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기의 역사(27) 야코블레프 Yak-40/Yak-42

제트 여객기의 계보 (27)
야코블레프 Yak-40/Yak-42
 


 
냉전 당시 동유럽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국토를 가진 구소련은 연방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수도인 모스크바와 각 지역에 산재한 중소도시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을 확보하는 데 크게 노력했다. 서방측 연방국가의 경우 각 주정부가 자치적으로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데 비해 중앙집권을 중요시하는 사회주의체제의 특성상 소련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중시했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구소련(러시아)의 장거리 주요 교통수단은 철도다. 넓은 국토를 도로 교통에 의존하기에는 도로의 건설비용도 많이 필요할 뿐 아니라 서민의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값비싼 자동차를 보유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초기 항공노선, 주로 Li-2 투입
그러나 워낙 국토가 넓기 때문에 모든 지역을 그물망처럼 철도를 건설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구소련은 2차대전 이전부터 격오지를 이어주는 효과적인 교통수단으로 항공기를 많이 활용했다. 비록 서민들이 이용하기에 항공교통이 사치스러운 교통수단이지만 값비싼 철도건설이 필요없이 국토의 구석구석을 이어주는 교통수단으로 효과적이었다. 더구나 철도의 경우 매서운 겨울에 내린 눈으로 인해 얼어붙을 경우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항공교통의 경우에는 활주로 주변만 제설작업을 하면 교통망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구소련의 경우 사회주의 특성상 사회기반시설에 투입하는 자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에는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포장한 활주로를 갖춘 대형 공항을 건설했지만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에 위치한 중소도시의 경우에는 번듯한 시설을 갖춘 공항을 건설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중소도시에는 짧은 활주로만 갖춘 소규모 공항이 대부분이었고 심한 경우에는 비포장 활주로 또는 천연 풀밭에 이착륙해야 하는 간이 공항도 많았다. 이러한 지방공항에 취항할 수 있는 여객기는 주로 소형 여객기가 대부분이었고 1950년대에 들어서 제트 여객기의 시대가 개막됐음에도 불구하고 제트 여객기의 투입은 꿈도 꾸기 힘든 실정이었다.

구소련은 2차대전 이전부터 지방에 산재한 중소도시를 이어주는 항공노선에 미국의 더글러스 (Douglas) DC-3 여객기를 면허생산한 리스노프(Lisunov) Li-2 여객기를 주로 투입했다. 구소련의 경우 군 작전에 필요한 전투기와 경폭격기의 개발과 생산에 집중했고, 대형 수송기나 여객기까지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생산할 능력을 갖추지는 못해 성능이 검증된 더글러스 DC-3 기체를 기초로 국산화 부품을 적용한 Li-2 여객기를 대량을 생산했다. 국영 84호 항공창에서 생산했다고 해 PS-84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Li-2 여객기는 1939년부터 1952년까지 5,000여 대가 생산됐다. 면허생산에 필요한 기술연수팀을 이끈 보리스 파블로비치 리스노프(Boris Pavlovich Lisunov) 수석 엔지니어의 이름을 붙인 Li-2 여객기는 처음에는 여객기로 생산됐다가 2차대전 기간에는 군용 수송기로 투입됐으며 냉전기간에도 군용 수송기로 많이 사용됐다.

5명의 승무원과 24명의 승객을 태우고 1,100~2,000km의 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Li-2 여객기는 비행성능이 우수할 뿐 아니라 랜딩기어가 튼튼해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하기에 안전한 기종이며 잔고장이 적어 국영 아에로플로트(Aeroflot) 항공사에서 크게 활약했다.

 
Li-2, IL-12/14로 대체
1943년에 구소련은 Li-2 여객기를 대체할 신형 여객기를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일류신(Ilyushin) 설계국이 개발한 새로운 여객기가 바로 IL-12 코치(Coach)와 IL-14 크레이트(Crate)이다. 24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Li-2 기종과 비교할 때 IL-12 여객기는 최대 32명까지 승객을 태울 수 있었으며 26명의 승객을 태울 경우 1,500km 거리를 무착륙으로 비행할 수 있어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뒷바퀴 방식의 랜딩기어를 가진 Li-2 기종과 달리 IL-12 여객기는 앞바퀴 방식으로 개량돼 승객이 타고 내릴 때 편의성이 크게 향상됐다. IL-12 여객기는 1946년부터 1949년까지 663대가 생산돼 주로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에서 활약했으며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구권 국가에도 수출됐다. Li-2 기종과 비교할 때 IL-12 여객기는 성능이 향상됐지만 객실 내부가 좁은 편이어서 불만이 많았기에 IL-12 기체를 대형화해 개량한 기종이 바로 IL-14 여객기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IL-12 보다 세련된 외관을 가진 IL-14 기종은 최대 36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으며 항속거리도 2,250km로 크게 향상됐다. 1950년 10월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IL-14 여객기는 우수한 성능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모두 1,348대가 생산돼 구소련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에서 민간 여객기와 군용 수송기로 널리 사용됐다.

