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21) Convair CV-880

제트 여객기의 계보 (21)
Convair CV-880


콘베어, 상용기 개발 시작

미 육군에 납품하는 군용기를 주로 생산했던 콘솔리데이티드항공은 1943년에 벌티(Vultee)를 인수해 콘베어 (Convair)로 새롭게 탄생했다. 콘베어는 미 육군 항공대의 주력 기종인 B-24 리버레이터 중폭격기를 대량 생산하면서 회사의 규모가 급성장했다. 당시 B-24 폭격기의 생산대수는 모두 19,256대로 당시 가장 많이 활약한 보잉 B-17 폭격기의 생산량인 12,731대를 크게 넘어서며, 2차 대전 당시에 미국에서 생산한 폭격기 중에서 가장 많은 수량을 생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노르망디상륙작전을 기점으로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면서 그동안 위축됐던 민간항공시장이 재개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1945년 초 아메리칸항공은 전쟁이 끝난 다음에 사용할 새로운 중단거리용 여객기 개발을 요청했다. 새로운 중단거리 노선용 쌍발여객기는 더글러스 DC-3을 대체할 수 있는 성능을 요구했는데 여기에 대응하여 콘베어는 모델 110 이라는 이름의 시제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콘베어는 그간 주로 군수사업에 집중해왔고 특히 전쟁기간 동안 폭격기 사업에 주력하면서 대형 항공기에 대한 기술능력을 충분히 축적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군용기 납품이 대폭 감소하고 민간항공기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그동안 축적한 기술능력을 활용하여 여객기사업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메리칸항공의 요구에 대응하여 개발하기 시작한 콘베어 CV-110 기종은 더글러스 DC-3 여객기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1930년대에 개발한 더글러스 DC-3 여객기는 우수한 기종이기는 하나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우선 기체의 크기에 비해 엔진의 출력이 낮아 많은 승객을 태우고 멀리 비행하기에는 성능이 부족했고 뒷바퀴 방식으로 설계하여 지상에서 승객이 타고 내릴 때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콘베어 설계팀은 F6F 헬캣, P-47 썬더볼트 전투기에 사용한 프랫 앤 휘트니의 R2800 고성능 엔진을 탑재하고 랜딩기어를 앞바퀴 방식으로 변경한 30인승 쌍발 여객기를 개발했다. 특히 콘베어 CV-110 여객기는 수평으로 주기한 상태에서 승객이 빠르고 편리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객실 기압이 낮고 냉난방 성능이 우수하여 아메리칸 항공의 큰 관심을 불러왔다.
 

CV-110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형 생산
콘베어 CV-110 여객기가 마음에 들었던 아메리칸항공은 40인승으로 개량한 여객기를 요구했으며 대형 캐빈을 갖춘 콘베어 CV-240 여객기가 탄생했다. 아메리칸항공은 콘베어 CV-240 여객기를 한꺼번에 100대를 구매했으며 경쟁 항공사인 팬암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웨스턴 항공, KLM 항공 등 유수의 항공사도 앞을 다투어 구매했고 콘베어는 당시 더글러스가 독점하고 있었던 민간 여객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콘베어 CV-240 여객기로 순조롭게 민간 여객기 사업을 시작한 콘베어는 군수사업의 경험을 살려 미 공군 수송기로도 납품을 시작하여 모두 390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전체 민간 여객기 판매량인 176대를 초과하는 실적이었다.

콘베어 항공에서 의욕적으로 개발한 CV-240 여객기는 성공적인 출발과 달리 전쟁이 끝난 다음 미 육군 항공대에서 사용하던 더글러스 C-47 수송기가 싼값에 대량으로 민간시장에 풀리면서 기대와 달리 크게 판매가 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콘베어는 CV-240 여객기 사업을 철수하고 당시 냉전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활성화된 제트폭격기사업에 다시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쟁사인 마틴에서 4-0-4 모델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민간 여객기 사업 철수를 중단하고 CV-240 모델을 개량한 CV-340 모델을 내놓았으며 유나이티드 항공의 발주를 받아 성공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콘베어는 CV-340 여객기를 개량한 CV-440 모델을 내놓았고 특히 기상레이더를 탑재하여 안전한 운항이 가능한 기종이었다.



