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24) Tupolev Tu-134 Crusty

제트 여객기의 계보 (24)
Tupolev Tu-134 Crusty

 

소련, 기술력 과시하려 제트여객기 개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시작된 냉전시대는 1949년 8월에 소련의 핵실험이 성공하면서 더욱 격화됐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점차 심해지면서 전투기와 더불어 성능이 우수한 장거리 폭격기를 개발했고, 새로운 기종의 폭격기가 속속 등장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보잉 B-47 제트 폭격기를 먼저 개발하여 앞서가는 기술을 과시했고 이어서 보잉의 기술팀에서 B-47 설계기술을 활용한 KC-135 공중급유기를 개발하여 전략적인 공군력의 우위를 확보했다.

반면에 소련의 경우에는 기갑부대를 중심으로 하는 지상군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확장했고 공군의 경우에도 통합군의 일부로서 육군의 지휘를 받으면서 지상부대를 지원하는 전술공군의 형태를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이러한 관계로 1950년대에 들어서도 대륙 간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전략공군의 건설이 미국보다 많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소련의 경우 2차대전 기간 동안에 4발 엔진을 탑재한 장거리 폭격기를 개발한 경험이 부족했고 사할린에 불시착한 미 공군의 보잉 B-29 폭격기를 모방하여 Tu-4 폭격기를 겨우 생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기에 제트 폭격기의 개발은 아직 멀어보였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영국 노동당 내각의 도움을 받아 신형 제트엔진을 입수하게 됐고 성능이 우수한 MiG-15 제트전투기를 개발하여 서방국가를 놀라게 했다. 반면에 미 공군은 보잉 B-47 폭격기에 이어 대륙 간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보잉 B-52 폭격기를 연달아 선보이는 한편 센추리 시리즈로 알려진 일련의 초음속 제트기를 연달아 개발하면서 공군력의 우위를 확실하게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한편으로 동서간의 냉전으로 제트 여객기와 수송기의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가장 먼저 등장한 영국의 D.H. 코메트(Comet) 여객기가 설계결함으로 인하여 연달아 추락 사고를 일으키면서 기술적인 우위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됐고, 보잉에서 B-47 설계기술을 활용하여 KC-135 공중급유기와 보잉 707 여객기를 동시에 개발하는데 성공하자 제트 엔진을 탑재한 항공기의 기술력은 미국이 확실하게 앞서게 됐다.

사실 동서진영의 냉전 기간에 실제로 실력을 과시하기도 어렵고 일반인에게 잘 공개되기 힘든 신형 전투기나 폭격기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눈에 잘 띄는 제트 여객기를 개발하는 편이 기술력을 과시하고 홍보하는데 더 효과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영국에서 D.H. 코메트 여객기를 개발하여 1952년부터 정기노선에 취항하면서 기술적인 우세를 과시하는 것을 지켜보던 소련의 투폴레프 설계국은 우선적 급한 대로 Tu-16 제트 폭격기를 개발하여 실전에 배치했고, Tu-16 폭격기 내부의 폭탄 탑재공간을 그대로 활용하여 여객기로 개조한 Tu-104 여객기를 개발하여 1955년 6월에 초도비행에 성공했했다.



다음해인 1956년 9월부터 소련의 아에로플로트항공의 정기노선에 취항했다. Tu-104 여객기는 D.H 코메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정기노선에 취항한 제트 여객기가 됐으며, 미국의 보잉 707 여객기보다 2년이나 앞서나갔다. 특히 1956년에 소련의 니콜라이 불가닌 총리와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영국의 런던을 방문할 때 Tu-104 제트 여객기를 이용하여 서방측 관계자를 놀라게 하는 동시에 소련의 제트기 설계기술이 서방측과 동등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엔진 소음과 진동 문제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제트 폭격기를 활용하여 개발한 Tu-104 여객기는 호화롭게 장식한 객실 인테리어와 달리 시끄럽고 진동이 심하여 승객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으며 불과 5년 만에 생산을 중단하고 말았다. 한편 1960년에 프랑스를 방문한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프랑스의 카라벨 여객기를 이용했는데 놀랍도록 조용하고 쾌적한 카라벨 여객기의 성능이 큰 감명을 받았다.

