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32) Tupolev Tu-154 Careless

제트 여객기의 계보(31)
Tupolev Tu-154 "Careless"

 

냉전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군사 분야는 물론이고 민간 분야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첨단 기술의 상징인 항공분야에서 자존심을 걸고 경쟁을 벌였는데, 제트엔진이 등장하면서 항공기의 성능이 급속하게 발전하자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군사력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던 소련은 제트전투기와 폭격기의 개발생산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수송기와 민간여객기 분야는 서방국가보다 기술경쟁력이 뒤처지는 상황이었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D.H 106 코메트(Comet) 제트여객기를 개발해 1952년 5월부터 상업운항을 시작했을 때 소련도 당연히 제트여객기를 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의 기술수준이나 준비상태로 볼 때 제대로 된 제트여객기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유를 불문하고 서방국가에 절대로 질 수 없던 소련은 투폴레프설계국(OKB)에 제트여객기를 개발할 것을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투폴레프설계국은 임시변통으로 Tu-16 폭격기를 여객기로 개조한 Tu-104 제트여객기를 개발했다. 이 여객기는 보잉의 707 여객기보다 2년이나 앞서 세계에서 2번째로 등장한 제트여객기였으나 외형과는 달리 폭격기를 그대로 개조한 기종으로 본격적인 제트여객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아무리 임시변통이라고 해도 소련에서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제트여객기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기종은 200여 대가 생산돼 소련의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를 비롯한 항공사에서 운항기재로 사용했다.




특히 1956년, 소련의 니콜라이 불가닌 총리와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런던에 방문할 때 Tu-104를 이용했다. 이 방문은 다분히 서방측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소련의 항공기술이 최신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이벤트였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제트폭격기를 개조한 Tu-104는 시끄럽고 진동이 심해서 승객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 여객기는 등장한 지 불과 5년 만에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한편 1960년, 프랑스를 방문한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프랑스에서 제공한 카라벨(Caravelle) 여객기에 탑승했는데 놀랍도록 조용하고 쾌적한 여객기의 성능에 그는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귀국 후 항공 관계자에게 성능이 우수한 신형 여객기를 개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투폴레프설계국은 1960년 6월, 기존 Tu-104를 개량해 터보팬 엔진을 탑재한 Tu-124를 내놓았다. 그리고 1963년 12월에는 Tu-124를 다시 대폭 개조한 Tu-134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Tu-134는 이전에 등장한 Tu-104, Tu-124 기종과 달리 동체 옆에 위치한 엔진을 동체 후방으로 이동시켰다. 결국 지시를 받은 대로 카라벨에 버금가는 기종을 개발한 것이다.




프랑스의 카라벨을 모방해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Tu-134는 소련에서 등장한 제트여객기 중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만들어진 기종이었다. 비록 동체가 크지 않아 많은 승객이 탑승할 수 없었지만 훨씬 쾌적한 비행이 가능했고, 지방에 위치한 작은 공항에서도 운항이 가능해 많은 환영을 받았다. 소련은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로 인해 대도시와 지방도시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교통편을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그러나 광활한 대륙을 가진 소련으로서는 아무리 철도와 도로를 건설하더라도 모든 도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적인 여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수도와 산간벽지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으로 항공노선을 개척했다. 물론 승객이 많지 않아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국영기업 아에로플로트항공사에서 운항을 담당했다. 유사시에 아에로플로트항공은 보유한 여객기와 화물기를 공군에 편입할 수 있는 동원 체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결국 경제성이 낮은 지방 항공노선을 유지하는 대신 공군력의 일부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급한 대로 폭격기를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Tu-104/124는 소련에서도 평판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에 투폴레프설계국의 경쟁자인 일류신설계국은 1963년 1월, 그야말로 제대로 만든 제트여객기 Il-62를 내놓았다. Il-62는 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수 있도록 비행성능과 항속성능을 높인 기종으로 기계적인 신뢰성도 높아 소련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소련 정부는 모스크바와 유럽을 이어주는 노선, 모스크바와 중부지역 극동지역을 이어주는 장거리노선에 Il-62를 투입해 항공노선을 개척했다.



