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운명을 결정한 하늘




소설처럼 사라진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는 외계에서 온 귀족이었다. 어린왕자가 태어난 별나라는 해가 하루에 44번이나 지고 뜨는 곳이었다. 처음 프랑스에서 출판했을 당시에는 43번이라고 했다가 미국에서 영문판이 나올 때는 44번으로 고쳤다고 최근의 뉴욕타임즈에 생텍쥐페리 연구가인 스테이시 쉬프가 확인했고, 또 몇 주 전 그간 조종하던 비행기의 마지막 파편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생텍쥐페리가 흔적 없이 사라진지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성장했던 도시 글리노블의 비행장은 그의 이름을 따 생텍쥐페리공항이라 이름 지었다.

그는 어린왕자라는 짧은 소설 속에 어쩌면 자기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적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코르시카 섬 주변의 바다에서 사라진 해가 1944년이었고 공교롭게도 당시 그의 나이도 44세였다. 어린왕자가 죽지 않고 머나먼 별나라로 사라진 것과 실제 그가 정찰 비행을 나가 소식 없이 그대로 사라졌다는 사실 등 책의 내용과 너무나도 비슷한 스토리였다.

1944년 7월 31일 아침 8시45분 생텍쥐페리는 코르시카기지 활주로를 이륙해 주변 해상의 정찰비행을 나섰는데 오후 12시 30분까지는 돌아와야 했다. 오후 1시가 넘으면 조종하던 P-38기의 연료가 모두 소모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독일군 전투기에 희생됐거나, 바다에 추락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결국 오후 3시 30분에 그의 행방불명을 공식 발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구식 단발기만 조종하던 그가 44세의 나이에 당시 최신식이었던 쌍발전투기를 조종한 것이 무리였을까? 프랑스인들에게는 파리에서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을 비행한 모험가로, ‘어린왕자’, ‘야간비행’, ‘남방우편기’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진 저명인사였다. 하지만 철학도 문학도 몰랐던 미국 조종교관에게는 그저 서툰 비행사로 보였기 때문에 “조국 프랑스도 좋고 문학 작가도 좋지만 내 비행기(P-38)는 못 탄다”며 비행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의 계기판 읽는 단위가 달라 잘못 읽기도 했고,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어 관제탑과 통신을 못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런 그가 기상이 나쁜 바다 위를 비행했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른 것 같아 보인다는 말도 있다. 생텍쥐페리의 죽음을 가장 슬퍼했던 사람은 그를 태양처럼 사모했던 찰스 린드버그의 부인 앤 모로우였다. 앤은 끝내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사라졌다”는 말로 그의 슬픔을 이겨내려 했다고 한다.
 



계기비행의 중요성

1999년 뉴욕에서 매사추세츠의 섬으로 비행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한 존 F 케네디 주니어도 조종미숙, 해상 비행, 기상 악화 등이 이유가 되었다. 기상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비행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계기비행을 해야 하는데, 그는 계기비행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계 비행을 하다가 일단 구름 속에 들어가면 모든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게 되고, 공포심이 생겨 계기를 믿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계기를 보면 바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느끼는 감각은 자꾸 위로 치솟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계기만 믿다가 혹시 사고라도 아니 않을까?’ 하는 공포증이 생기게 되고, 절대로 자신을 믿지 말고 계기를 믿어야한다는 교과서적인 철칙을 잊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어 끝내는 추락하고 만다.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인물의 사고는 비행기가 자유낙하 하듯이 엄청난 속도로 바다에 떨어졌거나, 조종사가 느끼지 못한 채 비행기가 하강선회하면서 추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P-38기와 같이 무겁고 엔진과 동체가 두개나 있는 비행기가 스핀이라는 하강 선회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잘 보이는 시계비행 중이라 해도 정상으로 돌이키기 어려운데, 하물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계기비행 중에는 거의 정상 회복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늘은 푸르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바람이 거세고 어두운 구름 속에서 조종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무서움도 간직하고 있다.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1999년 7월 16일 비행중 실종됐고 4일 후에 마사스 빈야드 섬 근해 30m 깊이의 바다에서 시신과 함께 비행기 잔해가 발견되었다.

글/ 정석화(유타대 교수, 항공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