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여객기의 계보 (42) Airbus A300 (Pt. 4)

제트 여객기의 계보 (42)

Airbus A300 (Pt. 4)

 

영국에서 주도해 유럽 각국이 참여를 이끌어낸 에어버스(Airbus)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기체의 규모와 개발비 분담이라는 큰 걸림돌을 만나게 됐다. 이는 새로 개발하는 여객기의 규모와 잠재시장에 대한 의견이 서로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당초 에어버스 사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보잉(Boeing) 747 점보 여객기와 경쟁하고자 300인승 여객기라는 다소 큰 규모로 개발할 것을 검토했다. 그리고 대형 여객기가 비행할 수 있도록 동력을 공급하는 롤스로이스(Rolls-Royce) 신형 RB207엔진 개발이 필요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운항하는 셔틀 노선에서 300인승 여객기는 다소 과도했고, 실제로 고객 항공사는 250인승 쌍발 여객기를 요구했다. 그 결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200~250인승 여객기로 방향을 결정했다.

설계 확정

이렇게 등장한 HBN100 검토안은 객실 내부의 통로를 2줄로 배치한 이중통로기(wide body) 여객기로 완벽한 원형 단면의 동체를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여객기는 타원형 단면을 갖고 있었으니 HBN100 동체는 분명 시대를 앞서간 설계였다. 탑승인원이 250명으로 줄어들면서 탑재하는 엔진도 기존의 엔진으로 충분했다. 결국 신형 엔진을 개발하는 기회를 얻지 못한 영국 정부는 1969410, 록히드(Lockheed) L-1011 트라이스타(Tristar) 여객기에 탑재하는 RB211에 전념하기로 하고 계획에서 이탈했다. 250명이 탑승하는 HBN100 설계안은 점차 구체화돼 A250을 거쳐 A300B라는 명칭으로 확정됐다.
 

1969년 초 순항속도 마하(Mach) 0.84, 항속거리 2,200km 성능을 가진 A300B 여객기는 650km 정도의 단거리 노선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도록 했다. 특히 비행 중에 무게중심이 뒤쪽에 위치하는 주익은 고속과 저속에서 모두 높은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었다. 문제가 됐던 엔진의 선택 문제는 보잉 747 기종과 호환이 가능한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F6엔진을 쌍발로 탑재한 A300B1 기종의 개발이 진행됐다. 다만 BEA(British European Airways)항공은 자국산 롤스로이스 RB211엔진을 탑재한다는 계획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편, 에어버스의 주요 고객인 에어프랑스(Air France)A300B1 설계안에서 24명이 더 탑승할 수 있는 개량형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주익의 앞쪽 2, 뒤쪽에 3개의 프레임(frame)을 추가해 동체를 2.65m 연장해 3줄의 좌석을 추가한 A300B2 기종의 개발이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판매 시작

긴 세월 동안 계획의 잦은 변경과 중단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등장한 A300B2 여객기는 당시 경쟁상대가 없는 중단거리 노선의 신형 기종이었다. 1971119일에 에어프랑스는 확정 8, 옵션 10대의 구매 계약을 체결했고, 마침내 에어버스 사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한편으로 에어버스는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항속거리를 3,700km로 연장한 개량형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연료탱크를 추가한 A300B4 기종을 개발했다. 항속거리가 증가하면서 고객 항공사의 요구를 만족시킨 A300B4 여객기는 A300 시리즈의 표준 기종이 됐고, 이베리아(Ibearia)항공에서 1972114일에 최초로 주문하면서 에어버스의 2번째 고객이 됐다. 에어프랑스와 달리 독일의 루프트한자(Lufthansa)항공은 미국의 항공사조차 외면했던 보잉 737 여객기를 최초로 구매하면서 소형 여객기를 중시했다. 그러나 영국이 에어버스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독일의 역할이 증가했고, 마침내 19721219일에 3대의 A300B2 여객기를 구매했다. 그리고 이어서 197357일에는 옵션으로 4대를 추가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국적항공사 주문을 모두 받은 에어버스 여객기는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성공적인 비행과 인도

마침내 A300B 여객기는 1972928일에 툴루즈(Toulouse) 공장에서 출고되면서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28일에 A300B1 1호기(F-WUAB)가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먼 길을 왔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기술력으로 극복했고, 두 나라의 국적 항공사가 우선 구매하면서 판매에도 힘을 실어줬다. 1호기에 이어 2호기(F-WUAC)1973년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비행시험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1974131일에 모든 비행시험을 마쳤다. 그리고 같은 해 315일에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동시에 형식인증서를 교부했다. 비행시험을 진행하면서 에어버스는 유럽 각국을 순회하며 시범비행을 진행했고, 세계 일주 비행도 시도하면서 각국 항공사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에 노력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5년 전인 1969528일에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목표로 잡은 일정보다 2개월이나 빨리 개발을 마쳤다는 점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이전에 겪었던 혼란과는 사뭇 대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모두 4대가 제작된 A300 여객기는 1,585시간의 비행시험을 마친 다음 1974510일에 최초의 고객인 에어프랑스에 인도됐다. A300B2 여객기를 인수한 에어프랑스는 곧바로 파리~런던 노선에 투입해 운항을 시작했다.
 

시제기로 만들어진 2대의 A300B1 여객기 중에서 1대가 항공사에 판매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상언운항에 투입된 기종은 좌석수를 늘린 A300B2 기종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2.5t의 연료를 추가한 A300B4 기종은 19741226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A300B4 기종은 비행시험을 거쳐 1975326일에 형식인증서를 교부 받았으며, 같은 해 5월부터 독일항공(Bavaria Germanair)에서 상업운항을 시작했다.

