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19) Douglas DC-8 (pt. 1)

제트 여객기의 계보 (19)
Douglas DC-8 (Pt.1)

 
 
항공여행객 수 증가
1930년대에 접어들어 알루미늄 합금으로 항공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체를 모두 합금으로 제작한 여객기가 등장했고 항공 여행을 즐기는 사람의 수가 증가했다. 이 무렵 미국에서 민간 여객기의 발전을 주도하던 항공업체가 바로 더글러스 항공(Douglas Aircraft Company)이었다. 창업주인 도날드 윌리스 더글러스 (Donald Willis Douglas Sr.)가 1921년에 설립한 더글러스 항공은 1933년에 보잉에서 미국 최초로 알루미늄 합금으로만 제작한 모델 247 여객기를 내놓았을 때 한발 뒤처지는 상황이었다. 더글러스 역시 같은 해에 경쟁기종인 DC-1 여객기를 내놓고 1934년에는 개량한 모델인 DC-2 여객기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는 못한 형편이었다.

더글러스는 여객기를 제대로 만들려면 실제로 여객기를 사용하여 운항하는 항공사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고 TWA항공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 DC-2 여객기의 단점을 완전하게 보완한 DC-3 를 1934년에 내놓았다. 더글러스 항공의 여객기 시리즈인 DC(Douglas Commercial) 시리즈 중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DC-3 여객기는 20~30명 정도의 승객이 탑승하고 2,500km를 비행할 수 있는 쌍발 여객기이며 이전에 출현한 경쟁기종과 비교할 때 냉난방시설이 갖추어진 객실에서 안락하고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1936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업운항을 시작한 DC-3 여객기는 1942년에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민간 여객기의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607대가 생산되어 여객기의 본가는 더글러스 항공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공헌했다. 전쟁으로 인하여 DC-3 여객기의 생산은 중단됐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미 육군 항공대는 DC-3 여객기를 군용 수송기로 개조한 C-47 수송기의 생산을 요구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1만 대 이상이 제작되는 기록을 세웠다.

DC-3 여객기로 성공을 거둔 더글러스 항공은 DC-3 기종의 단점이었던 탑승인원과 항속거리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좀 더 큰 여객기인 DC-4 여객기를 개발하여 1942년에 세상에 선을 보였다. 전쟁이 시작되고 민간 여객기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불과 80대만 생산됐지만 DC-4 여객기도 군용 수송기로 채택되어 11,163대가 생산됐다. 미 육군 항공대에서는 C-54, 미 해군에서는 R5D라는 명칭으로 장거리 수송기로 활약한 DC-4 기종은 40~80명의 승객을 태우고 7천km를 편도 비행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거리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어 대서양 횡단은 물론이고 태평양 중간에 위치한 하와이까지 무착륙 비행이 가능한 기종이었다.
 

C-74 수송기 개량한 DC-7 인기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항공여객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고 미국 국내에서도 점차 장거리 철도의 경쟁상대로 항공여행이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 당시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유럽을 이어주는 주요 교통수단으로 운임이 저렴한 여객선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미국 정부에서 민간에게 불하한 DC-3, DC-4 여객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여 운항하는 편이 훨씬 저렴한 투자로 쉽게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글러스 항공은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쉽사리 개발에 투자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 항공은 신형 여객기를 내놓는 대신 기존에 장거리 노선 기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DC-4 기종을 대폭 개량한 DC-6 기종을 개발하여 경쟁사인 록히드 콘스텔레이션(Lockheed Constellation) 기종에 맞서 경쟁했다. 외형으로는 DC-4 기종과 비슷하지만 DC-6 여객기는 강력한 엔진으로 교체하고 여압 캐빈을 갖춘 여객기로 기내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어 큰 인기를 모았으며 1976년에 등장한 이후 12년 동안 모두 704대가 판매되는 실적을 기록했다.

미 공군은 DC-4/DC-6 여객기 개발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켜 대형 동체와 강력한 엔진을 조합한 신형 수송기의 개발을 요구했고 1945년에 C-74 글로브마스터 수송기를 선보였다. 1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성능을 갖춘 C-74 수송기를 주목한 팬암 항공사는 즉시 C-74 수송기를 민간 여객기로 개조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DC-7 여객기가 등장했다. 왕복엔진 여객기로는 비교적 뒤늦게 등장한 DC-7 여객기는 제트 여객기와 터보프롭 여객기가 등장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5년 만에 343대가 판매될 정도로 항공사의 인기를 모았다.

전쟁 기간에 미 육군 항공대에 납품한 수송기의 비행실적을 기반으로 비교적 적은 금액을 투자하여 효과적으로 개량 기종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성공을 거두었던 더글러스 항공은 195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고민을 하는 상황이 됐다.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코메트 제트여객기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도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계속 넓혀가고 있었고 경쟁회사인 보잉에서 367-80 기종을 시작으로 보잉 707 여객기를 의욕적으로 개발하자 더글러스 항공의 입장에서도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말부터 동서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 공군과 미 해군은 성능이 우수한 제트 전투기와 제트 공격기를 요구하였고 군수 분야에 일감이 많아지면서 더글러스 항공은 당분간 신형 여객기의 개발을 접어두고 당분간 제트 군용기의 개발에 주력했다.

