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여객기의 계보 (44) Antonov An-72/-74 "Coaler"

제트 여객기의 계보 (44)
Antonov An-72/-74 "Coaler"



글/ 이장호


국토 넓은 러시아, 항공편은 필수
냉전시기, 소련은 광활한 국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갖고 있었다. 중앙집권 성격이 강했던 소련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연방국가를 결속시키고 관리하기 위해 교통과 통신망 구축에 노력했다. 1950년대만 해도 아직 항공여행이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소련의 경우에는 여러 항공업체에서 다양한 기종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었다. 체제의 안정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연락망 유지에 힘썼던 소련은 항공편을 이용한 교통망이 꼭 필요했다.

넓은 국토에 흩어져 있는 여러 도시를 연결하려면 교통망 건설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워낙 국토가 넓기 때문에 철도와 도로망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것은 비용 문제로 처음부터 힘들었다. 따라서 대륙 철도망에서 벗어난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항공편 개척이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점은 인구가 많고 거주지역이 고르게 분포해 일찌감치 철도망이 발달한 서유럽과는 대조적이다. 서유럽의 경우 국가와 도시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일반 여행객은 비싼 항공편보다는 경제적인 철도편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철도망에서 벗어난 외진 지역으로 여행하려면 항공편이 유일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항공편을 이용한 교통망은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소련은 항공산업을 육성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독려토록 했다.


민군 겸용 플랫폼 선호
첨단 과학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항공기는 냉전시기에 동서 진영이 앞을 다퉈 연구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소련의 경우 1950년대 들어 항공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일종의 민군 겸용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기 개발에 노력했다. 그 결과 하나의 플랫폼으로 군용 수송기와 민간 여객기를 모두 개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기종을 개발하도록 했다. 예컨대 기본적으로 여객기로 개발하되 내부의 좌석을 철거하면 수송기로 변신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개념으로 개발된 대표적인 기종으로 안토노프(Antovov) An-24 "코크(Coke)" 여객기와 An-26 "컬(Curl)" 수송기를 들 수 있다. 40석급 여객기인 An-24 기종을 군용 수송기로 개조한 An-26 수송기는 외형상 거의 비슷하며 내부에 5톤의 화물을 탑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민군 겸용 개발의 효과를 확인한 소련 정부는 심지어 폭격기와 여객기를 겸용하도록 개발을 지시하기도 했다. 소련 최초의 제트 엔진 폭격기로 유명한 투폴레프(Tupolev) Tu-16 "배저(Badger)" 폭격기의 경우에도 폭탄을 탑재하는 공간을 객실로 개조한 Tu-104 "카멜(Camel)" 여객기로 개발되기도 했다. Tu-104 여객기는 소련 최초의 제트 여객기로서 VIP 전용기로 한때 활약했다. 심지어 엔진 소음이 심하기로 유명한 Tu-95 "베어(Bear)" 터보프롭 폭격기의 경우에도 Tu-114 "클리트(Cleat)" 장거리 여객기로 개발돼 실제로 운항됐다. 이처럼 냉전 시기에 소련은 항공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국토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항공교통의 발전에 노력했다.


<An-26>


비포장 활주로 운용 능력이 중점
1950년대에 대량으로 생산된 여객기가 점차 노후화되자 1970년대에 소련 정부는 An-24/-26 대체 기종의 개발을 항공기 설계국에 지시했다. 소련의 민간 항공노선은 철저하게 허브 & 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구성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넓은 국토에 분포한 도시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기에 자원이 부족했던 소련 정부는 주요 대도시를 거점으로 중소도시를 지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항공노선을 구성했다. 이에 따라 대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노선은 대형 여객기가 담당하고 중소도시로 운항하는 노선은 중소형 여객기의 몫이었다. 한편, 대도시의 공항은 활주로와 여객 터미널 같은 기반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지만, 지방도시의 경우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여객터미널에 탑승교가 없어 승객이 주기장을 걸어가서 직접 탑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방의 소형 공항은 활주로의 포장 상태가 완전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임시 활주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으로 운항하는 기종은 민간 여객기보다는 군용 수송기에 가까운 성능이 요구됐다. 특히, 활주로가 충분하지 않고, 겨울철에 얼어붙는 경우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지방노선에 취항하는 여객기는 단거리 이착륙(STOL, Short Take-Off & Landing) 성능이 요구됐다. 

1970년대 초반, 소련의 유명한 항공기 설계국인 안토노프, 일류신(Ilyushin), 투폴레프는 새로운 중형 여객기 개발을 놓고 경쟁했다.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성능 중의 하나가 바로 단거리 이착륙 성능이었다. 시베리아처럼 북극에 가까운 지역에서 안전하게 운항하려면 단거리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성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때 개발하는 기종의 경우에도 민간 여객기와 군용 수송기를 겸할 수 있어야 했다. 사실 민간 여객기라고 해도 국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Aeroflot) 자체가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영 기업이며, 유사 시에는 동원령에 따라 공군 산하로 편입된다. 따라서 민군 겸용으로 여객기/수송기를 개발한다는 점은 상식적이었다. 