 

화물기로도 활용

에어버스는 1978년부터 명칭의 체계를 보완해 표준형 A300B2, A300B4-100이라는 숫자를 붙이고, 중량증가형은 -200이라는 숫자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칸디나비아항공(Scandinavian Airlines)에 납품하는 항공기는 특별하게 A300B2-300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A300B2-300 기종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GE CF6엔진 대신 최초로 프랫 앤 휘트니(Pratt & Whitney, P&W) JT9D엔진을 탑재했다는 특징이 있다.

 

넓은 동체를 가진 에어버스 A300 기종은 화물기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화물기로 많이 사용되던 보잉 707, 727, 더글러스(Douglas) DC-8 기종은 동체 폭이 좁아서 많은 화물을 싣기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여객기의 수요가 채워진 다음에 화물기의 생산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중통로기 여객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항속거리와 탑재량이 증가한 A300B4 기종은 시장에 선을 보이면서 곧바로 화물기로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여객/화물 혼합기종인 A300C4, 화물 전용기인 A300F4 기종이 개발됐다. 7.07m x 2.54m의 화물적재문(door)을 추가한 A300B4 화물기는 40t의 화물을 싣고 1,850km 거리를 비행할 수 있었다.

 

잇따른 개량

유럽의 주요 항공사를 시작으로 점차 판매시장을 넓혀가는 에어버스는 표준형 A300 여객기를 기반으로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개량형 개발을 검토했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A300 여객기의 동체를 단축한 A310 기종을 개발하는 동시에, 당시 최대급 이중통로기 여객기인 A300B4-600 기종의 개발을 시작했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A300B 기종의 동체를 단축해 200인승으로 개량한 A310 기종은 197877일에 개발이 시작됐다. A300B10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시작된 A310 기종은 A300B 동체에서 11개의 프레임을 단축했으며, 기체의 무게중심 변동을 해결하기 위해 후방동체와 수평미익이 완전히 새로 설계돼 기내 공간이 넓어졌다. 특히 보잉 767 기종과 경쟁하기 위해 전자식 조종실과 함께 디지털 조종장치를 도입했다.
 

일반적으로 A300-600이라고 널리 알려진 신형 여객기는 사우디아(Saudia)항공의 요구에 따라 최대이륙중량을 높인 기종으로 19801216일에 개발이 시작됐다. 가장 큰 특징인 2명의 조종사만으로 운항이 가능하도록 조종실을 완전히 디지털화한 A300-600 기종은 전기신호로 작동되는 플랩(flap), 슬랫(slat), 스포일러(spoiler)를 장착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복합재료를 사용해 중량을 1.5t 정도 줄이는 등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점도 특징이다. 탑재하는 엔진은 GE CF6-50엔진을 개량한 CF-80엔진과 P&W JT9D(PW4000)엔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기체의 길이는 A300B2 A300B4 기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A310 기종의 후방 동체와 수평 미익을 채택해 기내 공간이 더 넓어진 A300-600 기종은 최대 360명이 탑승할 수 있다. A300-600 여객기는 198678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고, 198439일에 형식인증을 받았다. 여객/화물 혼한형인 A300C4-600 기종은 1984412일에 초도비행했다. A300-600F 화물기는 최대 46.8t의 화물을 탑재할 수 있었다. 198년 초에 A300B4 기종의 생산이 종료되면서 A300-600 기종은 A300 시리즈의 주력 기종이 됐다.
 

기존 A300-600 기종의 항속거리를 더욱 연장한 A300-600R 기종은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이 요구한 기종이다. 아메리칸항공은 198732일에 7대의 A300-600R 구매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기종은 수평미익에 6,150리터의 연료탱크를 추가해 미국 국내 노선의 항속성능에 맞췄다. A300-600R 기종을 화물기로 개량한 A300-600RF 기종은 탑재량과 항속성능을 활용한 화물기로 주목을 받았다. 지름 5.64m의 동체를 가진 A300-600F 화물기는 2층에 걸쳐 최대 22개의 LD3 화물 컨테이너를 탑재할 수 있었다. A300-600RF 화물기는 1994427일에 페덱스(Federal Express)에 처음 인도됐다.
 

처음 등장한 A300B2 기종과 비교할 때 최대이륙중량이 크게 증가한 A300-600R 기종은 여객기로도 화물기로도 잠재력이 높았다. 처음 등장한 A300B2 기종의 최대이륙중량은 135t이었으나 A300-600R 기종은 170t으로 약 25% 이상 증가했다. 한편, 에어버스는 유럽 각국에서 제작하는 부품을 최종조립공장이 위치한 툴루즈로 운송하는 전용 화물기가 필요했다. 이전에 사용했던 슈퍼 구피(Super Guppy)가 노후화되자 A300-600R 기종을 기반으로 특별히 개조한 A300-600ST(Super Transport) 화물기가 제작돼 19961월부터 운항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벨루가(Beluga)라고 알려진 A300-600ST 화물기가 모두 5대가 제작돼 현재까지 운항 중이다.
 

 

대한항공과의 깊은 인연

유럽에서 등장한 A300 여객기는 의외로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대한항공은 19749월에 파리에서 6대의 A300B3 기종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유럽의 항공사만 구매했던 에어버스 여객기를 선택하면서 대한항공은 유럽을 제외한 최초의 해외 고객이 됐다. 197588일에 국내에 1호기(HL7218)가 처음 도입된 A300B4 여객기는 한일노선 및 동남아노선 등 중거리 노선에 취항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A300-600 기종을 도입했고, 19868월에는 A300F4-200 화물기를 도입했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