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여객기의 계보 (48) Boeing 767 (Pt.3)

제트 여객기의 계보 (48)
Boeing 767 (Pt.3)
 


글/ 이장호

1969년, 747 점보 여객기를 선보이면서 세계 민간 여객기 시장을 선도했던 보잉(Boeing).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야심작은 보잉 2707 초음속 여객기였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미국과 소련의 첨단 항공기술 경쟁도 일부분 작용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유럽보다 기술력이 높다는 점을 단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종이 바로 2707 초음속 여객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인 압박과 더불어 아폴로 우주선에 우선 투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2707 프로젝트는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결국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라는 타이틀은 소련의 투폴레프(Tupolev) Tu-144 여객기가 차지했다.


경제성 높은 A300, 미 국내선 침입
이처럼 세계 최초 초음속 여객기라는 타이틀을 놓친 보잉은 1970년대 초반, 747 여객기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유럽에서 공동개발한 에어버스 A300 여객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A300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유럽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편이었고 참여 국가 간의 갈등으로 인해 제대로 진행될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막상 A300 여객기가 완성됐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독일 국적항공사조차 선뜻 구매하기를 주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든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사건이 바로 석유파동이다. 1973년 10월 발생한 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면서 원유 가격이 수직 상승했다. 이로 인해 민간 항공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쌍발 엔진을 장착해 경제성이 높은 A300 여객기는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최대 3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A300 여객기는 보잉 747 기종과 같은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 CF6 엔진을 탑재한다. 항속거리의 차이는 있지만 A300 여객기는 보잉 747 기종의 절반 규모이고 경제성이 뛰어난 기종이다. 석유파동이라는 상황에서 연료효율이 30% 이상 우수하다는 점은 설득력이 있었고 마침내 1977년 이스턴항공(Eastern Air Lines)에서 A300 여객기를 국내선용으로 23대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미국의 국적항공사 팬암항공(Pan American World Ways)도 A300 여객기를 도입했다. 이러한 결정은 미국의 여객기 제작사 보잉과 더글러스(Douglas)에 큰 충격을 줬다.

1970년대 후반 미국 국내선의 주력 기종이었던 보잉 727 여객기는 1964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구형 기종이다. 보잉 707 여객기를 축소한 보잉 727 여객기는 150~180명 정도만 탑승이 가능하고 3발 엔진이라서 연비도 낮고 소음이 심했다. 그런데 석유파동을 계기로 이스턴항공은 2배나 많은 승객이 탑승할 수 있고 연비가 30% 높은 에어버스 A300 기종을 선택했다. 만약 경제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면 국적 항공사 팬암항공도 A300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석유파동을 계기로 민간 여객기의 선택에서 비행성능 및 안전성과 더불어 경제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했다.

미국 국내선에서조차 경쟁사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자 보잉은 신기종 개발을 제외한 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었다. 보잉 747 여객기를 선보인 지 불과 3년이 지난 상황에서 세상에 선을 보인 에어버스 A300 쌍발 여객기는 이처럼 민간 여객기 시장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Airbus A300>

A310을 노리고 개발된 767
보잉은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7X7"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8년 7월, 에어버스가 A310 개발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박해졌다. 새로 개발되는 A310 여객기는 A300 기종의 동체를 단축해 200인승으로 줄이는 대신 항속거리가 7,000km로 연장됐다. 더구나 글래스캇핏(glass cockpit) 기술을 도입해 운항관리를 자동화했다. 따라서 항공기관사 없이 기장과 부기장만으로 운항이 가능해 성능과 경제성 측면에서 보잉 727 기종을 압도했다. 더구나 항속거리 연장으로 대부분의 미국 국내선에 취항이 가능해져 보잉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경쟁기종이었다. 보잉은 에어버스 A310 기종에 대항하기 위해 보잉 727 기종을 대체하는 "7N7"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편, 기종 "7X7"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에어버스 A300 기종에 대응하는 새로운 250인승 여객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국 항공사의 의견을 반영해 3발, 3인 운항 여객기를 검토했으나, 에어버스의 경쟁기종이 개발을 시작한 만큼 정면 승부를 위해 쌍발, 2인 운항으로 방향을 결정했다. 그리고 2개 기종을 동시에 개발하면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조종실을 공용화해 한 명의 조종사가 2기종의 자격을 동시에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보잉이 굳이 에어버스 A300/A310 기종보다 동체 지름을 작게 만든 이유도 비행 중에 발생하는 공기저항을 줄여 연료를 절약하고 항속성능을 높이려는 데 있었다. 이처럼 1970년대 후반은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성이 크게 부각되는 시기였다.