캐나다의 항공제작업체인 캐나데어(Canadair)를 인수한 콘베어는 CV-440 모델이 생산을 종료한 다음 생산시설을 미국에서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전하고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개량형 모델인 캐나데어 CL-66C 코스모폴리탄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콘베어는 프로펠러 형식의 쌍발 여객기로는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1950년대 당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제트엔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콘베어, B-58 폭격기 개발로 우위 선점
1950년대에 미국에서 제트엔진 여객기를 가장 먼저 내놓은 항공업체는 보잉이었고 적절한 시기에 등장한 보잉 707 여객기는 후발주자인 더글러스 DC-8 기종도 보잉 707을 상대로 힘겨운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CV-240 시리즈를 모두 1,200여 대나 판매하여 큰 성공을 거둔 콘베어는 민간 여객기 시장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트여객기시장에서 막강한 경쟁 상대인 보잉과 더글러스를 직접 상대하기에는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보잉 707 여객기는 객실, 승객탑승능력, 항속거리, 비행속도 등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수한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콘베어는 제2차 세계대전이래 군수사업이 주력이었고 특히 대형 폭격기 사업이 회사의 핵심 사업으로 우수한 엔지니어를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2차 대전 당시에 가장 많이 생산한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를 이어 전쟁이 끝나고 1946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B-36 피스메이커 폭격기는 미 공군의 폭격기 중 가장 큰 초대형 폭격기로 나중에 등장한 보잉 747 점보 여객기보다 더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미 공군은 대량의 무장을 탑재하고 초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B-36 폭격기의 성능에 만족했지만 제트 전투기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폭격기의 안전성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6.25 전쟁 당시 MiG-15 전투기의 공격으로 B-29 폭격기가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 프로펠러 방식의 폭격기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고, 미 공군은 제트 폭격기의 개발을 서둘러 보잉 B-47 스트라토제트 폭격기를 실전에 배치했고 기존의 B-29 폭격기와 B-36 폭격기는 속속 퇴역을 시작했다. 미 공군은 B-47 폭격기를 실전에 배치하고 당분간 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웬만한 제트전투기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던 보잉 B-47 폭격기는 웬만한 제트전투기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트전투기의 성능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1950년대 중반이후 초음속 전투기의 시대에 들어서자 아음속으로 비행하는 B-47 폭격기의 안전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은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를 요구했고 콘베어 항공에서는 그동안 축적한 폭격기 개발기술을 집약하여 B-58 허슬러 제트폭격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956년 11월 11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B-58 폭격기는 무장을 탑재, 음속의 2배로 비행할 수 있는 놀라운 성능을 갖추고 있었는데 초음속 비행에 필요한 막강한 추진력을 공급하는 J79 고성능 터보제트엔진이 개발에 성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GE 항공사업부에서 그동안 축적한 기술을 집약하여 개발한 J79 터보제트엔진은 막강한 추력을 발휘하여 덩치가 큰 폭격기가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데 기여했다. J79 엔진은 B-58 폭격기를 비롯하여 맥도넬 F-4 전투기, 록히드 F-104 전투기, 더글러스 A-5 폭격기에 탑재하는 등, 걸작 엔진으로 크게 성공했는데 모든 시작은 콘베어 B-58 폭격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막강한 추력을 자랑하는 J79 엔진을 4대나 탑재한 콘베어 B-58 폭격기는 116대가 생산되어 미 공군 전략사령부의 핵심 전력을 담당했다.

 
중단거리 노선 공략
당시 미 공군 전략폭격기 사업을 독점하던 보잉을 상대로 B-58 폭격기 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자신감을 얻은 콘베어는 군수사업과 병행하여 회사의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민간 여객기 사업의 발전 방향을 다각도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콘베어의 경영진과 기술진은 B-58 폭격기의 개발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활용하여 제트 여객기를 개발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특히 다른 어떤 엔진보다 파워가 막강한 J79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 우수한 성능의 제트여객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콘베어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보잉 707 장거리 여객기와 경쟁을 하고 있던 더글러스 DC-8 여객기가 부진한 실적을 보이자 정면으로 대결할 경우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그러한 맥락에서 콘베어 항공의 경영진은 이전에 큰 인기를 모아 성공한 콘베어 CV-240 시리즈의 주요 시장이었던 미국 본토의 중단거리 노선용 여객기에 주목했다.