한편 장거리 노선이 취항하는 간선노선과 연결할 지방노선에 투입할 기종으로 야코블레프의 Yak-40이 1966년 10월에 등장했다. Yak-40은 크기는 작지만 단단하고 신뢰성이 높은 기종이었다. 추운 겨울에 산간벽지에 위치한 간이 공항에 취항할 수 있도록 개발된 기종이며, 웬만한 활주로에서 별다른 지원 장비 없이 운항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성능을 바탕으로 Yak-40은 여객기뿐 아니라 군용기로도 인기가 많았다.



당시 소련 내에서 일류신설계국, 야코블레프설계국과 경쟁관계에 있던 투폴레프설계국은 두 기종의 등장으로 인해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당시 소련은 서방국가와 달리 독특한 방식으로 항공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서방국가의 경우 보잉, 맥도넬 더글러스와 같이 항공기 전문업체가 개발과 생산을 모두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항공기 개발을 담당하는 설계국과 생산을 담당하는 공장이 분리돼 있었다. 따라서 설계국의 입장에서는 개발 프로젝트를 확보하지 못하면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 있었다. 특히 소련에서는 설계국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 프로젝트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반면 생산 공장은 어느 설계국에서든 설계도를 완성하면 이를 받아서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본다면 소련 최초의 여객기를 개발한 실적을 가진 투폴레프설계국이 경쟁자 일류신설계국와 야코블레프설계국에게 추월을 당할까 초조해하던 긴장감을 이해할 수 있다.

사정이 이쯤 되자 투폴레프설계국은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회심의 역작이 필요했다. 1960년대 중반에 아에로플로트항공은 당시 운항하던 Tu-104, An-10, Il-18을 모두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중거리 여객기를 요구했다. 신형 제트여객기에 요구되는 성능은 중거리 노선에서 16~18t의 승객과 화물을 싣고, 1,900~4,000km를 900km/h로 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탑재량을 줄여 6t을 실을 경우 6,000~7,000km를 850km/h로 비행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주요 공항에서 운항이 가능하도록 최대이륙중량 조건 하에 2,600m 길이의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성능으로 본다면 보잉의 727, 영국 트라이덴트(Trident) 여객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아에로플로트항공은 10t을 싣고 10,000km를 비행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Il-62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Il-62보다 한 단계 낮은 중거리 여객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일류신설계국에 비해 쫓기던 입장이었던 투폴레프설계국은 혼신의 힘을 다해 새로운 기종을 개발했다. 한편 일류신설계국은 아에로플로트항공의 요구사항에 대응해 기존 Il-62로 충분하므로 새로 개발할 필요 없이 추가 생산만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Il-62보다 한 단계 낮은 중거리 기종을 요구했던 아에로플로트항공과 소련 정부는 1970-80년대에 적합한 신형 기종인 Tu-154를 채택했다.




Tu-154의 개발은 1964년부터 시작됐으며, 투폴레프설계국의 주요 엔지니어가 모두 동원돼 설계를 진행했다. 투폴레프설계국의 엔지니어들은 이미 개발한 Tu-134의 디자인을 최대한 이용해 빠른 시간 내에 서둘러 개발하고자 했다. 이러한 구상에 따라 Tu-154는 Tu-134를 기반해서 크기를 확대한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하게 되면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고 개발기간이 더 걸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안전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항속거리와 탑재량에 대응하기 위해 엔진의 수는 Tu-134에서 하나 더 추가돼 3발 엔진이 됐다. 이러한 기체의 크기나 엔진 배치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전작과 거의 비슷한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1963년에 등장해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모았던 보잉의 727을 강하게 의식하고 개발된 Tu-154는 1968년 10월 4일, 1호기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비록 727 기종보다 5년이 늦었지만 소련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간극을 만회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개발은 빠르게 진행돼 1970년에 아에로플로트항공에 납품이 시작됐고 1971년 5월부터 우편물 운송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우편물 운송으로 운항실적이 축적되자 아에로플로트항공은 1972년 2월부터 승객에 대한 운항서비스를 시작했다. Tu-154는 소련의 아비코(Avikor) 공장에서 2013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1,000여 대가 생산됐으며, 주요 고객인 아에로플로트항공을 비롯해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와 제3세계 국가의 항공사에서 사용됐다. 민간 항공사뿐 아니라 소련과 동구권 국가의 공군에서 정부 전용기로 최근까지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Tu-154 마지막 생산 기체는 소련 국방부에 납품된 VIP 탑승기였다.