이러한 시기에 더글러스 항공에서 개발한 제트 군용기는 미 해군 F3D 스카이나이트 전투기, F4D 스카이레이 전투기, F5D 스카이랜서, F6D 미사일리어, X-3 스틸레토 고속비행 실험기, A-3 스카이워리어 공격기, A-4 스카이호크 공격기, B-66 디스트로이어 폭격기 등을 들 수 있으며 1950년대 중반까지 더글러스 군용기 사업부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보잉과 제트여객기 경쟁 돌입
그러나 군수 사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더글러스 항공의 경영진 입장에서는 단속적인 군수사업에 계속 의존한다면 언젠가 회사의 매출이 급격히 감소할 우려가 있었기에 지속적인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민간 여객기 사업을 고민하게 됐다. DC-3 여객기로 성공을 거둔 이후 DC 시리즈로 여객기 시장의 본가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던 더글러스 항공의 입장에서 경쟁사인 보잉에서 제트 여객기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1952년 당시에 더글러스 항공은 300 여대의 DC-6, DC-7 여객기의 수주잔고가 남아있는 상황이었지만 여객기 시장에서 더글러스 DC 시리즈와 경쟁하면서 번번이 참패를 거듭하고 폭격기 사업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던 보잉에서 제트 여객기로 보잉이 선두를 빼앗아 간다면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 항공은 군수 사업으로 축적한 자금을 기반으로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기로 방향을 정했지만 그동안 왕복엔진 여객기의 지속적인 성장에 안주하던 실무진은 아직도 제트 여객기는 기술적으로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고 더구나 1953년에 D.H 코메트 제트여객기가 의문의 추락 사고를 일으키자 더욱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됐다.

경쟁회사인 보잉은 1947년에 B-47 제트폭격기 개발에 성공하자 곧바로 1949년부터 제트 여객기 개발에 착수했고 드디어 1954년에 보잉 367-80 시제기를 선보이면서 곧바로 미 공군으로부터 KC-135 공중급유기를 대량으로 수주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무튼 보잉에서 의욕적으로 1,600만 달러의 자금을 투입하여 제트 여객기를 개발하면서 여객기 시장에 도전하자 더글러스 항공은 자신의 고유 영역이었던 여객기 시장을 지키고자 1952년 중반부터 비밀리에 제트 여객기 개발을 시작했다. 1953년 중반에 들어서 더글러스 항공의 개발팀은 DC-6 여객기와 비슷한 규모인 80인승 제트 여객기 설계안을 완성했고 탑재하는 엔진은 보잉 707 기종과 같은 프랫 앤 휘트니의 JT3C 터보제트 엔진을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개발비용을 절약하고 고속 비행성능을 추구하고자 객실 내부의 좌석배치는 2+3열로 설계하여 3+3열로 설계한 보잉 707과는 차이가 있었다.

DC-8이라는 명칭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한 신형 제트 여객기 설계안은 80명의 승객을 태우고 3,000~4,000 마일을 비행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설계팀은 성능 면에서 보잉의 경쟁기종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1954년 5월에 미 공군은 800대의 제트 공중급유기를 구매한다고 공고했고 보잉, 더글러스, 콘베어, 페어차일드, 록히드, 마틴 등 유수의 항공업체가 경쟁했다. 여기에서 보잉은 사업공고 후 불과 2달 만에 367-80 시제기의 초도비행에 성공하여 자신감을 보이자 미 공군은 곧바로 계약을 결심하고 4달 만에 KC-135 공중급유기를 구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신속한 계약 진행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여객기와 수송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 업체라고 자부하던 더글러스 항공의 입장에서는 설마 했던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서 충격에 휩싸였고 워싱턴의 정부 담당자에게 항의를 했지만 거부만 당하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 항공의 경영진은 DC-8 제트 여객기의 개발을 시작하는 방법 이외에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었다. DC-8 기종의 개발을 진행하면서 항공사의 요구사항을 모아서 컨설팅을 받았는데 많은 항공사의 공통적인 의견은 3+3열 좌석배치가 가능하도록 동체의 폭을 넓히고 많은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항공사의 요구를 반영하여 동체의 폭을 확장하면 당연히 주익과 미익의 크기도 커져야하고 더 많은 승객이 탑승하도록 동체의 길이를 연장하면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쟁회사인 보잉에게 한발 뒤쳐진 상황에서 항공사의 요구사항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더글러스 항공의 개발팀은 종전의 개발안을 과감하게 수정하여 항공사의 요구사항을 대폭 반영한 새로운 설계안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 DC-8 기종은 동체의 폭은 보잉 707 기종과 비슷하면서도 동체의 길이가 훨씬 더 긴 대형 여객기가 됐는데 이는 경쟁기종과 차별화하면서 더글러스 항공의 여객기 사업의 부활하도록 공헌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신의 한수가 됐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