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여객기의 계보(43) Ilyushin Il-86

제트 여객기의 계보(43)
Ilyushin Il-86

글/ 이장호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전투기, 폭격기와 같은 군용기는 물론이고 민간 여객기 분야에서도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일이 없도록 치열하게 경쟁했다. 소련 최초의 이중통로기 여객기인 일류신(Ilyushin) Il-86 캠버(Camber) 여객기는 이러한 경쟁의 과정에서 등장한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홍보 효과 노려 개발
1980년 하계 올림픽 경기를 개최하게 된 소련은 경기가 열리게 되면 세계의 많은 경기 관계자와 관람객, 관광객이 방문할 것을 예상했다. 이러한 대형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자국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공편을 이용했다. 소련 정부는 이를 계기로 자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로 하여금 자국산 여객기를 이용하도록 한다면 아주 좋은 선전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활용하고자 소련 정부는 일류신 설계국(Ilyushin OKB)으로 하여금 서방측 신형 여객기에 필적할 수 있는 최신 여객기를 개발할 것을 요구했다. 일류신 설계국은 이전부터 소련의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Aeroflot)와 협력해 장거리 기종인 Il-62 여객기를 개발해 공급한 실적을 갖고 있었다. 경쟁 기종인 투폴레프(Tupolev) Tu-154 여객기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을 가진 Il-62 여객기는 아에로플로트의 주력 기종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때마침 아에로플로트는 Il-62의 후속 기종이 필요했기도 해 소련 정부의 신형 여객기 개발 방침에 활력이 더해졌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보잉(Boeing) 747 점보 여객기를 시작으로 록히드(Lockheed) L-1011, 더글러스(Douglas) DC-10 그리고 유럽 공동개발 기종 에어버스(Airbus) A300 여객기와 같은 신형 여객기가 연달아 등장했다. 이 기종들은 모두 이중통로기로 항공여객 시장에 충분하게 좌석을 제공하면서 항공 여행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반면 소련은 장거리 기종이라고 하더라도 폭이 좁은 단일통로기 여객기만 보유하고 있었다. 1970년대 말부터 747이 취항하면서 세계의 항공여객 시장은 이중통로기가 주력으로 등장했다. 반면 소련은 1970년대에 들어서도 독자적인 이중통로기가 없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분명 소련의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1980년 하계 올림픽을 목표로 신형 이중통로기를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1970년대 개발 시작
소련은 유럽이 공동으로 에어버스 여객기를 구상할 때부터 이를 주목하고 있었다. 같은 유럽에 속하는 소련은 에어버스에 대항하는 에어로버스(Aerobus)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겼다. 실제로 소련의 이중통로기는 1970년대 초부터 기초적인 연구가 시작됐고 1971년 파리에어쇼에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형 터보팬 엔진 개발이 늦어지면서 계획이 전체적으로 지연됐다.

당초 일류신 설계국은 Il-62보다 굵은 동체에 T자형 꼬리날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엔진만 4기로 변경하는 수준에서 검토했다. 4발 엔진은 영국 VC.10 여객기처럼 후방동체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고려했다. 그러나 설계과정에서 구조적으로 4발 엔진을 후방동체에 탑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고 현재의 Il-86처럼 일반적인 형식으로 엔진을 탑재하게 됐다. 주익에 포드(pod) 형식으로 엔진을 매달아 설치하는 방법은 보잉이 B-47 폭격기를 개발하면서 처음 시행됐다. 후퇴각을 가진 주익에 엔진을 매달아 설치하면 공기의 흐름이 서로 간섭돼 고속으로 비행할 때 날개가 휘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보잉의 공력설계팀은 수많은 풍동실험을 거치면서 서로 간섭이 되지 않는 엔진의 위치를 찾아냈고 B-47 폭격기는 큰 성공을 거뒀다. 1940년대 후반에 처음 등장한 B-47은 당시 웬만한 제트전투기보다 비행속도가 더 빠른 우수한 기종이었다. 보잉은 B-47 개발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응용해 707 여객기를 개발했다. 영국의 D.H. 106 코메트(Comet)와 달리 주익에 엔진을 직접 매달아 설치한 707 여객기는 현재까지 대부분의 여객기에 적용되고 있으며 혁신적인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주익에 엔진을 매달아 설치하면 지상에서 엔진을 정비하기 간편한 장점도 있다.

이처럼 엔진을 주익 아래에 매달아 설치하는 방식은 1970년대 시점에서 볼 때 그리 특별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에서 개발된 많은 여객기는 주익이 아닌 동체에 엔진을 설치하고 있었다. 제트 기종으로 707처럼 주익에 엔진을 매달아 설치한 첫 기종이 바로 Il-86이다. 일류신 설계국은 앞서 Il-76 캔디드(Candid) 수송기를 개발하면서 이러한 설계방식을 경험했기에 Il-86 개발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Il-62>

소련 최초의 순수 여객기
서방측 이중통로기에 대항할 목적으로 개발이 시작된 Il-86은 비교적 순조롭게 개발됐지만 개발기간 내 신형 터보팬 엔진이 완성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대형 이중통로기 개발에 연료소비가 적은 터보팬 엔진은 필수적이었다. 물론 기존의 터보제트 엔진으로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터보팬 엔진에 비해 연료소비효율은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같은 연료를 탑재하더라도 항속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서방국가와 경쟁에서 불리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소련 정부는 신형 엔진의 개발을 재촉했다.