팬암을 선두로 대서양 횡단노선을 비롯한 장거리 노선은 이미 보잉 707 및 더글러스 DC-8 기종이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콘베어는 CV-240 시리즈로 확고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던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팬암의 장거리 노선 독점에 불만이 많았던 하워드 휴즈는 자신의 항공사인 TWA항공이 황금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대서양 횡단노선에 취항하지 못하고 중단거리 국내선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못마땅해 했고 장거리 노선에 적합한 보잉 707, 더글러스 DC-8 기종이 아닌 중단거리 노선에서 운항할 수 있는 고성능 제트 여객기를 콘베어에 의뢰했다.

당시 콘베어 기술진은 자신감에 넘쳐 보잉 707 이나 더글러스 DC-8 보다 작은 동체에 B-58 폭격기 사업으로 확보한 J79 터보제트 엔진을 탑재하면 비행성능이 우수한 제트 여객기가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대서양 횡단과 같은 장거리 노선 대비 이착륙 횟수가 많은 중단거리 노선에서 주로 사용되던 프로펠러식 여객기는 비행속도가 느린 대신 착륙에서 이륙에 이르는 비행준비시간을 단축하여 회전수를 높이는 방법이 주로 시도됐다.

항공사의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콘베어는 비행준비시간 단축에 의존하지 말고 비행속도를 높인 고성능 여객기를 투입하여 빠르게 승객을 실어 나르면 항공사에게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콘베어의 기술팀은 1956년부터 새로운 제트 여객기의 개발을 시작했는데 핵심이었던 속도성능의 목표를 965km/h로 설정하고 최대속도를 낼 수 있는 엔진으로 군용 J79 엔진을 민간형으로 개량한 GE CJ805-3 터보제트 엔진을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B-58 폭격기를 개발하면서 J79 엔진의 성능에 만족한 콘베어의 기술팀은 경쟁기종인 보잉 707 여객기에 탑재한 P&W JT3C 엔진보다 더욱 강력한 엔진을 채택하게 됐는데 이는 결국 민간 여객기 사업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속도에 집중한 CV-880 판매 부진
콘베어는 1억 8,5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투입하여 중단거리 노선에 특화한 콘베어 CV-880 제트여객기를 개발하여 1959년 1월 27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1959년에 생산을 시작하여 델타항공에 1호기를 납품할 때만 해도 콘베어의 기술진은 자신감이 넘쳤다. 거의 음속에 가까운 최대속도는 CV-880 여객기의 세일즈 포인트로서 당시 델타항공은 CV-880 여객기에 탑승하는 승객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후 공항에 도착하므로 차를 준비하여 마중을 나오라는 내용으로 광고를 제작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델타항공과 TWA 항공을 마지막으로 콘베어 CV-880 제트 여객기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았고, 해외수출 역시 일본항공과 스위스항공에만 겨우 판매됐다. 65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판매가 없자 콘베어는 CV-880 기종의 생산을 겨우 3년 만에 중단했고 개량형인 CV-990 개발을 시작했다. 핵심적인 성능이었던 속도성능에 집착한 콘베어 항공의 기술진은 속도성능을 더욱 높여 1,086km/h라는 놀라운 최고속도를 보여주었는데 속도성능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고속도를 높이기 위해 CV-880, CV-990 기종은 동체의 지름을 축소하여 공기저항을 줄이고자 노력했는데 반대로 승객이 탑승하는 공간이 줄어들어 2+3 구성으로 최대 110명이 탑승, 110~189명이 탑승하는 보잉 707에 비해 경쟁력이 많이 부족했다. 더구나 고속비행성능의 핵심이었던 GE J79 엔진을 민간형으로 개량한 CJ805 엔진은 기술적인 결함이 많았고 특히 연료소비가 많고 매연이 많이 발생하여 항공사측에서 반기지 않았다.



항공사의 요구사항을 외면하고 전략 폭격기를 개발하던 기술팀이 속도성능에만 집착한 CV-990 여객기는 3년 동안 불과 37대만 판매됐고 결국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트렌드와 거리가 먼 콘셉트로 개발한 CV-880, CV-990 여객기는 이후 모든 여객기사업에 큰 교훈을 남겼으며 콘베어는 CV-990 여객기를 마지막으로 민항기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 민항기 사업을 진행하던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공장을 매각하고 이후 군용기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