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8) 더글러스 DC-5 & DC-6(Douglas DC-5 & DC-6)

DC-3와 DC-4의 연이은 성공으로 여객기 메이커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더글러스사는 노스롭사를 합병하면서 사세를 키워나갔으며, 간선노선에 이은 지선노선에 취항할 소형 여객기의 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와 판매시장의 제약, DC-3의 대량판매에 따른 영향으로 DC-5는 참담한 실패작에 그치고 말았다. DC-5에 이어서 등장한 DC-6 시리즈는 중장거리 여객기의 베스트 셀러인 DC-4의 개량형으로 등장하여 경쟁 업체인 록히드사의 콘스텔레이션과 성능을 다투며 발전하여 성능과 경제성면에서 우수성을 인정 받아 여객기 전문메이커로서의 더글러스사의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 걸작기였다. 
 
더글러스 DC-5(Douglas DC-5)
더글러스 에어라이너(Douglas Airliner)는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Santa Monica)에 본사를 두고 항공기의 설계와 제작을 추진하여 왔으며, 한편 잭 노스롭(Jack Northrop)이 설립한 소규모의 노스롭사는 1938년에 더글러스사의 엘 세군도 부문(El Segundo Division)으로 합병되면서 첫번째 개발 작품으로 새로운 형태의 민간여객기로 설계, 제작하게 되었으며, 이 신형 여객기가 바로 더글러스 DC-5이다.

이 신형여객기는 16~22명의 승객을 태우고 소규모 지방공항의 좁은 활주로에서도 운항할 수 있도록 정비작업이 간편한 지선 여객노선에 적합한 단거리 쌍발 여객기로 개발되었으며, 더글러스 에어라이너의 여객기로는 드물게 최초로 주익을 고익형태로 배치하였다. 기체의 설계는 엘 세군도 부문의 수석 엔지니어로서 나중에 스카이레이더, 스카이호크를 설계한 유명한 엔지니어인 에드 하이네만(Ed Heinemann)이었으며, 기체는 DC-4E와 같은 앞 바퀴식 랜딩기어를 채택하였고, 조종석의 부품은 DC-3에서 가져 다가 사용하여 개발비용 및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였다.



1호기(NX21701)은 1939년 2월 20일에 초도 비행을 하였으며, 같은 해에는 DC-5에 대하여 펜실바니아 센트럴(6대), 콜롬비아의 SCADTA(2대), 네덜란드의KLM(4대)등 모두 12대의 발주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DC-5를 발주한 항공사중 펜실바니아 센트럴 에어라인(Pennsylvania Central Airline)이 보유항공기의 운영계획을 변경하여 DC-5를 발주 취소를 하고 DC-3를 구입하였으며, SCADTA도 발주를 취소하여 결국 KLM만이  DC-5를 구입하는 유일한 항공사가 되었다.

KLM에 납품하는 DC-5는 1939년 9월에 일어난 2차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예정대로 유럽노선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대신 2대의 항공기(PJ-AIW, PJ-AIZ)가 1940년 5월에 네덜란드령 서인도제도의 큐라소로 보내졌으며, 이곳의 KLM(서인도)에 배속되었다. 다른 2대의 항공기(PK-ADA, PK-ADB)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바타비아(자카르타)로 선박 편으로 보내졌으며, 이곳의 KNILM(Royal Dutch Indies Airlines)에 배속되었다. 다음해인 1941년 5월에 서인도제도의 2대도 동인도의 KNILM으로 합류하게 되었으며, 선박 편으로 보내진 후 등록기호도 PK-ADC, PK-ADD로 변경되었다.

1941년 12월 8일에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고 쟈와에 있던 4대의 DC-5는 이 지역에서의 수송과 피난민의 수송에 사용되었으며, 그 중 1대(PK-ADA)는 1942년 2월 9일에 바타비아의 민간비행장에서 일본군의 공습으로 파손되었으며 일본군의 전선확장으로 활동의 범위가 좁아졌다. 이에 따라 2월 19일 밤중에 KNILM 소속기는 모두 호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파손된 1대를 제외한 나머지 3대의 DC-5는 호주로 탈출하였다.

호주에 도착한 3대의 DC-5는 PAA를 통하여 미 육군 항공대의 수송기로 임차되었으며, 나중에는 완전히 미 육군 항공대에 매각되어 C-110이라는 제식 명칭과 44-83230~44-83232의 시리얼 넘버가 붙여졌다. 그 후 1945년에는 필리핀의 루손섬 기지에 배치되어 활동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남아있는 기체 중 2대는 폐기 처분되고, 1대는 오스트레일리안 내셔널 에어웨이즈(Australian National Airways)에 매각되었다. 이 항공사는 DC-5를 재생하여 사용하다가 1948년 6월에 이스라엘에 매각하였으며, 이곳에서 유일한 여객기형 DC-5는 일생을 마감하였다.



