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4) 보잉 377 Stratocruiser



2차 대전을 전후로 군용기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보잉사는 민간여객기 시장진입으로의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야심차게 개발한 모델 307과 모델 314는 2차 대전 중에 생산이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민간에게 대량으로 불하한 커티스 C-46, 더글러스 DC-3, DC-4가 시장을 독점하면서 보잉사의 여객기가 발을 들여놓을 입지가 부족하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보잉사는 쾌적성이 우수한 모델 377 스트라토크루저(Stratocruiser)를 내놓았으며, 큰 인기를 얻으면서 보잉 377은 2차대전후 항공수송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개발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보잉사는 고고도를 비행할 수 있는 민간여객기의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그 첫번째 시도로 모델 307 스트라토라이너(Stratoliner)의 개발을 추진하였다. 이 모델은 세계 최초의 여압식 항공기를 목표로 야심적으로 개발한 여객기였다. 이 기체는 보잉 B-17 플라잉 포트레스(Flying Fortress) 중폭격기를 민간기로 발전시킨 모델이었으며, 2차대전의 발발로 개발작업을 마무리 하고,  보잉사는 B-29 슈퍼 포트레스(Super Fortress)의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보잉사의 여객기 사업은 연기되었다.

진주만 기습 직후, 보잉사는 B-29의 군용 수송기형의 설계작업에 착수하였으며, 주익, 엔진, 미익, 착륙장치는 B-29 폭격기에서 그대로 가져오고, 동체의 아래쪽 2/3 정도를 상부 데크와 결합하여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승객수용능력을 높이도록 하였다. 보잉 377의 독특한 기체구조는 넓은 객실용 데크의 확보와 함께 화물실의 수용능력도 높았으며, V자형의 ‘더블 버블(Double Bubble)’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기체형상으로 다른 여객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이다.

미 육군 항공대(USAAF)는 보잉사의 새로운 수송기 설계 안을 채택하고, 1943년 1월 23일에 3대의 시험 제작기(XC-97/모델 367)를 발주하였다. XC-97은 나중에 스트라토프레이터(Stratofreighter)라는 애칭이 붙여졌다.

모두 4대가 생산된 YC-97은 전기 가열식 결빙방지기능, 앞 바퀴 조향기능 등 보잉 B-50 폭격기에 채택한 새로운 기능을 적용하였다. 또한 보잉 YC-97은 출력 3,500마력의 프래트 & 휘트니제 R-4360 와스프 메이저(Wasp Major) 엔진을 탑재하였으며, 이 엔진은 B-29에 탑재한 R-3350 엔진보다 슬림화된 나셀을 장착하며, 엔진이 정지할 경우에도 조종성을 좋게 하기 위하여 수직안정판을 높게 설계하였다. 제작한 4대중 3대는 병력수송기 사양으로, 134명의 탑승이 가능하였다. 나머지 1대(YC-97B)는 80석 사양으로 고위장교 및 VIP 수송기로서 여객기에 버금가는 인테리어를 갖추었다. 이 기체는 뒤이어 개발된 스트라토크루저 여객기의 선구자로서 제조라인에서 출고하는 다음 여객기는 이 기체가 시작기의 역할을 하였다.

보잉사는 1944년 11월에 XC-97의 초도기가 초도 비행을 실시하기 1주일전에 C-97의 여객기형의 제조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팬암(Pan American)사가 20대의 스토라토크루저를 발주하였으며, 보잉사는 첫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군용기인 보잉 367의 발전형인 모델 377 여객기형의 시작기(모델 377-10-19)는 1947년 7월 8일에 초도 비행을 하였으며, 1950년 10월 24일에 ‘클리퍼 나이팅게일’의 애칭으로 팬암사에서 상업운항을 시작하였다. 한편 양산형의 초도기도 팬암사에 인도하였으며, ‘골든 게이트’라는 애칭으로 1949년 4월 1일에 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노선에 운항을 시작하였다. 팬암사는 스트라토크루저를 27대나 보유한 최대의 운항 회사였다. 이후 스트라토크루저는 민간항공회사에 모두 56대가 판매되어 모델 247이나 모델 307보다 높은 판매 실적을 달성하였다.

스트라토크루저의 항속거리는 4,425km로 경쟁사인 록히드사의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의 항속거리보다 짧았으나, 탑승여객수가 평균 80명으로 ‘코니’의 평균 54명보다 많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몇몇 항공사는 보잉 377의 넓은 여객실을 충분히 활용하여 최대 100까지 수용 가능한 사양의 항공기를 운항하기도 하였다.

XC-97의 초도기는 1945년 1월에 시애틀~워싱턴DC간을 6시간 4분에 비행하는 우수한 기록을 남겼으며(비행거리 3,738km, 페이로드 9,071kg) 승객실에 여압을 하여 비행고도를 9,144m까지 높여 서풍을 이용하여 평균대지속도 453km/h를 기록하였다.
 

 

높은 인기와 낮은 신뢰성

팬암을 당시 북대서양노선을 독점하여, 1946년 1월부터 2대의 콘스텔레이션을 투입하여 운항을 하였으며, 1949년 6월 2일에는 스트라토크루저의 9호기 ‘메이플라워’가 뉴욕~런던간에 취항하였다.

