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18) Tu-104

제트 여객기의 계보 (18)
Tupolev Tu-104 Camel

 
구소련 항공기. 제트엔진으로 교체
1956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영국-프랑스-이스라엘과 아랍국가의 갈등이 깊어지던 시기에 각국은 전쟁이 갈등의 해결 수단이 아님을 알고 타협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소련은 아랍권의 입장에서 중재를 시도했는데 당시 니콜라이 불가닌 총리와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영국의 런던을 직접 방문하여 직접 대화를 시도했는데 런던을 방문할 때 당시 최신 기종에 속하는 제트 여객기를 이용하여 서방측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1950년대 초반에 영국의 항공 산업은 냉전의 상황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특히 세계 최초로 제트여객기인 D.H. 코메트 여객기를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코메트 여객기가 1952년부터 상업운항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54년부터 연이어 의문의 추락사고가 발생하여 사고원인을 규명할 때까지(1958년) 운항을 중지했는데 이러한 시기에 당시 서방국가와 냉전 관계에 있었던 소련의 국가원수가 최신예 제트여객기를 타고 런던을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선전 효과를 불러왔다.

냉전이 시작되던 1940년대 말부터 과학기술이 앞서있다고 여기던 서방측 관계자의 생각과는 달리 소련은 독일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전략무기 개발에 노력하여 서방측 관계자들을 긴장하게 했는데 당시 영국이나 미국의 국가원수도 제트여객기가 아닌 구형 여객기를 이용하던 시기에 소련의 국가원수는 보란 듯이 최신 제트여객기를 타고 서방국가를 방문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순수한 민간항공의 차원에서 여객기 개발에 나섰던 서방국가와 달리 소련의 경우에는 군사적인 의도에서 제트여객기의 개발을 시작했다. 1940년대 말부터 냉전이 시작되면서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의 중요성이 부각됐는데 제트엔진을 탑재하고 공중급유를 받으며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전략폭격기를 연이어 개발하던 미국, 영국과 달리 항공기술이 부족했던 소련은 장거리 전략폭격기 개발에 뒤쳐져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은 소형 전술폭격기만 개발하던 기술수준으로 대형 전략폭격기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2차 대전 말기에 일본 폭격임무 도중 피격되어 사할린에 불시착한 미 육군항공대 B-29 폭격기 기체를 입수한 소련은 곧바로 역설계하여 B-29 폭격기의 복제판인 Tu-4 Bull(불) 폭격기를 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이후 소련의 유일한 전략폭격기인 Tu-4 폭격기는 그 자체로 비행성능은 우수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제트전투기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속도가 느린 왕복엔진 폭격기는 생존성이 크게 낮아지는 형편이었다.