여객기의 단거리 이착륙 성능을 높이려면 주익의 면적을 넓게 만들거나 플랩(flap)을 크게 설치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착륙 속도가 빠를수록 활주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주익을 특수하게 설계하면 단거리 이착륙 성능에 유리하다. 그러나 이 주익이 크면 공기 저항도 증가하기 때문에 순항속도로 비행할 때 저항이 증가하면서 연비가 낮아지는 단점도 있다. 이 때문에 항공기를 설계하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는 서로 맞지 않는 조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1968년에 미 공군은 C-130 전술 수송기를 대체하는 신형 수송기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고립된 기지에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투입됐던 C-123, C-130 수송기는 느린 속도로 이착륙할 때 적군의 공격에 쉽게 노출됐다. 반면에 발군의 단거리 이착륙 성능으로 유명한 C-7 수송기는 이착륙 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비교적 생존율이 높았다. 이러한 실전 교훈에서 미 공군은 짧은 활주로에서 순간적으로 가속해 빠른 시간 내에 이착륙해야만 생존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따라서 연비는 우수하지만 속도가 느린 터보프롭 엔진을 대신해 제트 엔진을 사용하는 신형 수송기의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1972년에 미 공군은 신형 수송기 사업을 공고하면서 12톤의 화물을 싣고 610m 활주로에서 이착륙해 930km를 비행할 수 있는 성능을 요구했다. 이정도 성능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단순하게 주익을 개량하는 것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에 따라 입찰에 참여한 보잉(Boeing), 더글러스(Douglas) 등 두 회사는 획기적인 기술을 시도했다. 보잉은 엔진을 주익 위에 설치하여 배기가스가 주익을 타고 내리도록 하는 USB(Upper Surface Blowing) 방식을, 더글러스는 엔진을 주익 아래에 밀착시켜 대형 플랩에 직접 분사하는 EBF(Externally Blown Flaps) 방식을 선보였다. 미 공군은 두 기종을 비교 평가했으나 예산문제로 1979년에 사업이 중단되고 말았다. 사업이 중단되면서 USB 및 EBF 방식은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다만 USB 방식은 높은 위치에 엔진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할 때 발생하는 모래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소련의 안토노프 설계국은 단거리 이착륙 성능보다 비포장 활주로를 가진 지방공항의 조건을 감안할 때 USB 방식이 유리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실제로 An-72 "코알라(Coaler)" 수송기가 선보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보잉 YC-14 수송기를 모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토노프 수석 엔지니어에 따르면 단거리 이착륙 성능을 중시한 YC-14 수송기와 달리 An-72 수송기는 소련의 지방공항 조건에 맞추기 위해 USB 방식을 채택했다고 한다.
 

<YC-14>


수송기·여객기로 활용
추위가 매서운 1977년 12월 22일에 초도비행을 마친 An-72 수송기는 쌍발 엔진을 독특하게 배치해 발생하는 양력의 증가 효과와 더불어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성능을 인정받아 소련 정부에 의해 양산이 결정됐다. 수송기로 먼저 개발된 An-72 기종은 병력 68명, 낙하산병 57명 또는 10톤의 화물을 탑재할 수 있다. An-72 수송기는 높은 비행성능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해외국가에도 다수가 수출됐다. An-72 수송기로 자신감을 얻은 안토노프 설계국은 개량형인 An-74 기종을 개발했다. An-74 수송기는 An-72 기종의 성능을 더욱 높여 영하 60도의 극한 조건에서 결빙된 활주로에서 이착륙할 수 있도록 개량한 기종이다. 이를 위해 랜딩기어와 결빙방지 장치가 보강됐다.
 
주로 군용으로 사용된 An-72 수송기와 달리 An-74 기종은 44명이 탑승할 수 있는 여객기로 개발됐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필요할 때 여객기를 화물기로 바꿀 수 있는 콤비(combi) 형태로 제작됐다. 현재까지 생산 중인 An-74 여객기는 동구권 및 제3세계 국가의 중소 항공사에서 인기가 높으며, 군용기로도 많이 판매됐다. An-72/-74 기종은 200여대가 생산됐으며, 연비가 우수한 터보팬의 성능 덕분에 쓸 만한 수송기/여객기로 평판이 높다. 

1970년대에 개발된 기종인 만큼 조종실 계기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개발됐으며, 러시아 특유의 다수의 운항승무원 방식이 남아있다. 서유럽 국가에서 개발하는 기종의 경우 에어버스 A310, 보잉 737 여객기부터 조종사와 부조종사 2명만으로 운항하는 2인승 조종실이 일반화됐다. 그러나 An-72/-74 기종의 경우 조종사/부조종사, 항법사, 기상정비사, 적재사(loadmaster) 등 5명의 승무원이 탑승한다. 이처럼 중형 여객기에 4명의 운항승무원이 탑승한다는 점은 서유럽의 기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에서 개발된 수송기/여객기 중에서 비교적 기술적인 문제점이 낮았던 An-72/-74 기종은 1970년대 말 이후 현재까지 꾸준하게 일선에서 운항 중이며, 사고발생률도 크지 않은 편이다.


<An-72>

An-148, An-158로 개량돼
냉전이 끝나고 연방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안토노프 설계국은 2004년에 An-148 여객기를 선보였다. An-74/-74 기종을 기반으로 개량한 An-148 여객기는 21세기의 여객수요 증가에 부응해 처음부터 여객기로 개발됐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해 많은 국가의 지방공항 시설이 개선된 점을 감안해 USB 방식을 폐지하고 일반적인 포드(pod) 방식으로 엔진을 설치한 점이 특징이다. USB 방식은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할 때 이물질 흡입을 방지하는데 효과가 크다. 그러나 엔진이 너무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일상 점검할 때나 정비할 때 매우 불편한 단점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일반적인 형식으로 개발된 기종이 An-148 여객기이며, 조종실도 디지털 방식으로 개량됐다. 최대 85인승인 An-148 여객기의 동체를 연장해 100인승으로 개발된 여객기는 An-158이라고 불리며, 군용 수송기인 An-178 기종도 개발돼 현재 생산 중이다. 


<An-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