1950년대에 구소련에는 구형에 속하는 Li-2 기종과 신형에 속하는 IL-12, IL-14 등 쌍발 엔진 여객기가 대량으로 운항을 하면서 지방도시를 거미줄과 같이 이어 주고 있었다. 1950년대 초에 영국과 미국에서 장거리 제트 여객기를 선보이자 구소련도 이에 뒤질세라 제트폭격기를 서둘러 개조한 Tu-104 여객기를 내놓았다. 기술적으로 문제점이 많았던 Tu-104 기종을 대신해 등장한 IL-62 여객기는 향상된 성능을 가지고 있어 서방국가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Tu-104, IL-62 제트 여객기는 기본적으로 중장거리 노선에 적합한 대형 기종으로 지방시를 이어주는 중소형 여객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1960년대 초에 구소련의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는 평소에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지방노선에 적합한 기종으로 20~25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제트 여객기를 요구했으며, 특히 취항하는 지방공항의 활주로 사정이 열약했기 때문에 700m 이하의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성능을 요구했다.

다만 아에로플로트 항공사는 당시 연료소모가 많고 고장이 잦은 제트엔진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서방국가의 경우처럼 터보프롭 엔진도 병행해 검토했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의 요구에 대응해 야코블레프(Yakovlev) 설계국은 새로운 개념의 소형 제트 여객기의 개발을 시작했는데 당시의 지방노선의 특성을 감안할 때 고속비행성능보다는 단거리 활주로에서의 안전한 이착륙 성능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개발을 시작했다.
 

야코블레프, 25인승 소형여객기 개발 착수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25인승 소형여객기이므로 단거리 이착륙 성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리프트 제트를 추가한 수직 이착륙 여객기도 검토했으나 적당한 제트 엔진을 구하기 어렵고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무리가 있었기에 포기했다.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시베리아 지역의 매서운 겨울에 원활한 엔진 시동을 기대하려면 결빙에 취약한 터보프롭 엔진보다는 터보팬 엔진이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생산하는 AI-25 터보팬 엔진을 탑재할 엔진으로 결정했다. 다만 AI-25 엔진은 추력 3,300파운드급의 소형 엔진이기에 25명의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를 완성하려면 쌍발로는 파워가 부족해 3발로 결정됐으며, 단거리 이착륙 요구조건을 맞추고자 제트기임에도 불구하고 후퇴익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직선익 주익을 채택해 속도성능을 희생하는 대신 안정적인 비행성능을 추구했다.

구소련의 지방공항은 활주로 뿐만 아니라 공항의 계류시설도 부족한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여객기는 지상 장비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엔진의 시동을 걸어야 했고 승객이 타고 내릴 때에도 탑승교의 지원을 받기 힘들어 기체 내부에 탑승계단을 자체적으로 설치해야만 했다. 이러한 지방공항의 실정을 반영해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새로운 제트 여객기를 개발하면서 마치 군용 수송기처럼 설계했는데, 자체 시동이 가능한 엔진과 함께 후방동체에 승객 탑승용 계단을 설치했으며 랜딩기어를 매우 튼튼하게 설치해 비포장 활주로는 물론이고 풀밭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또한 이착륙할 때 발생하는 흙먼지가 엔진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엔진의 공기흡입구 위치도 세심하게 결정했다.
 

Yak-40, 높은 신뢰성으로 폭넓게 판매
이렇게 등장한 야코블레프 설계국의 Yak-40 코들링(Codling) 여객기는 1966년 10월에 초도비행에 성공했으며 약 2년 후 1968년 9월부터 상업운항을 시작했다. Yak-40 여객기는 비록 비행속도가 높지는 않지만 신뢰성이 높고 안정적인 운항이 가능해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를 비롯해 동구권 국가에 폭 넓게 판매됐으며 1967년부터 1981년까지 1,000여 대가 생산됐다. 특히 Yak-40 기종은 본래 여객기로 개발됐으나, 실제로 민간 항공사뿐 아니라 각국 공군에서 주로 VIP 탑승용으로 많이 애용한 기종이다. 구소련에서는 주로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에서 운항했지만 구소련 공군의 경우 유사시에 아에로플로트 소속 Yak-40 기종을 현역으로 동원해 지휘관 이동 및 병력 수송에 사용할 작전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좀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Yak-40 여객기는 깔끔한 외관과는 달리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할 뿐 아니라 외부의 지원 장비가 없어도 자체적으로 운항준비를 할 수 있었고 탑승계단을 설치해 최전방 지역의 임시 활주로까지 병력을 수송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종이다.