한편 DC-5의 초도기는 보잉사의 사장을 역임한 W. E. 보잉(Boeing)이 개인소유의 16인승 자가용기로 구입하여 사용하였으며, 2차대전이 발발하자 1942년에 미해군의 R3D-3라는 명칭으로 징발되었고, 쟈와에서 일본군의 공습을 받아 파손되어 방치되었던 구KNILM소속 기체는 일본군의 정비대가 수리하여 일본으로 보내져 각종 테스트를 받았으며 일반에도 공개되었다.

민간기로서 DC-5는 5대가 제작되었으며, 이외에도 미 해군용으로 3대의 R3D-1, 미 해병대용으로 4대의 R3D-2가 군용기로 제작되었다. 이중 R3D-1의 초도기는 시험비행 도중 추락하여 실제로 취역한 기체는 6대이며, 미 해병대는 동체의 측면에 대형 도어를 설치하여 공정대원의 훈련용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이 기체는 실제로 VMJ-1과 VMJ-2에 배속되어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대신, 미 해군과 미 해병대의 기지간 연락 수송임무에 사용되었다. 한편 호주에 배속된 1대의 R3D-2는 특이하게도 호주 연안에서 적 잠수함의 총격으로 추락하였다. 미 해군과 미 해병대에서 사용한 기체는 2차대전이 끝난 후 1946년 10월말까지 모두 폐기 처분되어 생존기체는 없으며, 전쟁 후 DC-3가 대량으로 민간회사에 불하 된 것과 비교할 때 군용으로 사용된 DC-5의 최후는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DC-5를 개발하였던 더글러스의 엘 세군도 부문은 2차 대전 중에 SBD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의 생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DC-5의 대량생산은 착수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며, 성공작이었던 DC-3의 그늘에 가려 빛을 내지 못하였다. 더구나 DC-5는 설계단계에서 기체의 예상중량을 초과하여 공중 비행성능이 나쁜 편이었으며, 더글러스의 DC 시리즈 중 최악의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제원]
 
더글러스 DC-5
 
형식 : 여객수송기
승무원 : 3명
전폭 : 23.8m
전장 : 19.0m
전고 : 6.0m
주익 면적 : 76.6㎡
엔진 : 라이트 사이클론 R-1820-79 래디얼 피스톤 엔진(출력 1,100마력) ×2대
자체중량 : 6,190kg
총중량 : 9,650kg
최대속도 : 370km/h(고도 2,320m)
순항속도 : 324km/h(고도 3,048m)
초기상승률 : 483m/min
상승한도 : 7,230m
최대항속거리 : 2,574km
페이로드 : 승객 최대 19명
 
 
더글러스 DC-6(Douglas DC-6)
더글러스사는 2차 대전 이전에 걸작 여객기인 DC-4를 개발하여 장거리 고속여객기 분야에서 선두업체로 부상하였으나,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민간 여객기의 개발 및 생산을 중단하고 전시체제로 돌입하여 군용기의 생산에 주력하게 되었다. 한편 쌍발고속의 엘렉트라(Electra) 명칭을 구입한 록히드(Lockheed)사는 더글러스사와는 달리 전시생산 물량면에서 여유가 있는 관계로 TWA와 공동으로 더글러스사의 DC-4보다 고성능인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의 개발을 추진하였다. 이를 알게 된 더글러스사는 전쟁의 후반기인 1944년 하반기에 시장의 선점을 위하여 콘스텔레이션에 대항할 수 있는 신형 여객기의 개발이 필요함을 판단하게 되었으며, 유나이티드 항공과 미 육군 항공대와 상담을 가진 후 개발을 시작한 기체가 바로 더글러스 DC-6이다.

