에 웨스턴항공)으로부터 4대를 발주 받았으며 발주대수에 있어서 경쟁사인 보잉의 모델 247를 추월하였다. 이스턴항공은 마이애미노선에 취항하면서 제네럴 매니저인 에디 리켄배커(Eddie Rickenbacker)를 기장으로 뉴욕~마이애미간의 VIP노선을 개설하여 일일왕복 비행을 실시하였다. 여기에 초대 받은 승객들은 마이애미에서의 저녁에 초대 받아 같은 날 뉴욕에서 비행 편으로 모셔오고 같은 날 되돌아 가도록 일정이 짜여있었다.

해외에서는 네덜란드의 포커사가 DC-2를 라이센스 생산 및 판매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일본의 나카지마(中島)비행기와 영국의 에어스피드(Airspeed)사도 같은 계약을 체결하였다. 소련의 무역기관 암토르그(Amtorg)도 1대의 DC-2를 인수하였으나 라이센스 생산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다. 포커사는 실제로 DC-2의 조립과 판매에 성공을 거두었으며, 네덜란드의 국영 항공사인 KLM에 21대를 비롯하여 모두 39대를 납입하였다. KLM은 국외의 자회사인 KNILM과 함께 DC-2의 유럽 내 노선 및 네덜란드와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를 연결하는 장거리 노선에 운항하였다.

1934년 10월에 KLM이 보유한 1대의 DC-2(PH-AJU ‘Uiver’)는 ‘맥로버트슨(MacRobertson) 런던~호주 항공레이스’의 수송부문에 참가하여 우승을 놓고 레이스전용기인 데 하빌란드 D.H.88 코메트(de Havilland D.H.88 Comet)와 경쟁하였다. 이 대회에 참가한 DC-2는 영국의 밀덴홀 공군기지에서 호주의 멜보른까지 17,900km를 90시간 13분 36초에 비행하여 2위를 차지하였으며, 더글러스사가 우수한 민간여객기를 제작하는 일류메이커라는 명성을 확립하였다.
 

최고의 영광

첫 취항에 나선지 1년 만에 세계 21개국에서 108대의 DC-2가 운항을 하여 총 비행거리 3,200km 이상을 달성하는 등 당시의 여객기로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당시 더글러스사가 항공사에 대하여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미국과 남미에서 팬 아메리칸 항공은 최초 8개월에 1,500만 마일(24,139,500km)을 비행하여 98.8%의 운항효율을 기록하였다. 또한 같은 해 상반기에 미국 내에서 운항중인 항공기의 총 비행거리는 42,259,678km인데, 27.7%인 11,726,063km가 더글러스사의 여객기가 운항한 실적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운항실적은 모두 42대의 더글러스 여객기가 달성하였는데, 이는 미국의 전체 비행노선에서 사용중인 항공기의 7.6%에 불과하며, 더글러스 여객기가 경이적인 운항성능을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DC-2는 3가지 종류의 민간 파생형이 개발되었다. 표준형 DC-2는 출력 710~875마력의 라이트제 사이클론 SR-1820 엔진을 장비하였으며, 엔진의 파생형은 고객에 따라 끝에 일련번호를 붙여 표시하였다. 프래트 & 휘트니제 호네트 엔진을 장비한 기체는 DC-2A라고 불린다. 폴란드의 LOT가 운항하는 2대의 DC-2는 출력 750마력의 브리스톨제 페가서스VI 엔진을 탑재하였다. 이것은 스코다(Skoda)사가 라이센스 생산한 브리스톨(Bristol)제 엔진이 폴란드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LOT 요구에 의하여 더글러스사와 브리스톨사가 개조작업을 수행하였다. 이 기체는 포커사에서 조립한 기체로 비공식적으로 DC-2B라고 불리며,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군이 노획하여, 독일의 루프트한자(Lufthansa)가 운항중인 10대의 DC-2 그룹에 편입되었다.

더글러스 DC-2는 나중에 대성공을 거둔 DC-3가 탄생하는 기초가 되었으며, 중요한 점은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사가 민간항공기의 대표적인 메이커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DC-2의 성공에 힘입어 1936년 7월 1일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더글러스사에 대하여 항공업계 최고의 영광인 ‘로버트 J. 콜리어(Robert J. Collier)’트로피를 수여하였으며, 이는 더글러스사의 기술진에게 최고의 성공을 확인시켜준 쾌거였다.

 



미군에서 사용한 DC-2

민간 여객기의 성공에 주목한 미군도 DC-2를 발주하였다. 출력 710마력의 라이트 제 엔진을 장비한 5대의 DC-2를 R2D-1이라는 VIP 수송기로 미 해군에 인도하였으며, 18대의 C-33 군용수송기를 미 육군 항공대에서 운용하였다. 이들 DC-2는 수직미익을 확대한 수직미익과 방향타를 부착하였으며, 좌측에 화물 적재용 도어를 설치하였다. 한편 24대의 민간형 DC-2를 징발하여 C-32A라는 명칭으로 미 육군 항공대에서 사용하였으며, YC-34 인원수송기 2대도 인도하였다. 또한 C-38이라는 시제기를 제작하였는데 이 기체는 DC-2와 DC-3의 요소를 결합하여 ‘DC-2 1/2’라고 불렸으며 1대가 제작되었다. 이 기체는 출력 975마력의 라이트 제 R-1820-45 엔진 2대와 DC-3의 미익을 결합하였으며, 나중에 미군은 C-33의 동체에 DC-3의 주익중앙부, 미익, 랜딩기어를 조합한 C-39 35대를 발주하였다. 이와 비슷한 C-41(1,200마력의 프래트 & 휘트니제 R-1820-21 엔진을 장착)과 C-42(1,000마력의 라이트 제 R-1820-53 엔진을 장착)의 2대는 워싱턴DC에 위치한 볼링 필드(Bolling Field)에 배치되어 미 육군 항공대의 사령관 헨리 H. 아놀드대장과 미 육군 항공대 참모진의 전용기로 사용되었다.
 
 

[제원]

형식 : 여객수송기
승무원 : 2명
전폭 : 25.91m
전장 18.89m
전고 : 4.97m
주익 면적 : 87.23㎡
엔진 : 라이트 SGR-1820-F52 사이클론 래디얼 피스톤 엔진 ×2대 (출력 875마력)
공허중량 : 5,628kg
최대이륙중량 : 8,419kg
페이로드 : 승객 최대 14명
최대속도 : 338km/h(고도 2,440m)
순항속도 : 306km/h(고도 2,440m)
초기상승률 : 305m/min
실용상승한도 : 6,845m
항속거리 : 1,609km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