3발 엔진을 탑재한 Tu-154는 보잉의 727과 마찬가지로 3대의 엔진을 꼬리 부분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 록히드의 L-1011, 더글러스 DC-10과 같이 2대의 엔진은 주익에 설치하고 나머지 1대는 꼬리 부분에 탑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배치를 택할 경우 주익의 설계를 다시 진행해야 했다. 특히 음속에 가까운 고속 비행영역에서 주익에 설치된 엔진이 일으키는 공기의 흐름과 진동이 주익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설계를 잘못할 경우 진동이 점점 심해지면서 주익이 부러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진동의 발생은 보잉이 B-47 폭격기와 707 여객기를 개발할 때 많이 고생을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을 알고 있던 투폴레프설계국은 주익에 엔진을 부착해 부담을 주는 설계를 피하고자 하였고 자연스럽게 727처럼 꼬리 부분에 엔진을 모두 배치했다. 그렇게 함으로 비행할 때 주익에서 흐르는 공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양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다. Tu-154 주익의 후퇴각은 35도이며 727의 32도보다 크다. 이는 Tu-154가 고속성능을 크게 의식하고 개발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Tu-154의 주익은 아래로 처진 하반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설계는 비행할 때 좌우로 기울어지면서 불안정해지는 현상을 방지하고 직진 성능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서방국가의 여객기는 이러한 성능향상을 위해 보통 주익을 위로 향하게 하는 상반각을 사용하는데, 하반각을 사용한 것은 소련의 독특한 취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Tu-154는 길지 않은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기체의 중량에 비해 엔진의 추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따라서 이착륙 성능은 크게 향상됐지만 반대로 연비는 효율적이지 못했다. 또한 Tu-154의 동체 단면은 서방국가의 여객기와 달리 원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설계돼 기체의 규모와 비교할 때 천정의 높이가 낮은 점이 단점이었다. Tu-154의 객실은 3+3 배치이며 128명에서 최대 18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었는데, 소련의 추위를 감안해 승객의 외투를 보관하는 옷장을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한편 소련 공항의 활주로 사정과 매서운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착륙장치는 매우 튼튼한 편이었다.



Tu-154는 초기 생산형인 Tu-154A를 시작으로 Tu-154B, Tu-154S로 개량됐으며, 최종 생산형인 Tu-154M으로 발전했다. Tu-154는 동구권 국가에서 널리 사용된 기종이지만 연비가 낮아 연료비용이 많이 들고 소음이 심해 세계 각국의 주요 공항에서 조기에 퇴출됐다.

Tu-134를 기반으로 확대 개발된 Tu-154는 너무 서둘러 개발됐기에 무리가 따랐다. 특히 충분한 검토와 비행시험을 거치지 않고 속성으로 개발이 진행됐기에 문제점이 있었다. Tu-154은 경쟁 기종인 Il-86과 비교했을 때 동체와 주익, 엔진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았고, 특히 각종 장비와 계기를 잘못 조작하는 오류를 방지하는 설계가 부족했다. 실제로 이러한 설계 미흡으로 인해 사고율이 높은 기종으로 유명하며, 처음 운항을 시작한 이래 180여 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2010년 4월 10일에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탑승한 Tu-154M 전용기의 추락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Tu-154M 제원>
승객수 : 134~166명
길이 : 42.92m
너비 : 37.55m
높이 : 11.40m
주익면적 : 201.45m2
최대이륙중량 : 100,000kg
최대연료탑재량 : 37,750kg
최대페이로드 : 18,000kg
순항속도 : 935km/h
순항고도 : 11,900m
최대상승고도 : 12,100m
최대항속거리 : 6,600km
엔진 : 아비아드비가텔 D-30KU-154-II 터보팬엔진(추력 23,380lb) x3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