DC-6는 대륙횡단노선용인 DC-4에 여압 캐빈을 부착한 형식으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구체적인 설계단계에서 동체의 단면형태는 DC-4와 같은 계란형으로 결정되었고, 주익의 뒷전위치에서 뒤쪽으로 2.47m를 연장하여 여객 수용능력이 42석에서 52석으로 증가하였다. 한편 조종실과 객실을 여압화하여 높은 고도로 비행할 때의 쾌적성을 높였으며,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하여 탑재 엔진의 경우 1,400마력의 P&W 트윈 와스프 엔진을 콘스텔레이션과 같은 2,000마력급의 P&W 더블 와스프 엔진으로 교체하고 프로펠러를 역 피치 프로펠러로 변경하였다. 한편 주익의 개량을 살펴보면 주익에 설치한 러버 부츠의 방빙장치는 열풍식 방빙장치로 변경하고, 플랩을 슬로티드 플랩에서 더블 슬로티드 플랩으로 변경하여 이착륙성능을 향상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변경으로 DC-6는 콘스텔레이션에 대항할 수 있는 순항속도와 항속거리를 발휘할 수 있어 비행 성능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체의 폭이 DC-4와 같은 관계로 콘스텔레이션보다 36cm가 좁아 여전히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DC-4의 개량형으로 등장한 DC-6에 대하여 1944년 9월에 유나이티드 항공의 20대와 아메리칸 항공의 발주를 받았으나, 전시중에 민간여객기의 개발 허가를 받기 어렵게 되자 더글러스사는 미 육군에 군용수송기로의 개발을 제안하여 발주를 받는데 성공하였으며, 개발을 계속 진행하였다. 이렇게 하여 등장한 XC-118은 2차대전이 끝난 후 1946년 2월 15일에 초도 비행을 하였으며 군용기로서의 대량생산은 단념하여야 했지만 더글러스사는 당초 의도한대로 전쟁 후 민간항공 업계에 판매할 수 있는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었다.

순수한 민간형인 DC-6의 초도기(NX90701)는 1946년 6월 29일에 초도 비행을 하였으며, 같은 해 11월부터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에 인도가 시작되었다. 두 회사는 모두 C-54를 개조한 DC-4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TWA의 콘스텔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하여 DC-6의 인도를 기대하고 있었다. 다음해인 1947년 4월 27일에 유나이티드 항공은 미국대륙 횡단노선에, 아메리칸 항공은 뉴욕~시카고간 노선에 취항하였다. DC-6의 미국대륙 횡단노선 취항은 TWA의 콘스텔레이션 취항보다 1년 이상 늦게 취항하였으며, 콘스텔레이션의 약 11시간 소요기록에 대하여 도중에 네브라스카주 링컨에 착륙하는 서해안행 노선은 11시간, 반대로 동해안행 노선은 10시간에 비행하였으며,뉴욕~시카고 노선의 경우에도 순항속도를 단축하였다. 이에 대하여 TWA는 대륙횡단 노선을 동해안행은 시카고  기착이 10시간 10분, 서해안행은 11시간 40분까지 단축을 시도하였으며, 항공사간의 속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같은 해 10월 24일에는 유나이티드항공의 DC-6가 비행 중 화재로 추락하여 5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아메리칸 항공의 DC-6가 공중화재로 불시착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취항 6개월만인 11월 12일에 비행금지조치가 내려졌으며, 더글러스사의 여객기 개발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 따라서 더글러스사는 필사적으로 사고원인을 조사하였으며, 사고의 원인은 연료벤트로 배출되는 연료가 캐빈 히터에 유입되면서 공중에서 발화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따라 4개월후인 1948년 3월 21일에 비행금지처분이 해제되었으며, 더글러스사는 이미 인도한 기체에 대하여 예방대책을 실시하였다.

미국 내에서 내셔널항공이 이스턴 항공의 콘스텔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하여 DC-6를 도입하여 뉴욕~플로리다 노선에 취항하였다. 또한 브라니프 와 델터 항공도 DC-6를 채택하였으며, 유럽의 항공사중 벨기에의 사베나항공이 1947년 8월에 브뤼셀~뉴욕 노선에 취항하여 유럽 최초의 DC-6 운용회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KLM과 SAS에도 취항하였다. 신규 제작한 DC-6를 구입한 항공사는 1950년대 말부터 1968년경에 DC-6를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였으며, 야간 호화침대 서비스를 실시하였던 아메리칸 항공은 1951년에 서비스를 중지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DC-6의 기체 가격은 1946년 당시 약 60만 달러였다.
 
DC-6A & DC-6B
1949년 9월 29일에 초도 비행을 한 DC-6A의 가장 큰 기술적인 특징은 엔진에 메탄올을 분사하여 순간출력을 높이는 P&W 더블 와스프 래디얼 엔진을 장착한 화물 수송형으로 DC-6의 주익, 꼬리부분, 랜딩기어를 그대로 두고 동체를 1.52m 연장하였으며, 동체의 앞쪽과 뒤쪽에 1.14×0.94m의 대형 화물용 도어를 설치하고 바닥을 강화한 본격적인 화물 수송기이다.

