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22) Ilyushin Il-62 Classic

제트 여객기의 계보 (22)
Ilyushin Il-62 Classic
 


소련, 군용기 개조해 여객기로 활용
영국에서 1949년에 등장한 D.H 코메트 제트 여객기는 기술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항공 산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호주 및 뉴질랜드를 본토와 연결하는 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수 있도록 빠른 속도를 가진 여객기가 필요한 실정이었고 때마침 등장한 제트 엔진은 이러한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제트 엔진에 적합한 설계기술을 미처 확보하지 못한 채 서둘러서 개발한 코메트 여객기는 의문의 추락 사고를 일으켰고 항공여행을 하는 많은 승객들은 제트 여객기에 탑승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우려를 점차 해결하기 시작했고 코메트 여객기의 뒤를 이어 등장한 보잉 707, 더글러스 DC-8, 수드 카라벨 등 새로운 기종이 점차 항공여행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말부터 동서진영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제트 엔진을 탑재하고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의 개발은 시대적인 숙명이 됐고, 특히 제트 전투기와 폭격기의 개발은 군사적인 목적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반면에 민간 여객기의 경우에는 초창기 터보제트 엔진의 연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항공사들이 연료소모가 적은 왕복엔진 여객기를 선호했으며, 제트 엔진의 경우에도 완전한 터보제트 엔진보다는 연료소비효율이 좋은 터보프롭 엔진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원수를 비롯한 귀빈이 이용하는 여객기의 경우에는 경제성을 떠나 기술력과 국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제트 여객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의 경우에도 보잉 707 여객기가 등장하자 곧바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기부터 보잉 707 제트 여객기를 대통령 전용기로 도입했다. 미국을 비롯하여 서방 각국에서 제트 여객기의 판매가 늘어나자 소련의 경우에도 급하게 Tu-16 폭격기를 개조하여 Tu-104 캐멀(Camel) 쌍발 제트 여객기를 내놓았다. 1955년에 등장한 Tu-104 여객기는 1956년에 니콜라이 불가닌 총리가 영국 런던을 방문할 때 탑승하여 소련의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근본적으로 폭격기를 급하게 개조한 여객기인 관계로 문제점이 많았다.

Tu-104 여객기는 엔진의 위치가 적절하지 못했는데 승객이 탑승하는 객실의 바로 옆에 엔진이 위치하고 있어 소음이 객실 내부로 유입되는 단점이 있었고 만약에 엔진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엔진의 위치는 평상시 정비 점검을 하기에도 불편했다. 그리고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최저속도가 낮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착륙속도가 높고 활주거리가 길어서 드래그슈트를 사용하는 Tu-104 여객기는 실제 민간공항에서 운항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더구나 랜딩기어가 매우 길어 승객이 탑승하려면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점도 불만이었고 객실 내부는 마호가니로 장식했지만 폭격기를 개조한 관계로 실내 공간은 매우 좁았다.



무엇보다도 Tu-104 여객기의 단점은 짧은 항속거리에 있었다. 소련의 기계가공 기술수준이 낮은 관계로 정밀하게 제작하지 못한 미쿨린(Mikulin) 엔진은 연료소모가 많고 매연이 많이 발생했고 항속거리가 불과 2,800 해리에 불과하여 모스크바에서 출발할 경우 동유럽 주요 도시까지 겨우 닿는 수준이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멀리 극동지역까지 무착륙 비행이 불가능했다.

소련은 항속거리가 짧은 Tu-104 제트 여객기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Tu-114 클리트(Cleat)여객기와 Il-18 쿠트(Coot) 여객기가 1957년에 등장했는데 두 기종은 제트 여객기보다 비행속도는 좀 느리지만 항속거리가 6,500~9,600 해리에 달해 충분하게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서유럽 지역까지 무착륙 비행이 가능했다. 사실 냉전시기인 만큼 소련은 순수한 민간 여객기를 개발할 여유는 없었기에 Tu-114 여객기의 경우 Tu-95 장거리 폭격기와 연계하여 개발했고 Il-18 여객기도 Il-38 해상초계기의 기본 플랫폼으로 사용했다.
 
 
서방 여객기에 대항할 제트여객기 개발
1960년대에 들어서 소련 정부는 165명의 승객을 태우고 4,500km를 비행할 수 있는 제트여객기의 개발을 요구했는데 이는 보잉 707, DC-8 여객기와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는 경쟁심과 더불어 장거리를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여객기를 개발한다면 중앙아시아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전략미사일 기지를 신속하게 연결한다는 군사적인 목적도 내포하고 있었다. 원래 중앙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전략미사일 기지는 철도편으로 연결했는데 눈이 많이 쌓이는 겨울철이 되면 교통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았고 항공기로 연결하려고 하여도 당시 많이 사용하던 왕복엔진 수송기는 추운 날씨에 가솔린이 얼어붙거나 엔진이 고장 나는 경우가 많아 불편한 점이 많았다.

따라서 추운 날씨에도 운항이 가능한 제트 엔진 기종이 매우 필요했기에 소련 정부는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를 내세워 장거리 여객기 겸 수송기를 개발하고자 했다. 소련에서 등장한 첫 번째 장거리 제트 여객기인 일류신 Il-62 클래식(Classic) 기종은 1960년대 초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1963년 1월 3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할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는데 외형이 1962년에 등장한 영국의 빅커스 VC10 여객기와 매우 비슷하여 소련의 정보원이 영국의 설계도면을 몰래 입수하여 설계했다는 소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운항할 수 있도록 Il-62 여객기는 독특하게 설계됐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랜딩기어이다. 보잉 747 기종처럼 대형 여객기가 아닌 Il-62 여객기는 일반적인 단일 타이어 방식의 랜딩기어로 충분하게 이착륙이 가능한데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활주로에서 안전하게 이착륙하고 제동거리를 확보하도록 4륜 보기타입의 랜딩기어를 설치했다.