한국전쟁에서 MiG-15 제트전투기로 B-29 폭격기를 요격했던 소련 공군은 미 공군의 B-47 폭격기처럼 비행속도가 빠른 제트폭격기가 필요했으나 당시 소련은 핵심기술이었던 제트엔진 기술이 부족하여 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련의 엔진 개발을 주도하던 알렉산더 미쿨린 설계국에서 전략폭격기 탑재용으로 AM-3 터보제트 엔진을 개발했는데 신형 엔진을 활용하여 1940년대 말부터 Tu-16, M-4 제트폭격기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9톤의 폭탄을 탑재하고 4,800km를 비행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투폴레프 Tu-16 폭격기는 1952년 4월부터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1,500대 이상이 생산되어 1990년대 초반까지 사용됐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냉전시기에 전투기를 시작으로 폭격기와 공중급유기/수송기를 모두 제트기로 한꺼번에 교체한 미 공군과 달리 소련 공군은 자원의 투입이 제한적이었고 군사력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대륙국가인 소련은 육군에 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했기 때문에 소련 공군은 시급한 전투기와 폭격기의 제트기 교체를 우선 추진했고 수송기나 공중급유기의 제트기 교체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Tu-16폭격기 개조해 여객기버전으로
반면에 소련은 서방국가와 달리 국가에서 운영하는 항공사인 에어로플로트는 평시에 소련의 여러 도시와 해외 도시를 이어주는 민간항공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특히 육로가 없는 광활한 대륙의 격오지를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일반 여객은 물론이고 식료품, 연료 등 보급물자를 운송하는 화물운송 업무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는 점에서 서방측 민간항공사와 차이점이 있다. 이에 따라 에어로플로트는 민간여객기와 더불어 화물수송기도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화물기는 유사시에 공군의 일부로 편성되어 수송 임무를 맡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소련 공군은 전투전력인 전투기와 폭격기의 제트기 교체에 중점을 두고 에어로플로트는 여객기와 수송기의 제트기로 교체하는 일종의 분업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1950년대 초에 에어로플로트는 시베리아 지역과 같은 격오지를 모스크바와 긴밀하게 이어주는 새로운 제트 여객기 개발을 요청했다. 당시에 사용하던 왕복엔진 여객기는 속도가 느리고 항속거리가 짧아 장거리 노선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특히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이 되면 가솔린 연료가 쉽게 얼어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에어로플로트의 제트여객기 개발 요청을 접수한 투폴레프 설계국은 신형 여객기를 새로 개발하려면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야 하지만 이미 개발한 Tu-16 제트폭격기의 기체를 활용하여 개조한다면 간단하게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Tu-16 폭격기의 주익, 미익, 엔진, 전방동체, 랜딩기어를 그대로 활용하고 여압 장치를 갖춘 여객기형 동체를 결합한 Tu-104 카멜 여객기는 50인승 제트여객기로 손색이 없는 기종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1955년 6월 17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Tu-104 여객기는 영국에서 개발한 D.H. 코메트 여객기처럼 동체와 주익이 연결되는 부분에 제트엔진을 설치한 설계방식을 채택했는데 특히 착륙거리를 충분하게 확보하기 어려운 지방공항에서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드래그슈트를 사용하도록 했는데 여객기로서는 매우 진귀한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소련에서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활주로에 착륙할 때 충분하게 브레이크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정을 감안할 때 속도가 빠른 제트기를 안전하게 정지시키려면 드래그슈트가 가장 안전한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제트엔진에 역추진장치가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어 착륙 즉시 안전하게 속도를 줄일 수 있지만 1950년대 당시 터보제트 엔진은 역추진장치가 없는 관계로 속도가 빠른 제트여객기가 이착륙할 때 긴 활주로가 필요한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활주로가 짧은 지방공항은 제트기가 취항하기 어려웠고 이러한 점은 제트여객기가 발전하는데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쌍발 엔진을 장착한 Tu-104 여객기의 조종실에는 5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데 기장, 부기장과 더불어 기상정비사, 무선통신사는 조종실에 탑승하고 항법사는 기수 앞부분에 위치한 유리 돔에 탑승하여 항로를 탐색한다. 이러한 독특한 항법사 전용 좌석은 소련의 대형 항공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치방식으로 관성항법장비, 전파항법장비와 같은 항법장비 기술이 부족한 소련 항공기에서 지형과 지도를 대조하여 항로를 찾아가는 항법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유리로 만든 돔에서 항법사 임무를 수행한다.

1950년대 당시에 소련에서 제트 여객기에 탑승하는 승객은 일반 여행객보다는 지위가 높은 귀빈이 대부분이었기에 소련제 항공기답지 않게 내부 장식에 신경을 썼는데 마호가니 나무, 구리, 실 뜨개 장식등을 이용하여 빅토리아 양식으로 장식한 실내 디자인과 더불어 객실 앞부분에는 귀빈 전용으로 독립 객실을 설치하여 개인공간을 제공했다.

유사시에 공군으로 편입되는 에어로플로트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Tu-104 여객기 조종사와 항법사는 우수한 인원을 선발하여 비행훈련을 실시했는데 우선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다음 Il-28 제트폭격기로 기본적인 비행훈련을 받고 나면 Tu-16 폭격기에 실제로 탑승하여 장거리 비행훈련을 수료하도록 했다.

투폴레프 설계국에서 폭격기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개발한 Tu-104 제트 여객기는 5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었으며 구형 일류신 Il-14 왕복엔진 여객기를 대신하여 1956년 9월 15일부터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의 모스크바~옴스크~이르쿠츠 노선에 취항하기 시작했다. 구형 Il-14 여객기의 경우 13시간 50분에 모스크바~이르쿠츠 노선을 비행하는데 13시간 50분이 걸렸는데 신형 Tu-104 제트 여객기는 7시간 40분으로 운항시간이 무려 45%나 감소했다. 취항 이후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 아에로플로트 항공 Tu-104 제트 여객기는 1957년부터 취항 도시를 계속 확장하여 모스크바~런던을 잇는 국제선 노선에 취항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부다페스트, 코펜하겐, 북경, 브뤼셀, 오타와, 프라하 등 세계 각국의 주요도시를 이어주는 국제선 노선을 확장했다.
 