또한 DC-6보다 정비가 간편하고 전기계통을 개량하였다. 화물실은 길이 20.74m, 높이 2.36m, 폭 2.67m, 용적 141.5㎥으로 자동 조절이 가능한 여압장치를 갖추었다. DC-6A의 성능에 주목한 미 육군항공대와 미 해군은 각각 C-118A와 R6D라는 명칭으로 대량의 발주를 하였으며, 이에 따라 민간 항공사의 화물기 취역은 연기되어 DC-6B보다 5일 늦은 1951년 4월 16일에 취역하게 되었다. DC-6A의 생산 수량은 DC-6 시리즈 중 민간형으로는 3번째이며 순수한 DC-6A를 운용하는 간선 항공사에서 취항이 종료된 DC-6A는 여객 및 화물수송의 신속한 전환이 가능한 퀵체인지형인 DC-6C로 상당수의 기체가 개조되었다.

DC-6A의 여객 수송형인 DC-6B는 DC-6A의 화물용 도어 및 화물운반 장치를 철거하고, 여객 수송형으로 개조한 기체로 기수에 RCA사의 기상 레이더를 장착하여 전장이 33cm가 연장되었다. DC-6B는 최초의 여객 수송형인 DC-6와 비교할 때 약 7%의 페이로드용량이 증가하였으며, 14%의 여객탑승 능력이 증가(국내선의 경우 56석 전체 퍼스트 클래스에서 64석 퍼스트 클래스로 증가)하여 운항비용이 저렴하여 경제성이 있었으며, 경제성면에서는 나중에 등장한 DC-7 시리즈와 더불어 프로펠러 여객기 중에서는 정평을 얻었다. 또한 엔진 출력의 증가에 따라 고지대에 위치한 공항에서도 운항이 편리하였으며, 속도면에서도 우수하였다.

DC-6B의 초도기는 1951년 2월 2일에 초도 비행을 하였고, 유나이티드 항공에서는 1949년에 6대의 발주를 시작으로 모두 43대를 구입하였으며, 아메리칸 항공도 25대를 발주하였다. 취역 시기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1951년 4월 11일에, 아메리칸 항공이 같은 해 4월 29일에 대륙횡단 노선에 취항하였다. 이에 대하여 라이벌 항공사인 TWA는 1년 반이 지난 1952년 9월에 종래의 콘스텔레이션의 동체를 5.5m 연장하여 여객 탑승력을 35% 증가 시킨 L1049 슈퍼 콘스텔레이션을 등장시켰으며, 다음해인 1953년 10월에는 동해안행 대륙횡단 노선을 8시간에 중간 무착륙으로 운항이 가능한 L1049C이 취항하여 더글러스 에어라이너에 대한 록히드 에어라이너의 맹렬한 추격이 급속하게 전개되었다.

이에 대하여 더글러스사는 DC-7 시리즈를 개발하여 대응하였다. DC-6B는 DC-6/DC-7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폭 넓게 사용되었다. 특히 1953년 5월에는 민간 여객기로서는 최초로 북극을 넘어가는 항로를 개척하여, SAS의 오슬로~도쿄 노선에 DC-6B가 취항하여 민간항공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였다. DC-6는 DC-4에서 향상된 더글러스사의 기술이 발전하여 결실을 맺은 기종으로 더글러스사는 성능과 경제성에서 우수한 DC-6B의 성공으로 여객기 시장의 선도회사로 인정 받게 되었다.
 
[민간형 DC-6의 형식]
DC-6 : DC-4에서 발전한 여압캐빈 여객기. 2,000마력급의 엔진을 장착. 원형은 군용 수송기인 XC-118. 승객 48~80명 탑승. 175대 제작
 
DC-6A 리프트마스터 : 동체를 연장하고 엔진을 강화한 화물 수송형. 군용형은 C-118A/R6D로 명명. 1949년 9월 19일 초도 비행. 74대 제작.
 
DC-6B : DC-6A의 여객 수송형. 기상 레이더를 탑재. 1951년 2월 2일 초도 비행. 288대 제작
 
DC-6C : DC-6A의 여객화물 퀵체인지형.
 
 
[제원]
 
더글러스 DC-6B
 
형식 : 여객수송기
승무원 : 3~5명
전폭 : 35.81m
전장 : 32.51m
전고 : 8.74m
주익 면적 : 136㎡
엔진 : P&W R-2800-CB-17 래디얼 피스톤 엔진(출력 2,500마력) ×4대
자체중량 : 25,132kg
최대이륙중량 : 48,578kg
순항속도 : 507km/h
항속거리 : 4,000km(최대탑재량)
페이로드 : 승객 최대 54명~102명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