일류신 설계국에서 Il-62 여객기를 개발하는데 가장 고민한 부분은 바로 주익과 엔진의 위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객기는 주익의 아랫면에 엔진을 매다는 방식(Pod Type)을 선호하는데 이렇게 엔진을 설치하면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주익 내부에 위치한 연료탱크까지 빠른 속도로 화재가 번지지 않으며 엔진이 객실과 떨어져 있어 소음유입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엔진의 설치위치가 낮아 지상에서 정비할 때 편리한데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무거운 엔진을 주익에 매달아 놓았기 때문에 비행 중에 양력이 발생하여 주익이 위쪽 방향으로 휘어져 올라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어 주익이 변형되는 문제가 해결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보잉 707 여객기처럼 엔진을 주익에 매다는 방식으로 설계하면 비행 중에 주익에서 발생하는 불규칙한 공기의 흐름이 날개에 진동을 일으켜 점차 주익이 춤을 추면서 펄럭이다가 결국 주익이 부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주익에 흐르는 공기의 흐름이 진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익의 형태와 엔진의 위치를 세심하게 설계하고 풍동에서 오랜 시간동안 실험을 진행하여야 한다. 보잉의 경우에도 B-47 제트 폭격기를 처음 개발할 때 엔진의 위치로 인한 날개의 변형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설계기술을 터득했다.

그러나 제트 엔진을 탑재한 항공기를 설계하는 기술이 충분하지 못한 소련은 이러한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주익에 엔진을 직접 부착하는 방법을 포기하고 빅커스 VC-10 여객기나 록히드 C-140 제트스타 비즈니스 제트기처럼 동체의 뒷부분에 엔진을 묶어서 한꺼번에 설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렇게 엔진을 설치하면 승객이 탑승하는 객실과 엔진의 거리가 멀어져서 객실의 소음이 줄어들며 무엇보다도 주익의 공기흐름을 방해하지 않아 양력이 골고루 발생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엔진의 배치는 어느 한 쪽 엔진이 고장 날 경우 발생하는 추력의 불균형으로 좌우방향으로 기수가 틀어지는 현상(요잉 모멘트) 발생이 적으며 아울러 방향 안정에 필요한 수직미익의 크기가 작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Il-62 기종과 같은 엔진의 배치는 단점도 존재하는데 무엇보다도 비행 중에 발생하는 양력으로 인하여 주익이 위쪽 방향으로 꺾여 올라가는 현상을 엔진의 무게로 상쇄하는 효과가 없어 심할 경우 주익이 휘어지면서 손상될 우려가 있고 주익에서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이 기수를 들어 올리면서 실속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설계방식은 일반적으로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에 많이 사용하지만 주익이 큰 대형 여객기에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데 Il-62 여객기는 주익의 공기흐름으로 인한 실속발생을 방지하고자 주익의 앞전에 돌기물을 설치하여 공기의 흐름을 안정시키도록 하고 있다.
 

II-62, 공산권 국가에 주로 수출
일류신 Il-62 여객기의 시제기는 1963년 1월 3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는데 이때는 영국의 VC10 여객기가 초도비행에 성공한지 불과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성공적으로 비행시험을 마친 Il-62 여객기는 생산을 시작하여 1967년 3월부터 소련의 아에로플로트항공에 인도되어 모스크바~하바롭스크, 모스크바~노보시비르스크 노선을 운항하기 시작했다. 초기형인 Il-62 기종을 개량한 Il-62M 기종은 1971년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다음 1973년부터 운항을 시작했는데 연비가 좋지 않았던 NK-8 엔진을 대신하여 추력이 향상된 솔로비예프 D-30KU 터보팬 엔진이 탑재됐으며 주익의 플랩이 개량되고 스포일러가 추가됐다.



세 번째로 등장한 Il-62MK 기종은 전자 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한 중거리 여객기인데 등장하자마자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1978년에 개발이 중단됐다. 또한 250명의 승객이 탑승하도록 동체를 연장한 개량형도 계획했으나 Il-86 와이드 바디 여객기가 개발되면서 중단됐다.

소련에서 개발한 다른 기종처럼 일류신 Il-62 여객기는 단순한 구조로 설계됐는데 특히 고속으로 비행하는 여객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종 장치는 케이블과 풀리를 사용하는 단순 기계방식으로 유압장치도 적용하고 있지 않다. 일류신 설계국이 처음으로 개발한 제트 여객기인 Il-62 기종은 보잉 707 기종과 같이 3+3 좌석배치를 가지고 있으며 탑승하는 승객도 170~180명 정도로 보잉 707 여객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별다른 특징이 없다는 느낌을 주는 Il-62 여객기는 초창기에 연비가 좋지 않아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신형 터보팬 엔진으로 변경한 Il-62M 기종은 안정적인 비행성능과 긴 항속거리를 갖추고 있어 소련을 비롯하여 체코, 앙골라, 중국, 쿠바 등 공산권 국가에 수출됐으며 장기간 일선에서 운항했다. 1980년대에 등장한 Il-86 대형 여객기가 항속거리 부족문제로 인하여 중단거리 노선에서만 운항되는 관계로 장거리 노선에서 Il-62 기종을 계속 운항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어서 Il-62 여객기는 불과 285대만 판매됐음에도 불구하고 1963년부터 1993년까지 장기간 생산이 계속되는 진귀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계속 사용하고 있다.


Il-62 초기형은 모두 퇴역했으며 현재 운항 중인 Il-62 기종은 모두 개량형인 Il-62M 기종으로 여객기뿐 아니라 일부 기체는 Il-62 MGr 화물기로 개조되어 운항중이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