오늘날 비즈니스 제트기가 가장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엔진 탑재방식은 사실 프랑스의 카라벨 여객기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제트 여객기 중에서 가장 독특한 디자인을 시도한 카라벨 여객기는 동체 뒷부분에 엔진을 설치하고 진동과 소음이 심한 제트 엔진과 승객이 탑승하는 객실을 분리했기에 객실 내부에서 느끼는 진동이나 엔진소음이 크게 감소했으며 더불어 주익에 엔진을 설치하지 않아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아 매우 부드러운 비행을 즐길 수 있었다.

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흐루시초프는 곧바로 새로운 여객기 개발을 지시했고 투폴레프 설계국은 1960년 8월부터 Tu-124A라는 이름을 붙인 신형 제트 여객기의 개발에 착수했다. 사실 투폴레프 Tu-124 여객기는 흐루시초프의 지시에 따라 새롭게 개발을 시작한 기종은 아니었다. 1957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투폴레프 Tu-124 여객기는 소련에서 단거리 국내노선에 사용하던 일류신 Il-14 여객기를 대체하고자 자체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기종으로 Tu-104 여객기를 기본으로 신형 터보팬 엔진을 탑재하고 동체와 주익의 크기를 줄여 소형화한 단거리 노선 여객기로 세계 최초로 터보팬 엔진을 탑재한 여객기로 유명하다. 1962년부터 노선에 취항한 Tu-124 여객기는 탑재 엔진을 터보팬 엔진으로 교체하면서 소음과 진동이 Tu-104 기종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Tu-16 폭격기를 기본으로 개발한 탓에 엔진과 실내가 가까워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프랑스를 방문한 다음 신속하게 신형 여객기를 개발할 것을 지시하자 투폴레프 설계국은 프랑스의 카라벨 여객기를 그대로 모방하여 Tu-124A 여객기 개발을 시작했다. 동체는 Tu-104 여객기를 그대로 이용하되 엔진을 동체 옆쪽에서 뒷부분으로 옮기면서 주익도 새롭게 설계했다. 엔진의 위치를 변경하면서 주익의 공기저항이 크게 감소했고 넓은 면적에 걸쳐 플랩을 설치할 수 있어 이착륙 성능도 크게 향상됐다. Tu-124A 시제 1호기(SSSR-45075)는 빠른 시간 내에 완성되어 1963년 7월 29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이는 비슷한 형태를 가진 영국의 BAC 1-11 여객기보다 3개월이나 앞선 것으로 얼마나 총력을 기울여 개발에 매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비행시험 도중 기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실속이 발생하여 탑승한 승무원이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주익에서 발생하는 공기의 소용돌이가 꼬리날개를 휘감아 버리면서 꼬리날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것으로 판명됐는데 특히 수평미익을 수직미익의 윗부분에 설치한 T-테일 방식에서 많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안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객기에서는 T-테일 방식을 많이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투폴레프가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해결하기위해 충분하게 검증할 시간이 없이 카라벨 여객기를 모방하여 급하게 신형 여객기의 개발을 서두른 탓에 사고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소련을 대표하는 여객기 Tu-134
투폴레프 설계국은 사고 발생 이후 실속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꼬리날개의 크기를 30% 크게 만들어 실속이 발생하더라도 회복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한편 소련의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항공은 항공기의 성능이 향상되고 항공여객의 수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단거리 노선 기종인 Il-14를 대체하려던 당초의 계획에서 좀 더 발전하여 승객이 더 많이 탑승할 수 있는 큰 여객기를 요구했고, 때마침 솔로비에프 설계국(Soloviev OKB)에서 개발한 D-30 터보팬 엔진을 만나 1963년 11월에 신형 기종인 Tu-134 여객기의 개발을 시작한다.

