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31) Fokker F.28 Fellowship

제트 여객기의 계보(30)
Fokker F.28 Fellowship

 

영국에서 등장한 최초의 제트 여객기 D.H. 106 코메트(Comet)로 시작된 유럽의 제트 여객기 시장은 1952년, 불운의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급속하게 위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식 왕복 엔진이 제트 엔진으로 발전하는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으며, 사고 또한 면밀한 조사 결과 설계결함임이 밝혀졌다. 이후 보잉의 707, 더글러스의 DC-8과 같은 새로운 기종이 등장하면서 1950년대 중반에는 구형 기종들을 대신해 제트 여객기가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주력 기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주요 노선과 접속하는 지방 노선은 아직 왕복 엔진이나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여객기가 주였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주요 항공회사와 항공전문가들은 중단거리 노선에서 터보프롭 기종을 대신해 제트 여객기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영국의 국적항공사 BOAC(British Overseas Airways Coporation)에서 1946년에 분리, 설립된 BEA(British European Airways)는 영국 국내선, 영국의 주요 도시와 유럽·북아프리카를 이어주는 노선에 취항했다. 대륙 간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운항하는 BOAC와 달리 BEA는 유럽의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중단거리 노선에 주력했으며, 기존의 구형 터보프롭 기종을 대신해 취항할 새로운 기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BEA는 시속 600마일(약 966km/h) 속도로 비행할 수 있고 동체 후방에 엔진을 탑재하는 기종을 찾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록히드 엘렉트라(Lockheed Electra), 빅커스 뱅가드(Vickers Vanguard)와 같은 고속 터보프롭 여객기가 불과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생산이 중단돼 운항기종의 운영에 애로가 많았던 경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포커, F.28로 제트 여객기 시장에 뛰어들어
네덜란드의 완제기 제작업체인 포커(Fokker)는 1950년대 중반에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50인승 F.27 프렌드쉽(Friendship) 여객기를 선보이며 틈새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네덜란드 스키폴공항에 위치한 포커는 F.27의 성공을 기반으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여객기 전문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1955년부터 1987년까지 모두 786대가 생산된 F.27은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미국 페어차일드 힐러(Fairchild-Hiller)에서 면허 생산해 판매에 호조를 보였다. 포커는 앞서 설명한대로 1950년대 후반 항공운송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단거리 노선에 적합한 신형 제트 여객기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터보프롭 기종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기종이 됐지만, 포커는 F.27을 한창 생산할 때 이미 제트 여객기의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1962년 4월, F.28 펠로우쉽(Fellowhip) 제트 여객기 개발을 발표했다. F.28의 직접적인 경쟁기종은 1961년에 등장한 영국 BAC 1-11이며, 디자인도 매우 비슷했다. 후퇴각을 가진 저익 배치의 주익, 동체 후방에 설치한 쌍발 엔진, 이중 차륜방식의 랜딩기어, T자형 미익 등이 특히 그랬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두 기종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100인승 BAC 1-11 여객기의 경우 유럽의 주요 항공사에서 운항하는 기종으로 주로 대형 공항에 취항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방노선에 취항하는 기종과 달리 단거리 이착륙 성능이 부족했다. 그러나 F.28은 앞서 생산한 F.27의 경험을 바탕으로 틈새시장이라고 판단된 지방공항이 취항이 가능한 제트 여객기를 목표로 했다. 따라서 단거리 활주로에서 운항이 가능한 성능이 필요했으며, 89~109명이 탑승할 수 있는 BAC 1-11 기종과 달리 지방공항의 여객 수요를 감안해 절반 수준인 55~65인승 여객기로 개발이 시작됐다.



단거리 활주로에서 안전하게 이착륙하려면 무엇보다도 주익의 성능이 높아야 하기에 F.28의 경우 주익 전체 폭에 걸쳐 2중 간격 파울러 플랩(Fowler Flap)이 설치됐다. 또한 이착륙 속도가 너무 높지 않도록 낮은 수준인 16도 후퇴각을 가진 주익을 조합한 결과 5,000피트(약 1,524m) 길이의 활주로에서도 운항이 가능했다. 그리고 착륙할 때 활주거리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휠 브레이크(Wheel Brake)와 함께 주익 상면에 리프트 덤퍼(Lift Dumper)를 설치해 착륙 접지한 다음 양력을 급속하게 줄이도록 했다. 착륙할 때에는 동체 끝에 양쪽으로 펼쳐지는 에어 브레이크(Air Brake)도 사용했는데, 이러한 방식의 에어 브레이크는 여객기에서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주로 영국 해군의 함상 공격기인 블랙번 버캐니어(Blackburn Buccaneer)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진귀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F.28은 BAC 1-11에 탑재되는 롤스로이스 RB163 스페이(Spey) 엔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RB183-2 터보팬 엔진을 채택했다. 이 엔진은 소음 발생이 매우 적은 엔진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훗날 제트 여객기의 소음규제 이후에도 소음방지장치(Hush Kit)를 장착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F.28, 최초의 국제공동개발방식
미국의 보잉이나 더글러스와 비교할 때 규모가 작은 포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네덜란드의 국내 수요만으로는 개발비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포커는 네덜란드 정부에 개발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차후 상환을 조건으로 개발비용을 정부에서 조달했다. 또한 유럽 각지의 항공기 제작회사와 협력을 하는 방법을 추진했다. 오늘날 보잉이나 에어버스에서 신형 여객기를 개발할 때 당연하게 적용되는 국제공동개발방식의 효시가 바로 포커의 F.28 개발 프로젝트이며, 최초라는 타이틀과 달리 세상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포커는 독일의 VFW, MBB와 영국의 쇼트 브라더스(Short Brothers)와 협상을 진행해 개발 파트너를 확보했다.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포커는 기수(조종실)과 중앙동체, 주익 접합부분의 페어링(Fairing), 완제기 최종조립, 시험비행과 마케팅을 담담했다. 독일의 VFW는 전방동체와 미익을 제작하며, MBB는 엔진 포드(Engine Pod)와 파일론(Pylon), 후방동체를 담담했다. 또한 영국의 쇼트 브라더스는 좌우 주익과 랜딩기어 덮개를 담당하기로 했다.