보잉의 "7X7" 프로젝트는 보잉 767 여객기로 구체화됐다. 보잉 767 여객기는 미국의 주요 대도시를 잇는 간선 노선에 투입되는 기종으로 개발됐다. 1970년대 말 미국 내 주요 노선에 취항하는 보잉 727 여객기는 성능 부족과 더불어 좌석 공급에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증가하는 여객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이중통로기 여객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이스턴항공과 팬암항공이 에어버스 A300 기종을 선택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보잉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에 우선적으로 개발 계획을 설명했고 여객 수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많은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정했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제작업체가 신형 여객기를 개발할 때 표준 동체를 먼저 개발하고 다음에 동체를 연장해 대형화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유나이티드항공은 200인승 보잉 767-100 기종에는 관심이 없었고 250인승 보잉 767-200 기종을 구매할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보잉은 767-100 기종을 생략하고 곧바로 767-200 기종부터 개발하기 시작했다. 보잉 767-100 기종이 없는 것은 이러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은 1978년 7월 14일에 30대의 보잉 767 여객기를 구매했다. 순조롭게 개발이 진행된 보잉 767 여객기는 1979년 7월 6일부터 프랫 앤 휘트니(P&W) JT9D 엔진을 탑재한 시제 1호기의 최종조립이 시작됐고 1981년 9월 26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GE CF6 엔진을 처음 탑재한 시제 5호기는 1982년 2월 19일에 초도비행을 했다. 보잉 767 여객기는 시험비행을 거쳐 1982년 7월 30일 미 연방항공청(FAA)의 형식인증을 취득한 다음 같은 해 8월 19일 유나이티드항공에 1호기가 납품됐다.


<United Airlines 767-200>


다양한 개량형으로 스테디셀러로
보잉 767 여객기 개발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이 이탈리아, 일본과 협력해 공동개발했다는 점이다. 이전에 보잉 747 여객기를 개발할 때까지 보잉은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했고 필요한 경우에만 다른 국가의 전문업체에서 제작한 부품을 공급받았다. 그러나 "7X7" 및 "7N7"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이탈리아와 일본과 협력해 비용을 부담하고 위험을 줄이고자 시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 일본의 전일본공수(All Nippon Airways)가 출시 고객이 됐다. 보잉은 보잉 707, 보잉 747 프로젝트를 통해 팬암항공과 긴밀하게 협력했기에 보잉 767 여객기가 개발되면 미국 국적항공사 팬암항공도 당연히 주문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팬암항공의 기종 선택은 다른 항공사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암항공은 동체가 가늘어 화물칸에 LD-3 컨테이너를 탑재할 수 없다는 점에 크게 실망했다. 왜냐하면 LD-3 컨테이너는 보잉 747 화물기에도 탑재하는 표준 컨테이너였기 때문이다. 보잉 767 전용으로 제작된 LD-2 컨테이너는 크기가 작아 보잉 747 기종에 적재하면 공간이 남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미국 국적사 팬암항공은 유럽제 에어버스 A300/A310 기종을 선택했다.


<LD-3 컨테이너>


보잉에서 야심차게 개발한 보잉 767 기종은 출시 초기 생각보다 판매실적이 좋지 않았다. 1981년부터 판매가 시작됐지만 1984년까지 수주량이 고작 35대에 불과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석유파동의 후유증으로 인해 항공시장이 위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대를 걸었던 팬암항공도 발길을 돌리자 보잉은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대서양을 횡단하는 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항속거리를 연장한 보잉 767-200ER(Extended Range) 기종이 개발됐다. 미국 국내선을 벗어나 해외 국가의 항공사에 필요한 국제선 기종으로 개발된 보잉 767-200ER 기종은 최대 12,000km까지 비행할 수 있었다. 특히 쌍발 여객기의 "해상비행 제한조건(Extended-tange Twin-engine Operational Performance Standards, ETOPS)" 기준은 해상에서 비행할 때 한 쪽 엔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하나의 엔진만으로 비행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1983년 보잉 767-200ER 여객기는 ETOPS-60(최대 60분)이었으나 1985년에는 ETOPS-120(최대 120분)으로 향상됐다. 이에 따라 대서양 횡단 노선의 경우 보잉 747 기종으로는 탑승률이 충분하지 않은 노선에서 보잉 767-200ER 기종이 점차 경쟁력을 갖게 됐다.

한편, 보잉 767-200 기종의 동체를 6.4m 연장한 보잉 767-300 기종은 일본항공(Japan Air Lines)이 주문한 개량형으로 델타항공(Delta Airlines)도 채택했다. 그러나 승객 탑승인원이 늘어난 데 비해 항속거리는 7,400km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의 요구에 따라 항속거리를 11,000km로 연장한 보잉 767-300ER 기종이 개발됐다. 보잉 767-300ER 여객기는 항공사에 가장 인기가 높은 기종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적항공사 중에서 유일하게 보잉 767-30ER 기종을 보유하고 있다. 보잉 767-300ER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한 보잉 767-300F 기종은 화물항공사 UPS(United Parcel Service)의 요구에 따라 개발됐으며 아시아나항공도 1대를 도입했다.

보잉 767 시리즈 중에서 가장 독특한 보잉 767-400er 기종은 보잉 767-300의 동체를 6.4m 연장한 개량형으로 델타항공의 요구에 따라 개발됐다. 델타항공은 대서양 횡단 노선에 투입되는 록히드(Lockheed) L-1011 기종을 교체할 300인승 여객기를 주문하면서 추후에 나오는 보잉 777 여객기와 같은 조종실 환경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보잉 777 기종과 같은 완전한 글래스캇핏을 채택한 점이 특징이다. 

새로운 기종이 속속 등장하는 오늘날 보잉 767 기종은 신선한 이미지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 경쟁력을 가진 화물기로 계속 생산 중이다. 보잉은 미 공군의 공중급유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보잉 767 기종을 제안했다. 보잉은 767-200 동체와 767-300 주익을 결합하고 조종실과 비행제어계통을 개량한 보잉 767-2C 민간 화물기를 개발해 FAA 형식인증을 받았다. 보잉은 767-2C 화물기를 KC-46A 공중급유기로 개발했으며 현재 양산 중이다.


<Boeing 767-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