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여객기의 계보(54) Boeing 737 Classic(Pt.3)

제트여객기의 계보(54)
Boeing 737 Classic(Pt.3)

 


글/ 이장호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여객기 전문 제작 업체는 보잉(Boe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는 보잉, 더글러스(Douglas), 록히드(Lockheed) 등 대형 여객기를 제작하는 3개의 전문 업체가 존재했다. 물론 보잉 747 점보제트 여객기가 등장하면서 보잉은 대형 여객기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지만 경쟁업체의 반격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관건은 국내선
지금과 비교할 때 국제선 노선이 활발하지 않던 1960년대, 미국 국내선 여객기 시장은 매우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초의 제트여객기인 보잉 707 기종이 국제선 시대를 개척할 때에도 미국의 국내선 여객기는 구형 프로펠러 여객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잉이나 더글러스 역시 미국 국내선에 제트여객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선 항공사가 당장에 많은 돈을 투자해 구형 여객기를 한꺼번에 제트여객기로 바꾸기에는 부담이 매우 컸기 때문에 당장 진행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더구나 당시 미국 국내선에서 운항하던 더글러스 DC-3/DC-4 여객기는 성능도 충분했고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미 공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민간 항공사에 매각한 중고기가 많았기 때문에 당장 교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국제선에 비해 국내선은 운임이 저렴했기 때문에 연료를 많이 소모하는 제트여객기는 인기가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미국 국내선에는 연비가 높은 터보프롭 엔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터보프롭 엔진은 기존 왕복엔진 여객기를 약간만 개량하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비용이 저렴했고 국내선 기종으로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Douglas DC-3>


제트여객기 시대 개막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트여객기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구형 여객기를 교체해야 할 필요성은 존재했다. 이러한 시기에 국내선 제트여객기의 변화는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시작됐다. 2차 대전을 겪으며 산업 피해가 막대했던 영국은 전쟁이 끝나자 정부 주도의 산업발전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영국 정부는 2 차대전 당시부터 항공산업을 적극 육성했고 브라바존 위원회를 구성해 전쟁이 끝난 다음 제트여객기의 시대를 선도하고자 계획하고 있었다. 비록 D.H. 코메트(Comet) 제트여객기가 기술적 결함으로 실패했지만 BAC 1-11 여객기와 같은 국내선에 적합한 기종이 미국 국내선 시장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미국 국내선 제트여객기 시장에 대해 보잉은 707 여객기의 크기를 줄인 720 여객기를 내놓았지만 실패를 맛봤다. 연료를 많이 소모하는 터보제트 엔진으로는 터보프롭 엔진이나 왕복 엔진과 직접 경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4발 제트 엔진을 탑재한 720 기종이 국내선에서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720으로 국내선에서 실패한 보잉은 3발 제트 엔진으로 변경한 150인승 727 여객기를 내놓으면서 미국 중단거리 여객기 시장에서 성공했다. 당시 왕복 엔진이나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국내선 구형 기종들은 100인승 넘지 않았기 때문에 50% 많은 승객이 탑승하고 더 빠른 속도로 운항할 수 있는 727 여객기의 인기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Boeing 727>


DC-9 등장과 737 개발
그러나 727로 미국 중단거리 국내선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보잉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국내선에서 100인승 제트여객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경쟁사 더글러스는 새로운 개념으로 개발한 DC-9 여객기를 출시했다. 2명의 조종사만 탑승하는 DC-9은 인건비 부담이 높은 항공사 입장에서 혁신적이었고 기체 가격도 저렴해 경제성이 높아 단거리 노선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영국에서 건너온 BAC 1-11 제트여객기까지 미국 국내선에 진출하자 보잉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대형 프로젝트인 보잉 2707 초음속여객기와 747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던 보잉으로서는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투자여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경쟁사 더글러스의 강력한 반격에 대응할 필요성은 분명했다.

DC-9 여객기가 미국 국내선에서 인기를 얻자 국내선 승객 역시 시끄럽고 소음이 큰 구형 여객기보다는 제트여객기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미국 국내선 단거리 기종으로 제트여객기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DC-9의 공급이 부족했고 여기에 영국 BAC 1-11 여객기까지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이러한 국내선 여객기 시장 앞에서 보잉은 자금이 부족하더라도 무언가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1960년대 후반에 미국 보잉은 위기와 도약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Douglas DC-9>


이러한 상황에서 보잉 경영진은 조금 힘이 들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결국 이러한 결단으로 737 여객기가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됐다. 다만 개발비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727 동체의 길이를 줄여서 사용하고 엔진도 그대로 활용하면서 3발 형식을 쌍발로 변경하는 등 최대한 개발비용을 절약했다.