당시 고속비행성능을 최고로 인정하던 시기이었기에 Tu-134 여객기는 35도의 큰 후퇴각을 가진 주익을 채택했으며 엔진은 앞서 개발된 Tu-124A 기종과 같이 동체 뒷부분에 설치했다. 한 가지 특징은 착륙거리를 줄일 수 있는 역추진장치를 엔진에 설치한 점으로 겨울철에 활주로가 자주 얼어붙는 소련의 공항 사정을 반영한 편의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등장한 Tu-104 여객기의 경우에는 엔진에 역추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전투기나 폭격기처럼 드래그슈트를 사용했다. 또한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저압 타이어를 사용했으며 기수의 앞쪽에 유리창을 설치하고 항법사가 탑승하는 소련 특유의 레이아웃도 어김없이 적용했다.



이전에 등장한 Tu-104, Tu-124 여객기와 비교할 때 비교적 완성된 형태를 갖춘 Tu-134 여객기는 소련을 대표하는 여객기로 큰 환영을 받았으며 1966년부터 생산을 시작하여 1984년까지 854대나 생산되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의 항공사의 주력 기종으로 활약했으며 지금도 일부 항공사에서 운항을 계속하고 있다.

원래 단거리 노선용으로 등장한 Tu-134 여객기는 2클래스로 배치할 경우 5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단일클래스일 경우에는 최대 56명이 탑승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승객이 점차 증가하면서 탑승인원을 늘려 달라는 요구에 따라 1968년부터 기존 Tu-134 여객기의 동체를 2.1 미터 연장하여 72명까지 탑승이 가능한 개량형 기종인 Tu-134A 여객기의 개발이 시작됐다. 특히 Tu-134A 여객기는 항공기를 지원하는 시설이 부족한 격오지 공항의 사정을 고려하여 동체의 끝부분에 보조동력장치(APU)를 설치했는데 승객이 증가하면서 항속거리가 기존 3,100 km에서 2,770km로 조금 줄어들었다.



Tu-134A 여객기는 1969년 4월 22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으며 1970년 11월 9일부터 상업노선에 취항하기 시작했다. Tu-134A 여객기를 한 번 더 개량한 Tu-134B 기종은 소련 특유의 항법사 좌석을 없애고 1980년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며 동체를 연장하여 최대 96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있고, 이전에 등장한 다른 어떤 소련의 제트 여객기보다 앞선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으며 서방측 여객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Tu-134 여객기는 소련과 동구권을 비롯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비동맹 국가의 항공사에서 많이 운항했는데 우수한 비행성능에 힘입어 소련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공군에서 VIP 전용기와 수송기로도 활약했다. 특히 동독 공군에서 사용하던 Tu-134 수송기는 독일이 통일된 다음에 독일 공군에서 인수하여 한동안 운항을 계속했다.

1967년 9월에 Tu-134 여객기가 가장 처음 취항한 노선은 아에로플로트항공의 모스크바-소치 노선이며 소련에서 개발한 여객기 중에서 가장 먼저 국제항공기구(ICAO)의 인증을 받아 국제선 노선을 계속 확장했다. 국제선 노선에 취항이 가능한 기종으로 인증을 받았기에 동독의 인터플루크항공, 폴란드의 LOT항공에서 도입하여 운항을 시작했으며 이러한 자신감에 힘입어 1969년 여름에 열린 파리에어쇼에 증장하여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3월에 발생한 추락사고 이후 에로플로트항공에서는 모두 퇴역했지만 아직도 세계 각국에서 200여대의 Tu-134 여객기가 운항을 계속하고 있는데 다만 설계가 오래되어 소음이 많이 발생하여 국제소음규제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