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여객기의 계보(50) Boeing 757(Pt.2)

제트 여객기의 계보(50)
Boeing 757(Pt.2)

 


글/ 이장호

경쟁업체인 더글러스(Douglas), 록히드(Lockheed)와 더불어 미국의 3대 여객기 업체였던 보잉(Boeing)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3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보잉이 내놓은 707 제트여객기는 출현 시기가 매우 적절했다. 팬암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을 비롯한 주요 항공사들이 707 제트여객기를 도입했고, 보잉은 경쟁업체를 제치고 제트여객기 시장에서 선두로 나서게 됐다. 이후 내놓은 727 여객기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707 기종으로 시작한 보잉의 제트여객기 사업은 굳건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새 기종의 필요성
1,800대 이상 판매돼 큰 성공을 거둔 727 여객기를 위협한 기종은 바로 에어버스(Airbus) A300 여객기였다. 불운한 최초의 제트여객기 D.H.106 코메트 추락사고 이후 제트여객기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던 영국은 여러 번 재기를 다짐했지만 불행히도 매번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대 유럽 국가들이 모여 시도한 에어버스 프로젝트는 매우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등장한 A300 여객기는 소음이 낮고 객실이 넓은 이중통로기로 많은 항공사의 주목을 받았다. 

더구나 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석유 위기가 발생하고 연료비가 높아지자 많은 항공사들은 연비에 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727 여객기는 성능이 향상된 프랫 앤 휘트니(P&W) JT8D 터보팬 엔진을 탑재했지만 A300B 여객기의 제너럴 일렉트릭(GE) CF6 고성능 터보팬 엔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727>

보잉으로서는 자사가 개발한 747 여객기의 CF6 엔진 기술을 에어버스가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었지만 설계한 지 오래된 727 여객기는 분명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다. 특히 3발 여객기인 727 여객기는 아무리 좋은 엔진으로 바꾼다고 해도 A300의 쌍발 엔진과 직접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1970년대 초부터 미 연방항공청(FAA)을 중심으로 민간 제트여객기의 소음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4년을 기점으로 727 여객기의 판매량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러다보니 보잉으로서는 주력 기종인 727 여객기의 세대교체가 시급했다. 처음에는 727 기종을 개량한 727-300 여객기를 내놓을 계획이었다. 747 여객기를 개발하고 시애틀 에버렛(Everett)에 대규모 공장을 새로 건설하면서 자금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심작 보잉 "7X7" 계획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판매가 다소 감소하고는 있지만 나름 선전하고 있는 727을 약간만 개량해 버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에서 727-300 기종을 거부하면서 보잉의 모든 계획은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보잉은 727-300 기종을 대신해 "7N7" 계획을 시작했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급부상한 7N7 계획은 1976년 1월부터 시작됐다. 이 계획은 727-300 기종과 달리 단순하게 엔진을 바꾸고 기체를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기종을 개발하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757 개발의 시작
7N7 계획을 구상하면서 보잉은 고객 항공사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160인승 7N7-100, 180인승 7N7-200 등 2가지 기종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1978년 9월 31일, 이스턴항공(Eastern Airlines)과 확정 21대, 옵션 24대, 영국항공(British Airways)과 확정 19대, 옵션 12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7N7 여객기는 727 기종의 직접적인 후속 기종으로 178~239명의 승객을 태우고 6,000~7,500km를 비행할 수 있다. 보잉은 단일통로기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동급 기종 대비 운항비용을 30% 절약할 수 있는 여객기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세계를 강타한 석유 위기로 인한 경제회복은 더뎠고 1980년까지 7N7 여객기를 구매할 새로운 고객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같은 해 4월, 트랜스브라질항공(Trans Brazil Airlines), 알로하항공(Aloha Airlines)이 각각 3대씩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주목할 만한 대량 주문은 없었다. 그러나 1980년 11월에 미국의 대형항공사 델타항공(Delta Airlines)에서 미국 국내선 신기종으로 60대를 구매하면서 개발에 활력을 줬다.


<7N7>

델타항공이 대량으로 구매하자 경쟁사인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도 구매를 결정했다. 주목할 점은 델타항공이 구매하면서 GE CF6-32 엔진이 아닌 P&W PW2037 엔진을 선택한 점이다. GE CF6 엔진 자체는 747 이후 충분한 실적을 보유한 엔진이었지만, 경쟁업체 P&W는 CF6급 엔진 시장에 진출하고자 활발하게 PW2037 엔진을 판매하고자 했다. PW2037 엔진은 민간 여객기용 엔진 최초로 전자식 제어장치(FADEC)를 탑재한 엔진으로 독일 MTU 에어로엔진스(MTU Aero Engins)와 공동개발한 엔진이다. 

델타항공 이후 다른 항공사도 PW2037 엔진을 선택하자 GE는 1981년 1월, 7N7 사업에서 철수를 발표했다. 한편 영국 롤스로이스(Rolls-Royce) 역시 록히드 L-1011 여객기에 탑재했던 RB.211 엔진을 개량해 7N7 사업에 진입하고자 노력했다.


<RB.211>

주요 항공사로부터 순조롭게 주문을 받으면서 보잉은 여객기 사업부의 중심인 렌튼(Renton) 공장에 개발본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보잉 757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7N7 여객기는 원래 727 기종과 상당 부분 공통점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됐다.