보잉은 시장의 수요가 충분했기 때문에 737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서둘러 개발된 737-100 여객기는 시장에서 큰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독일의 루프트한자항공(Lufthansa)을 첫 번째 고객으로 겨우 모실 정도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항공사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개량한 727-200 여객기가 등장하면서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 구형 여객기가 제트여객기로 교체되는 시대적인 흐름은 737-200에 큰 행운이었고 쌍발 엔진이라는 장점은 1973년에 발생한 석유위기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프랫 앤 휘트니(P&W) JT8D 엔진을 탑재한 737-200은 1988년 여름까지 모두 1,144대가 생산됐다.


<Boeing 737-200 JT8D>


737 클래식의 대성공
737-200 여객기 생산이 종료되면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수요 변화에 적합한 새로운 기종인 737-300이 적절하게 등장했다. 1970년대에 가장 큰 화두였던 연비와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FM56이라는 신형 엔진을 탑재한 737-300 여객기는 항속거리가 연장돼 기존 727이 취항하던 노선까지 비행할 수 있어 미국 국내선 항공사로부터 큰 반응을 얻었다.

단거리 기종이던 737은 고성능 터보팬 엔진과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본래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서둘러 개발됐던 737-100은 기체와 엔진의 궁합이 맞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JT8D 엔진도 우수한 성능의 엔진이었지만 707, 727과 달리 737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과 프랑스 사프란(Safran)이 미 공군의 AMST 수송기 사업을 통해 공동개발한 CFM56 터보팬 엔진은 10톤급 고성능 엔진이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생산될 정도로 성능을 인정받고 있는 CFM56 엔진이 없었더라면 737 시리즈의 놀라운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CFM International CFM56>


737-200과 70% 공통점을 가질 정도로 737-300은 개발비를 절약하면서 성공을 거뒀다. 1984년 2월 24일, CFM56-3 엔진을 탑재한 737-300은 처음 하늘을 날아올랐고 같은 해 11월 14일에 형식인증을 받을 정도로 빠르게 사업이 진행됐다. 형식인증을 받자마자 11월 28일, 최초의 고객인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에 인도가 시작됐다.

300 시리즈라고 불리는 737-300은 기존 737-200을 개량했기 때문에 항공사에 낯설지 않았고 익숙한 기종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737-300은 판매가 크게 늘었고 1990년 3월 말까지 불과 4년 만에 948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수립했다. 실제로 737-300을 구매한 고객은 737-200을 운항하던 항공사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연비가 높은 737-300이 인기를 끌면서 경쟁사 더글러스는 MD-80 시리즈의 엔진을 개량한 MD-90 시리즈를 내놓을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 대형항공사는 이미 737-300을 선택했기 때문에 뒤늦게 등장한 MD-90 시리즈는 해외 항공사와 전세기 운항사를 중심으로 판매됐다. 원래 MD-80 시리즈의 놀라운 약진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737-300은 시장을 정확하게 공략해 큰 성공을 거뒀고 마침내 MD-80 시리즈를 이길 수 있었다.

737-300 시리즈는 737-100/200 시리즈의 별명인 737 오리지널(Original)과 구분해 737 클래식(Classic)이라고도 불린다. 판매실적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737 클래식은 737 시리즈가 성공하는 기반을 다진 기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737-300의 가장 큰 성공은 무엇보다도 엔진의 성능이 높아지면서 승객의 탑승인원이 종전의 100명에서 최대 140명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탑승객이 크게 증가했기에 이전에 큰 인기를 거뒀던 727의 시장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었다. 모두 1,988대가 생산된 737 클래식 시리즈의 성공은 이미 보장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명의 조종사가 탑승하는 737-300은 이전에 개발된 757/767 여객기의 디지털 조종실 설계를 그대로 물려받아 항공사와 운항승무원 모두에게 환영을 받았다. 사실 아날로그 방식으로 개발된 737-100/200 시리즈의 조종실은 2인승으로 운항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 인기가 높지 않았다.