다른 항공사도 팬암에 이어 스트라토크루저를 발주하기 시작하여, 아메리칸 오버시즈 에어라인(American Overseas Airlines) 이 8대의 스트라토크루저를 발주하였으나 이 항공사는 1950년 9월 25일에 팬암사가 인수하였다. 한편 노스웨스트(Northwest) 항공이 10대, 유나이티드(United)항공이 7대를 발주하였으며, 영국해외항공(BOAC)도 6대를 발주하였다.

객실사양은 취항하는 노선에 따라 침대좌석를 구비한 20인승부터 일반좌석의 100인승까지 다양하였다. 객실사양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주방은 기체후방에 설치되었으며, 화장실은 조종석후방에 2군데가 설치되었다.

조종실은 다른 기종과 비교할 때 승무원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 스트라토크루저의 운항승무원은 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 항공기관사, 무선사 등 5명으로 구성되었다. 스트라토 크루저의 조종실이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조종실이 매우 넓고, 앞쪽에 넓은 창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시계가 극히 양호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스트라토크루저의 기장들은 ‘매우 훌륭한 항공기이다. 계기판의 주변에도 아래쪽으로 창문이 있어, 활주로까지의 시계가 확보되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다.’라고 칭찬하였다.

연료는 주익에 격납하는 주머니식 탱크에 수용하며, 모두 28,864ℓ를 탑재한다. 팬암사는 나중에 주익외부에 연료탱크를 추가하여 탑재량을 1,519ℓ증가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개량을 실시한 ‘슈퍼 스트라토크루저’는 항속거리가 연장되어 뉴욕~런던~파리간의 직행노선에 취항하였다.

스트라토크루저는 승객에게도 인기가 있었으나, 운항의 신뢰성에 관한 기록은 좋은 편은 아니며, 주력기종을 취항한 후 10년간 6대가 사고로 손실되었다. 기본적인 문제는 프로펠러가 원인이었다. 커티스 일렉트로닉스제의 프로펠러를 장비한 스트라토크루저는 트러블의 발생이 없었으나, 커티스 프로펠러를 채택한 항공회사는 2개사에 불과하였으며, 다른 항공회사는 표준형의 해밀톤제 프로펠러를 장비하였다. 해밀톤제의 프로펠러는 내부가 비어있는 주조제품으로 매우 가벼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평소에는 효율이 극히 높으나, 피로가 누적되면 손상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스트라토크루저는 최대탑재상태에서의 이착륙 시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미국의 항공당국은 ‘2차 실속’이라고 불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동체와 안쪽 엔진의 사이에 고정식 양력 스포일러를 장착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스포일러가 작동하면 실속 시에 속도가 급격히 변화하므로 착륙의 경우에는 앞 바퀴부터 접지하는 조종방식을 채택하여야만 하였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연료탑재량을 감소하여 전체무게를 줄이는 방법으로 비행성능을 개선하였다.
 

최후의 활약

BOAC는 모두 17대의 보잉 모델 377 스트라토크루저를 보유하였으며, 1945년 11월부터 1959년 12월까지 운항을 하였다. 1949년에 6대를 신규 구입한 후 계속하여 6대를 유나이티드항공으로부터, 4대를 스칸디나비아 항공으로부터 구입하였으며, 마지막으로 1954년 12월에 1대를 팬암으로부터 구입하였다. BOAC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항공기인 스트라토크루저는 대서양노선에서 호화로운 하늘의 여행을 제공하였으며 뒤이어 등장한 제트여객기 시대에 밀려 비교적 단명에 그쳤다. BOAC가 보유한 14대의 스트라토크루저는 콘웨이 엔진을 장착한 보잉 707로 교체되어 보잉사에 매각되었다.

BOAC가 보유한 스트라토크루저 중에서 2대는 폐기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 항공으로부터 구입한 1대(G-ALSA)는 1954년 크리스마스에 착륙사고를 일으켜 승객 24명과 승무원 4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고는 BOAC가 스트라토크루저를 운항하면서 일어난 유일한 사망 사고이었다.

보잉사가 매입한 BOAC의 스트라토크루저 모든 기체는 부정기 우편물항공사인 트랜스오션항공에 판매되어 1958년부터 태평양노선에 취항하였다. 1960년 7월에 트랜스오션항공사가 문을 닫으면서 5대의 스트라토크루저가 예비부품과 함께 이스라엘 에어크래프트 인더스트리즈(IAI)로 매각되어 수송기로 개조되었다. 개조된 수송형 스트라토크루저는 승무원훈련과 공정부대강하에 사용되었으며 그 중 3대가 1969년부터 1970년까지 국제 적십자사에 임대되어 비아프라에서의 구호활동에 활약하였다.

트랜스오션항공에서 운항을 정지한 기체를 포함하여 운항을 마치고 수명을 다한 스트라토크루저는 오클랜드공항의 구석에 수집되어 그 중 27대는 에어로 스페이스라인즈사에 매각되어 초대형 화물수송기인 ‘구피(Guppy)’와 ‘슈퍼 구피(Super Guppy)’로 개조되었다.
 

 

제원

형식 : 민간수송기
승무원 : 5명
전폭 : 43.50m
전장 33.63m
전고 : 11.66m
주익면적 : 164.34㎡
엔진 : 프랫 앤 휘트니 R-4360 와스프 메이저 래디얼 피스톤 엔진(정규출력 3,500마력)×4대
최대이륙중량 : 66,134kg
페이로드 : 승객 최대 112명
최대속도 : 604km/h(고도 25,000ft)
순항속도 : 547km/h(고도 25,000ft)
실용상승한도 : 9,755m 이상
항속거리 : 6,759km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