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교 기장의 Flight Bag (2)


[바람과의 싸움, 민항조종사의 삶]
 

민항조종사로 생활한 30년 세월을 돌이켜봤을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대부분은 승객 안전과 관련된 일이다. 예상치 못한 기상 이변이나 항공기 결함 같은 일은 긴장도가 매우 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번 호 역시 지난 호에 이어 운항 중 기상 이변으로 급박했던 순간을 소개하려 한다.
 
조종사들의 마음의 짐, 기상 상태
약 2년여 전 중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중의 일이었다. 출근 전 암스테르담 기상 예보를 확인해보니 도착 시간대에 기상이 급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조금 신경 써야겠군’ 하는 마음을 가지고 운항브리핑실로 향했다. 도착해 컴퓨터 비행계획서와 기상 자료를 훑어보니 예상대로 단순한 임무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비행 지연이나 취소 사유가 되진 않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예비 연료를 추가하는 선에서 운항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륙한 지 6시간이 지나고 노선 후반부에 접어들자 암스테르담의 기상 상태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출발 전 확인한 예보가 그대로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운항정보 교신시스템(ACARS)를 통해 알아보니 기상이 심상치 않게 변화되고 있었다.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강력한 저기압의 영향으로 목적지 기상은 비바람을 동반한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윈드쉬어(Windshear)까지 동반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예비공항으로 항로를 바꿀 상황은 아니었다. 따라서 착륙 2시간 전 부기장과 접근 및 착륙 브리핑을 실시했다. 36,000피트(약 11km) 상공에서 바라본 유럽은 구름으로 뒤덮여있었다.

어느덧 착륙 예정 시간이 가까워지자 고도 강하가 지시되면서 본격적인 레이더접근 관제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레이더 관제가 공항에서 상당히 먼 곳으로 유도됐다. 우리 앞에 이미 항공기 세 대가 공항에 접근 및 착륙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만일을 대비한 예비 연료도 간당간당한 상황이 됐다. “착륙만 잘하면 별 문제 없겠지”하는 마음으로 속도를 줄이면서 레이더 유도에 따라 활주로 연장선 상에 진입했다. 이미 고도는 3천 피트(약 900m)까지 강하된 상태였다.
 
중압감 뒤 행복감
그런데 그야말로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방향이 수시로 바뀌었으며 세기 또한 엄청나 항공기가 시시각각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심한 요동에 눈앞의 비행계기를 읽는데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밖에는 빗줄기가 유리창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해일을 만난 난파선처럼 출렁거렸다. 고도가 천 피트(약 300m)에 다다랐을 때 나는 수동 비행으로 전환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측풍이 자동 착륙 제한치인 30노트(약 54km/h)를 훌쩍 넘어 43노트(80km/h)에 달했기 때문이다.

착륙에 온 정신을 쏟고 있을 찰나 정신이 바짝 날 정도의 큰 소리로 “윈드쉬어, 윈드쉬어”하는 경고음이 고막을 때렸다. 나는 즉시 복행을 시작하면서 본능적으로 연료 잔량을 확인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승무원들도 할 말을 잊은 듯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단 관제기구에 복행 사실을 보고하고 다시 한 번 접근할 것을 요청했다. 다른 공항으로 갈 연료도 부족하고 기상 상태도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접근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바람 방향이 맞지 않아 보조 활주로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착륙 순간만이라도 기상이 호전되기를 바라면서 재접근을 시작했다.

날아올랐던 항공기가 점점 복행했던 지점에 가까워지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수동 비행 모드로 전환했다. 요동치는 항공기를 꾹 붙들어 매면서 그야말로 정신없이 조종을 해 활주로 끝단 상공에 진입했다.

그 때 자동음성 장치에서 “Fifty, Forty, Thirty"하고 고도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곧이어 착륙장치가 활주로에 닿는 충격이 느껴지면서 역추진 장치 소리가 들려왔다. 착륙에 무사히 성공한 것이다. 등짝에 땀이 또르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활주로를 벗어나 유도로로 진입하자 비로소 긴장감이 풀려왔다.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니 모두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항공기를 주기장에 정지시킨 후 짐을 챙겨 트랩을 내려오는데 강한 바람이 유니폼을 때리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겼구나’하는 생각에 상쾌함이 느껴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부여된 임무를 안전하게 수행해야 하는 중압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 이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바로 민항조종사의 삶이 아닌가 싶다.


글/ 정문교(항공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