<Boeing 737-300 Cockpit>


737-300은 승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는데 그 비결은 기내 짐칸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707, 727 여객기 동체 단면을 그대로 물려받은 737은 3+3 좌석 배치를 갖고 있어 2+3 좌석 배치를 가진 DC-9 여객기에 비해 기내 수하물 적재 공간이 부족했다.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737 클래식 시리즈는 머리윗짐칸(Overhead Bin)이 크게 열리도록 개선됐다. 이전의 여객기는 오늘날 버스의 짐칸처럼 고정돼 있어서 큰 짐을 넣기에 불편해 간단한 손가방 정도만 들고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짐칸이 커지면서 탑승객이 여행용 캐리어를 위탁 수하물로 부치지 않고 직접 휴대할 수 있게 됐고 목적지에 도착해 내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위탁수하물을 처리하는 인력을 감축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오늘날 기내용 캐리어를 직접 들고 탑승할 수 있는 것도 737 클래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737 클래식은 757-200 여객기 인테리어를 적용해 실내 공간을 고급화하고 주방과 화장실을 대형화한 점도 눈에 띄지 않는 성공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종전의 737-200보다 비행시간이 연장됨에 따라 탑승객의 편의성을 높이고자 고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Boeing 737-300 Cabin>

이러한 편리성에 착안해 사우스웨스트항공은 737 클래식 시리즈를 최대한 활용해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 LCC) 시대를 개척할 수 있었다. 737-300을 처음 인수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984년 12월 7일부터 댈러스~휴스턴 노선에서 상업운항을 시작했다. 최초 해외고객인 영국 오라이언항공(Orion Airways)은 1985년 1월 29일에 영국 항공청에서 형식인증을 교부하자마자 같은 날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후속작 -400/500
1985년 12월에 출시된 737-400 여객기는 -300 시리즈의 동체를 3.05m 연장해 최대 159명(고밀도 배치의 경우 188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었다. 737-300과 757-200의 간격을 채우기 위해 개발된 737-400은 1986년 6월 피드몬트항공(Piedmont Airlines)에서 확정 25대, 옵션 30대의 주문을 받아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동체를 연장해 좌석이 3열 증가한 747-400 시리즈는 1986년부터 1998년까지 12년간 모두 486대가 생산됐으며 마지막 기체는 2002년 2월 28일, CSA 체코항공에 인도됐다. 737-400 시리즈는 눈에 크게 띄지 않는 개량이 이뤄졌다. 하나는 이륙할 때 꼬리부분이 땅에 닿더라도 긁히지 않도록 꼬리 범퍼가 설치됐고 이륙증량이 증가하면서 주익 내부 구조물의 설계를 개량했다. 737-400SF(Special Freighter)는 중고 737-400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한 기종이다.


<Boeing 737-400>


737-400 시리즈의 동체를 연장한 737-400 시리즈와 반대로 737-500 시리즈는 사우스웨스트항공으로부터 20대의 주문을 받아 1987년 5월 20일부터 737-300 시리즈의 동체를 2.4m 단축해 개발됐다. 737-200이 후계 기종인 737-500 시리즈는 737-300과 거의 비슷한 크기이면서도 CFM56 엔진을 탑재하면서 연비가 25% 향상돼 항속거리가 연장됐다. 140명이 탑승할 수 있는 737-500 시리즈는 737-200 조종사가 무리없이 기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디지털 방식이 아닌 구형 아날로그 계기판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737-500 시리즈는 1989년 6얼 3일 시애틀 렌튼 공장에서 처음 출고됐으며 같은 달 30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단 375시간의 비행시험을 마치고 1990년 2월 12일, 미 연방항공청(FAA) 형식인증을 취득한 737-500 시리즈는 같은 해 3월 2일부터 사우스웨스트항공에 인도됐다. 특히 1991년 2월 25일, 루프트한자항공에 납품된 기체는 737 시리즈의 2,000번째 여객기이며 동시에 루프트한자항공의 100번 째 737이었다. 737-500 시리즈는 총 389대가 생산됐으며 1999년 6월까지 모두 납품됐다. 1990년대 사우스웨스트항공은 737-300/500 시리즈를 250여 대 도입해 737 클래식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설립된 아시아나항공(Asian Airlines)에서 최초 도입한 항공기가 바로 737-400이다. 1988년 12월에 1호기로 도입된 아시아나항공 737-400은 곧바로 김포~광주, 김포~부산 노선에서 운항을 시작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737-400 26대, 737-500 7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해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했으며 마지막 기체를 2013년 2월, 에어부산(Air Busan)에 이관하면서 모두 퇴역했다.


<Boeing 737-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