제트 여객기라고는 하지만 Yak-40 여객기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비즈니스 제트기에 불과한 크기를 가진 기종으로 25명 정도의 승객만 탑승이 가능해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의 입장에서도 Yak-40 기종으로는 지방노선에 충분한 좌석을 공급하기 어려웠다. Yak-40 여객기의 개발을 시작하던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구소련에는 지방노선을 이용하는 승객이 많지 않았지만, Yak-40 여객기가 취항하면서 이전의 구형 여객기와 달리 결항률이 줄어들고 쾌적한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승객이 점차 증가했다.




 
야코블레프, 100~120인승급 여객기 개발사로 선정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성적인 좌석부족을 해결하고자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는 좀 더 큰 신형 여객기의 개발을 요구했다. 신형 여객기는 100~120명의 승객을 탑승할 것을 요구했으며 주로 지방노선에 사용하는 투폴레프 (Tupolev) Tu-134, 일류신 IL-18, 안토노프(Antonov) An-24, An-26과 같은 구형 기종을 한꺼번에 대체할 기종을 요구했다. 당시 큰 제작물량을 보장하는 국영 아에로플로트의 신형 여객기 구매사업에 구소련의 여러 설계국이 응모했는데 안토노프, 일류신, 투폴레프와 더불어 야코블레프 설계국도 경쟁을 했다.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먼저 개발한 Yak-40 여객기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의 요구조건에 맞추고자 Yak-40 여객기와 같이 3발 엔진을 탑재하는 레이아웃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최대 12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기체를 과감하게 확대했다. 거의 4배에 가까운 규모로 기체를 대형화하면 설계의 레이아웃이 변경할 수도 있지만, Yak-40 기종의 경우 기본설계가 우수했기에 레이아웃을 살리면서 대형화하면서도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기체를 대형화하면서 중량이 많이 증가한 관계로 Yak-40 기종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비포장 활주로 이착륙 성능을 포기했으며 자체 엔진 시동기능과 후방동체에 설치한 탑승계단은 그대로 유지했다.

1973년에 아에로플로트는 여러 설계국의 제안을 비교한 결과 야코블레프 설계국의 Yak-42 클로버(Clobber) 설계안을 채택했다.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빠르게 설계를 진행해 2년 만에 시제기 제작을 마치고 1975년 3월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다만 서둘러 개발을 진행한 결과 1982년 6월에 수평미익의 설계결함으로 인한 추락사고가 발생해 문제점을 해결할 때까지 2년간 운항이 중지되기도 했다. Yak-42 여객기는 1980년대 초부터 상업운항을 시작했으며 2003년까지 모두 약 180대가 생산됐다.




비록 설계결함이 발생했지만 Yak-42 여객기는 기본적인 비행성능이 우수하고 신뢰성이 높은 기종으로 동구권 국가의 항공사에서 애용하는 기종이며 신뢰성이 낮아 불만이 많았던 투폴레프 여객기를 교체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Yak-42 여객기가 취항한 이후 불과 10년 뒤에 구소련이 붕괴하고 서방국가의 여객기의 구입이 가능해지면서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의 항공사는 신뢰성이 높고 운항비용이 적은 에어버스와 보잉의 신형 여객기를 선호했기 때문에 Yak-40 기종의 대체 기종임에도 불구하고 Yak-42 기종의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Yak-42 기종의 경우 크고 넉넉한 기체의 장점을 살려 여객기, 화물기 등 많은 파생형이 개발됐는데, 특히 Yak-42 기종을 개량해 동체를 연장하고 신형 쌍발 엔진을 탑재하는 Yak-242 기종은 기술측면에서 볼 때 Yak-42 시리즈의 최고 정점에 있는 기종이다. Yak-242 여객기의 기본설계를 이어받아 이르쿠트 (Irkut)에서 마침내 완성한 기종이 바로 MC-21 여객기이며 올해 5월 28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글/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