한편 F.27을 면허 생산해 FH.227이라는 명칭을 붙여 미국 시장에 판매했던 페어차일드 힐러도 F.28 생산에 관심을 보였다. 1960년 중반에 페어차일드 힐러는 미국제 장비를 탑재하고 엔진도 롤스로이스 트렌트(Trent) 엔진으로 변경한 FH.228 여객기를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트렌트 엔진은 최신 기술을 적용한 엔진으로 연비가 높고 소음도 RB183-2 엔진보다 훨씬 적은 고성능 엔진이다. 그러나 페어차일드 힐러는 개발비용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FH-228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며, 대신 F.28을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대리점 계약을 체결했다.
F.28은 1965년 11월, 독일의 LTU 항공에서 최초의 주문을 받은 이후 판매가 순조롭게 이어졌다. 1968년 6월에는 페어차일드 힐러가 미국 시장에서 10대의 주문을 받았다. 초기의 고객회사는 노르웨이의 브라텐스(Braathens S.A.F.E)항공, 이탈리아 Iravia 항공, 호주 MacRobertson Miller Airlines(Ansett) 항공, 네덜란드 마르틴에어(Martinair) 등으로 이어졌다. F.28 프로젝트는 일단 성공적으로 진행됐으며, 1969년 중반에는 모두 25대의 주문을 확보했다. 물론 미국 시장의 경우 항공 시장의 규모가 워낙 크고 신형 여객기가 나올 때 대형 항공사는 한 번에 50~100대씩 주문하지만 유럽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F.28의 시제기는 2대가 제작됐다. 시제 1호기는 1967년 5월 9일, 시제 2호기는 8월 3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2대의 시제기는 순조롭게 시험비행을 마치고 1969년 2월 24일에 네덜란드 정부의 형식 인증을 받았으며, 같은 날에 독일의 LTU 항공에 성공적으로 납품했다.
 



실적 불안, 개량 통해 성공
그러나 순조로운 출발에도 불구하고 F.28의 판매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며, 포커의 영업담당자는 유럽과 미국의 모든 항공사를 방문해 열심히 판촉활동을 했다. 포커는 판매를 늘리기 위해서는 기본형을 기반으로 다양한 개량형을 선보이는 F.28 패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고, Mk.1000, Mk.6000, Mk.6600이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기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Mk.1000은 최대 65명의 승객이 탑승하는 기본형이며, 포커는 1970년 동체를 2.21m 연장해 승객 79명이 탑승할 수 있는 Mk.2000을 개발했다. 한편 Mk.1000의 파생형인 Mk.1000C(Combi)는 동체 좌측에 대형 화물 도어를 설치한 파생형으로 필요에 따라 여객기와 화물기로 전환해 운항할 수 있었다. 이어서 개발된 Mk.5000, Mk.6000은 주익 앞전에 슬랫(Slat)을 설치한 기종으로 주익 폭이 23.58m에서 25.07m로 증가했다. 두 기종은 소음발생을 줄이고자 포드 라이너와 소음억제 노즐을 장비한 RB183 Mk.555-15H 엔진을 탑재했으며, 이륙증량이 증가했다.




그러나 포커의 기대와는 달리 성능을 높인 Mk.5000, Mk.6000은 시장에서 참패를 했다. 실패를 분석한 결과, 항공운항사가 여객기에 슬랫 장착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파악한 포커는 슬랫을 제거한 모델인 Mk.3000(단동형), Mk.4000(장동형)을 재빨리 내놓고 열심히 판매활동을 전개했다. Mk.3000은 Mk.1000의 동체 길이를 줄이고 연료 탑재량을 확대한 모델로 F.28 패밀리 중에서 성공한 모델에 속한다. Mk.4000은 Mk.2000의 동체를 사용하는 모델로 최대 85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으며 주익의 폭이 1.57m 증가했다.

Mk.3000과 Mk.4000을 내놓으면서 판매실적이 안정 추세에 들어선 포커는 월 평균 1대의 여객기를 생산했다. 1967년을 시작으로 생산을 종료한 1986년까지 약 20년간 F.28은 241대가 생산됐고, 전 세계 37개국, 57개 항공사에 인도됐다. 이러한 실적은 경쟁기종은 BAC 1-11을 능가하는 실적으로 소규모 회사에 불과한 네덜란드 포커가 주요 여객기 생산업체로 성장하는 기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한항공도 1984년 4대의 F.28 Mk.4000 기종을 도입(구매 2대, 입차 2대)해 국내선과 근거리 국제선에 취항했으며, 1990년대에 포커 F.100 기종으로 교체되면서 퇴역했다.



<F.28 Mk.4000 제원>
좌석수 : 85
길이 : 29.61m
폭 : 25.07m
높이 : 8.47m
주익면적 : 79m2
최대이륙중량 : 33,110kg
최대연료탑재량 : 7,820kg
최대페이로드 : 10,478kg
최대속도 : 843km/h
순항속도 : 722km/h
항속거리 : 1,898km
순항고도 : 10,670m
엔진 : 롤스로이스 RB183-2 Mk.555-15P 터보팬 엔진 x2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