일류신 설계국이 개발을 진행한 Il-86의 가장 큰 특징은 소련 여객기 중 최초의 순수한 여객기라는 점이다. 과거 소련 정부는 군비확장을 목적으로 폭격기와 여객기, 수송기를 하나로 묶어서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여객기 자체의 성능이 떨어지고 운항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악순환이 계속 됐다. 특히 군용 수송기는 단거리 이착륙 성능을 중시하기 때문에 주익을 크게 제작한다. 그 결과 여객기로는 지나치게 큰 주익을 갖고 있어 중량이 증가하고 연료소비효율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지금은 서방제 여객기가 동구권 국가에 판매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소련으로 서방제 신형 여객기를 판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의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노선은 대부분 성능이 부족한 소련제 여객기가 취항하고 있었다. 비행안전성과 경제성이 떨어지는 소련제 여객기는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서방국가와의 경쟁에도 불리한 입장이었다.

따라서 일류신 설계국은 1980년 올림픽을 계기로 소련을 방문하는 손님을 맞이할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면서 수송기와 겸용하지 않는 순수한 여객기로 개발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처음으로 제대로 개발한 소련의 첫 번째 여객기인 Il-86은 매우 세련된 외관을 갖고 있다.

Il-86은 2층 구조에 350명이 탑승할 수 있다. 소련 여객기의 가장 큰 특징은 승객이 직접 수하물을 지참하고 여객기에 탑승한다는 점이다. 여객기의 가장 큰 특징은 승객이 직접 수하물을 지참하고 여객기에 탑승한다는 점이다. 서방국가의 경우 탑승수속을 하면서 수하물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항의 시설이 부족한 소련의 경우 승객이 직접 수하물을 들고 탑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을 반영해 Il-86의 경우도 승객이 수하물을 직접 들고 탑승한다. 동체에 설치된 3개의 탑승구로 승객이 탑승하면서 수하물을 직접 화물칸에 넣은 다음 탑승계단을 통해 2층의 객실로 올라가는 독특한 방식은 Il-86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터보팬 엔진의 경우 쿠즈네초프(Kuznetsov) 설계국에서 NK-86 대형 터보팬을 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당초 Il-86에는 솔로비에프(Soloviev) D-30 터보팬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D-30 터보팬 엔진은 Tu-154M, Il-62M 여객기에 탑재한 엔진이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NK-86 엔진이 완성돼 탑재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서방국가와 비교할 때 기술력이 부족한 관계로 바이패스(bypass) 비율이 낮아 연료소비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Il-86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DC-10, A300과 비교할 때 항속거리가 부족한 단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Il-86은 소련에서 처음 개발한 본격적인 여객기로 충분한 비행성능을 갖고 있었고, 소련 자체가 석유를 생산하는 산유국이었기 때문에 낮은 연료소비효율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Il-86의 가장 큰 특징은 좌우 주착륙장치(main landing gear)에 더해서 가운데에 3번째 주착륙장치가 있다는 점이다. 서방측 여객기의 경우 2개 또는 4개의 주착륙장치를 갖고 있는데 비해 3개의 주착륙장치는 매우 독특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웰메이드 항공기… 실적은 아쉬워
1974년에 시제 1호기(SSSR-86000)의 제작이 시작됐고 1976년 12월 22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시제 2호기(SSSR-86001)에 이어 완성된 양산 1호기(SSSR-86002)는 1977년 10월 24일에 초도비행을 했다. 시험비행은 모두 4대(시제기 2대, 양산기 2대)로 진행됐다. 당연히 개발완료 목표시점은 1980년에 열리는 올림픽이었다. 아에로플로트는 1979년 9월 24일에 양산 3호기(SSSR-86004)를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양산 3호기는 1980년 12월 26일에 취항해 당초 목표로 삼았던 1980년 하계 올림픽에는 취항하지 못했다.

아에로플로트는 여객수요가 많은 모스크바~레닌그라드(현재의 상태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알마티(카자흐스탄), 모스크바~키예프(우크라이나) 노선에 Il-86을 주로 투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Il-86의 항속거리가 당초 요구수준인 5,000km보다 떨어지는 3,600km, 탑재중량도 40t에 불과했다. 그 결과 완성도가 높은 소련의 여객기임에도 불구하고 동구권 국가의 항공사들은 Il-86 구매를 꺼려했다. 당초 소련 정부는 자국의 항공기술력을 과시하고자 제대로 신형 여객기를 개발해 서방국가와 제3세계에 판매할 계획이었고 파리에어쇼를 비롯해 많은 에어쇼에 참가하면서 활발하게 선전활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 Il-86은 비행성능이 부족해 인기를 끌지 못했고 당연히 서방국가의 항공사들은 DC-10, A300을 선호했다.

Il-86은 이전의 소련제 여객기와 비교할 때 잘 만들어진 기종이다. 소련 최초로 2중 통로를 가진 이중통로기 기종으로 소련제 여객기로는 처음으로 안락한 실내공간을 구현했다. 소련제 여객기로는 처음으로 기내 영화를 상영할 정도였다. 또한 처음부터 제대로 여객기를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단거리 이착륙 성능을 포기하고 활주로에 주는 중량을 줄이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불과 106대의 생산에만 그쳤다. 이러한 실적은 1,026대가 생산된 Tu-154, 262대가 생산된 Il-62와 비교할 때 매우 저조한 실적이다. 현재까지 많은 수량의 Il-86이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의 항공사에서 주로 취항하고 있다.

Il-86은 이후 군용기로도 생산됐다. 1980년대 중반 소련 공군의 요구에 따라 공군지휘본부로 4대가 개조돼 Il-80이라는 명칭으로 납품됐다. 이 기종은 현재도 러시아 공군에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