7X7 즉 767 여객기보다 약간 늦게 개발이 시작된 757 여객기는 기본적으로 727 여객기의 후속 기종이다. 그러나 보잉 개발팀은 기술적으로 낡은 727보다는 앞서 개발 중인 767 여객기와 공통점을 갖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원래 767 여객기는 727 여객기와는 다른 기종으로 727 및 747 여객기의 중간에 해당하는 신형 여객기였다.

이에따라 개발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조종실과 비행제어, 통신 등 항전장비는 보잉 767 기종과 공용화했다. 덕분에 조종사는 757 및 767 기종자격을 동시에 취득할 수 있어 항공사의 환영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여객기 조종사는 기종별로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따라서 757/767 여객기 조종 자격을 같이 취득할 수 있다면 항공사는 노선별로 필요한 승무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하다.

특히 757/767 여객기는 디지털 조종실(Digital Cockpit)의 선구자로 유명해 2명의 조종사로 비행이 가능하다. 757 여객기는 위험부담과 비용을 줄이고자 보잉이 보유한 여러 기종의 기술력을 모아 개발된 기종이다. 동체는 727에서 물려 받았지만 길이는 연장됐다. 



조종실과 항전장비는 767에서 그대로 가져왔고 주익 기본 설계는 767 여객기에서 가져왔으며 동체가 좁은 757 기종의 특성에 맞춰 개발됐다. 또한 대형 엔진을 탑재하기 위해 착륙장치가 길게 설계됐으며, 이는 나중에 동체를 연장한 757-300 기종을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 꼬리날개는 당초 727 여객기처럼 T자형으로 설계됐으나 나중에 767처럼 변경됐다.

 
기술·경제성 모두 잡은 성공작
설계를 마친 757 여객기는 1982년 1월 13일에 출고됐다. 초도비행은 같은 해 2월 19일에 성공적으로 치렀다. 7개월의 시험비행 기간을 거쳐 롤스로이스 RB.211 엔진을 탑재한 757-200 여객기는 1982년 12월 21일에 FAA의 형식인증을 취득했다. 757 여객기의 1호기는 첫 번째 고객인 이스턴항공에 1982년 12월 22일에 인도됐다.

이 때는 767 여객기의 첫 인도가 이뤄진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동시에 두 기종을 개발했다는 점 자체가 놀랍다. 한편, PW2037 엔진을 탑재한 757 여객기는 약 1년이 지난 1984년 11월 5일 델타항공에 인도됐다.




727 기종을 대신해 미국 국내선 노선에 등장한 757 여객기는 727 대비 50% 증가한 탑승인원으로 인기가 높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같이 등장한 767 기종과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미국 국내선에 취항하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환영을 받았다. 승객이 몰리는 노선에는 767 기종을 투입하고, 승객이 적은 노선에는 탑승률이 떨어지는 757 기종을 투입하는 편이 경제적이었다. 또한 두 기종의 조종사는 하나의 자격증으로 모두 운항이 가능했기 때문에 승무원 운영 측면에서도 항공사에 유리했다.

757-200 여객기 1호기를 인수한 이스턴항공은 1983년 1월 1일에 애틀란타~템파베이 노선에서 운항을 시작했다. 이어 두 번째 고객인 영국항공은 1983년 2월 9일에 런던~벨파스트 노선에서 운항을 시작헀다. 항공사는 물론이고 승무원과 승객 모두 727 대비 넓어진 실내와 엔진의 정숙성을 인정했다.




특히 757 여객기 연비는 처음 개발할 때 20%를 목표했으나 실제로 707 대비 42%, 727 대비 40%나 향상됐다. 당초 동체가 짧은 757-100 기종도 계획됐으나 727과 비교할 때 장점이 크지 않아 개발단계에서 취소됐다.

이처럼 757 여객기는 기술적으로 매우 우수하고 경제적인 기종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뤄진 미국의 항공자유화 정책에 따라 99인승 이하 중형여객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캐나다와 브라질에서 개발된 신형 기종이 속속 등장했다. 이에 따라 경쟁사인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는 757급 여객기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지 않고 기존 DC-9 여객기를 대폭 개량한 MD-80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757 여객기와 737 여객기의 중간 시장을 차지하는 우회적인 전략으로 대응했다.

이에 따라 우수한 성능과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757 여객기는 1980년대 초반 판매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미국 내 허브공항에서 소음규제가 강화되면서 1988~89년에 300여 대가 팔릴 정도로 실적이 급증했다. 한편, 1986년 쌍발 엔진 여객기의 해상비행조건(ETOPS)이 완화되면서 북대서양 노선에 취항을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757 여객기는 1990년대 초반 연간 100대 이상의 판매가 지속됐다.

보잉은 항속거리가 긴 757 기종의 특성을 살려 동체를 연장한 757-300 기종 개발을 1996년에 발표했다. 757-300은 757-200 동체를 7.1m 연장해 40명의 승객이 더 탑승할 수 있는 여객기로 에어버스 A321 여객기와 경쟁하기 위해 등장한 기종이다.

그러나 757-300 기종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말부터 수주 실적이 감소했다. 767 기종과 달리 판매가 부진하자 보잉 경영진은 MD-80 시리즈처럼 737-200 여객기를 대폭 개량해 에어버스 A320 시리즈에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보잉은 2004년 말 757 사업을 종료한다고 발표했으며, 생산 공장과 설비를 모두 매각했다. 생산 종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내선에서 757 여객기는 지금까지도 활발하기 운항 중이며, 미국 정부의 전용기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