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명칼럼(1)

FOD(Foreign Object Damage)



책상 서랍에 조그만 스크류 하나를 보관하고 있다.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끝이 날큼한 것이 아주 위험스러워 보이는 그놈은 얼마 전 내 차 바퀴에서 빼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타이어 바람이 자꾸만 빠져 차가 기우뚱거리기도 하고 둔덕을 오를라치면 한쪽으로 기울기도 해서 그때마다 바람을 채워 넣곤 했지만, 바람이 아주 천천히 빠지는 통에 펑크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그런데 공기압이 줄어드는 현상이 멈추지 않아 정비소에 갔더니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작고 날카로운 스크류 하나가 바퀴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언뜻 찾아내기도 어려울 만치 조그마한 그 놈이 제 몸의 수십만 배가 넘는 차를 기울게도 만들고, 기우뚱거리게도 하면서 차를 운전하는 내게까지 그토록 심대한 근심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바퀴에서 빼낸 그 스크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가만 들여다보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거대 공룡이 멸망한 이유는 혜성 충돌도 기상이변도 아닌 조그마한 생쥐들 때문이었다고... 작은 생쥐들이 공룡의 알을 제 먹거리로 여겨 훔쳐 먹음으로 해서 공룡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버렸다는 학설이다.
어쨌든 나는 내 손안에 놓인 작은 스크류를 바라보며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것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사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도 작은 말씨 하나에서 시작되고 거대한 둑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구멍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교훈.
나는 바퀴에서 빼낸 그 스크류를 오랫동안 책상위에 세워 두기로 했다. 사람을 만날 때, 일을 시작할 때 그 스크류를 바라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무한히 긴 막대기와 쐐기 하나만 있으면 지구를 들 수 있다고 했던가!
나라는 존재는,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은 때로는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는 괴력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고, 결정적 몰락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바퀴를 펑크 내 결정적 손상을 유발시키는 불온한 스크류가 될 수도 있고, 꼭 붙들어 두어야 할 그 무언가를 단단히 조여 매는 결정적 희망의 쐐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제 역할과 제 용도에 맞는 위치에 사용되는 것이 중요하다. 조그만 스크류 하나도 그러할진대 삶의 영역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항공기 생산 현장에서는 타이어에 박혀있던 그 작은 스크류 같은 존재를 FOD(Foreign Object Damage)라 부른다. 따라서 FOD란 항공기 내에 존재하여 손상을 야기하는 모든 이물질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FOD가 위험한 것은 비행 중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민감하게 작동되는 부위에 접촉하여 비행기를 추락시키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최초 독자개발 군용기인 KT-1 기본훈련기의 초도개발 과정에서 꼬리날개에 낀 조그만 볼트 하나가 방향타(rudder)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하마터면 시제 항공기가 추락할 뻔한 일이 있었다. 그때 만일 시제기가 추락하는 불상사가 있었다면 기본훈련기 사업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할 커다란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이처럼 위험한 FOD 실수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최첨단 항공기에서도 나타나 F-117 스텔스기 제조 과정에서 FOD를 빨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날개 안에 남겨두고 조립하여 수백억이 소요된 시제 항공기가 추락할 뻔한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항공기 최종조립라인의 엔지니어들은 주머니가 안 달린 작업복을 입거나, 주머니를 다 비워 아무 것도 소지하지 않은 채로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철칙이다. 주머니를 비우지 않으면 본인이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이물질이 비행기 내부에 떨어져 원활한 작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나사 하나가 제 위치에 단단히 박혀 제 역할을 다하면 항공기를 튼튼하게 구성하는 부재가 되고, 제 위치와 제 역할을 잃고 떨어져 놓이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시사해 준다.
하여 오늘도 나는 내 책상위에 불온하게 놓인 그 스크류를 바라보며 나를 조명해 본다.
너는 누구냐?
그 무엇인가를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의미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홀로 놓여 이리 저리 떠돌며 손상을 일으키는 위험한 존재인가?
내 가슴 깊은 곳에 내 존재에 대해, 내 삶에 대해, 내 인생의 시간에 대해 그들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옳고 바른 일에 대해 생각과 마음가짐이 흐트러지지 않게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다.

-구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