Tu-104, 다목적으로 개량
소련 항공 산업은 수출을 고려하지 않고 자국의 수요를 우선시하여 항공기를 개발하기 때문에 민간 여객기의 경우 수출실적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며 Tu-104 여객기의 경우에도 소련이 개발한 최초의 제트 여객기이니만큼 상징적으로 공산권 국가에 많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 체코슬로바키아 항공에 1957년에 딱 6대의 Tu-104A 기종이 판매됐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모스크바, 파리, 브뤼셀을 이어주는 국제선에 투입됐다. 체코슬로바키아 항공에서 구입한 6대의 Tu-104A 여객기 중에서 4대는 신규 생산한 기체이며 나머지 2대는 중고 기체를 구입했다. 체코슬로바키아 항공은 기존 아에로플로트 항공에서 기내 앞부분에 설치한 귀빈실 배치를 변경하여 81명이 탑승하도록 개조했다.

Tu-104 여객기는 1956년에 취항한 이래 1970년대까지 소련의 아에로플로트 항공에서 장기간 취항했으며 특히 영국의 D.H. 코메트 여객기가 운항을 중지하던 시기인 1956년부터 1958년까지 기간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운항하는 제트여객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1986년에 퇴역할 때까지 아에로플로트 항공에서 9,000만 명의 승객을 운송한 실적을 기록했으며 운항 도중 18%의 기체가 사고로 손실됐다. Tu-104 여객기는 폭격기를 바탕으로 개발한 독특한 제트 여객기이고 온전하게 민간 여객기로 개발된 기종이 아니기에 안락하고 조용한 탑승감을 제공하지는 못했지만 냉전 당시 기술경쟁의 산물로 탄생한 제트 여객기로 한 시대의 획을 긋는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 여객기로 등장한 Tu-104 제트 여객기는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 이외에 소련 공군과 체코슬로바키아 공군에서도 귀빈 수송용으로 사용했으며 몽고 정부에서도 국빈용으로 사용했다.

Tu-16 폭격기 개발 기술을 활용하여 서둘러 개발한 Tu-104 여객기는 취항을 시작한 이후에도 꾸준하게 개량을 거듭했는데 최초로 생산한 Tu-104 기종에 이어 1957년 6월에 등장한 Tu-104A 기종은 파워가 높아진 AM-3M 엔진을 탑재하여 7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개량형이다.

Tu-104B 기종은 동체를 1.2m 연장하고 AM-3M-500 엔진을 탑재한 개량형으로 10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기종으로 1959년 4월부터 아에로플로트 항공의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선에 취항하기 시작했다. Tu-104V-115 기종은 원래 100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Tu-104B에 6열 좌석을 적용한 기종으로 좌석이 좁아진 대신 최대 115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기종이다.

투폴레프 Tu-104 여객기는 민간 여객기로 개발이 시작된 기종이지만 유사시 소련 공군의 인원, 화물수송 임무를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에서 담당하는 특성을 반영하여 군용 수송기로 개발하는 시도가 있었다. Tu-107 수송기는 제트 엔진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Tu-104 여객기를 기반으로 동체의 뒷부분에 화물을 실을 수 있는 로딩 램프를 설치한 기종으로 소형 차량, 경전차, 곡사포와 같은 화물을 적재하거나 또는 70명의 낙하산 대원이 탑승할 수 있으며 방어용으로 기체 후방에 2문의 23mm 기관포를 설치했다. 그러나 기술부족으로 로딩 램프를 설치하면서 여압이 되지 않아 낙하산 대원은 비행 중에 산소마스크를 사용한다. Tu-107 수송기는 1대를 제작하여 공정사단의 신속전개용으로 테스트한 결과 기체의 높이가 높아 화물적재가 불편하며 여압이 되지 않아 산소마스크를 사용하는 불편한 점이 있어 실제로 대량생산되지는 못했다.

1957년에 초도 비행한 Tu-110 쿠커 여객기는 성능이 제한적이어서 수출에 어려움이 있는 Tu-104 여객기를 대폭 개량하여 4발 엔진을 탑재하고 성능을 높여 수출시장에 도전하려는 목적으로 개발한 기종이다. 신형 AL-7 터보제트 엔진을 탑재한 Tu-110 기종은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3,500lm를 비행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4대만 생산되는데 그쳤으며 나중에 D-20 터보팬 엔진으로 개량됐다.

Tu-104 여객기의 개량형으로 큰 성공을 거둔 유일한 기종인 Tu-124 쿡폿 기종은 Tu-104 기체를 56인승 단거리 여객기로 개조한 기종으로 탑재한 엔진을 터보팬 엔진으로 변경했다. Tu-124 기종은 모두 164대가 생산되어 1990년대까지 장기간 운항했고 많은 국가에 수출됐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