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 여객기의 계보 (45) McDonnell Douglas MD-80

제트 여객기의 계보 (45)
McDonnell Douglas MD-80



글/ 이장호


초창기 제트 여객기의 발달 과정에서 보잉(Boeing)과 더글러스(Douglas)가 벌인 경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도 같다. 1950년대 미국의 민간 여객기 분야에서 두 회사는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했고 때로는 생존을 걸고 치열하게 격돌했다. 사실 1940년대까지 미국의 민간 여객기 시장은 더글러스와 록히드(Lockheed)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보잉, 콘베어(Convair), 마틴(Martin)은 그 뒤를 추격하는 실정이었다. 오늘날 보잉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믿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뒤바뀐 순위
2차 대전까지 보잉은 미 육군 항공대의 폭격기를 주로 생산하는 방산업체였다. 물론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방산업체로 공식 지정된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잉이 생산하는 항공기의 대부분은 군용기이며 민간 여객기의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보잉 B-17 폭격기를 개조한 보잉 307 스트라토라이너(Stratoliner), 보잉 B-29 폭격기를 개조한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Stratocruiser) 여객기의 개발과정을 볼 때 보잉은 방산업체의 성격이 강하다. 지금은 믿기 힘들지만 당시 보잉의 여객기 판매량은 경쟁사와 비교할 때 상당히 저조한 편이었다. 보잉에서 야심차게 개발한 보잉 307 여객기는 불과 10대, 보잉 377 여객기 역시 56대 정도만 판매됐다. 반면 경쟁사인 더글러스에서 생산한 DC(Douglas Commercial)-3 여객기는 607대, DC-4 여객기는 80대가 판매됐다. 특히 이는 2차 대전 중에 생산된 C-47 수송기 10,174대, C-54 1,170대는 제외한 수량이다. 더구나 록히드가 생산하는 콘스텔레이션(Lockheed Constellation) 여객기도 856대라는 놀라운 판매 기록을 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트 여객기의 시대가 열리면서 야심차게 도전한 보잉 707 여객기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출시되자마자 민간 제트 여객기 시장을 선도한 보잉 707 여객기는 단숨에 865대가 판매됐다. 170~19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장거리 여객기인 보잉 707 기종은 뒤늦게 등장한 더글러스 DC-8 제트 여객기를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 경영악화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개발한 DC-8 제트 여객기는 더글러스의 기대와 달리 556대만 판매돼 보잉 707 여객기의 2/3 정도에 머물렀다. 이처럼 불과 몇 년 만에 민간 여객기 시장에서 순위가 뒤바뀐 더글러스는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일찌감치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할 신기종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회심작 DC-9의 성공
더글러스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1963년에 등장한 보잉 727 기종은 다시 한 번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초창기 제트 여객기 시장을 개척한 보잉 707 여객기는 일단 사업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많았다. 더구나 중단거리 노선용으로 선보인 보잉 720 여객기의 실패를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보잉 707 기종의 연장선에서 개발한 보잉 727 여객기는 베스트셀러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었다. 4개의 엔진을 3개로 줄이고 150~19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보잉 727 여객기는 미국 국내선에서 인기가 높은 기종이었다. 보잉 707 여객기의 2배가 넘는 1,832대가 판매된 보잉 727 여객기는 보잉으로 하여금 탄탄한 수익기반을 가져다준 효자 상품이었다. 

반면 경쟁에 뒤쳐진 더글러스는 다급한 마음에서 프랑스의 슈드 카라벨(Sud Caravelle) 여객기를 면허생산해 미국 내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할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단거리 노선의 운항 시장을 노리고 개발된 BAC 1-11 여객기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결국 더글러스는 구형 기종인 카라벨 여객기가 미국의 국내선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더글러스는 3발 엔진의 150인승 기종인 보잉 727 여객기 대비 규모를 축소해 쌍발 엔진의 100인승 여객기를 개발한다면 단거리 노선용 기종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의 배경에는 BAC 1-11 여객기라는 경쟁기종의 출현이 큰 자극제가 됐다. 더글러스의 입장에서는 왕복엔진을 탑재한 구형 여객기가 제트 여객기로 교체되는 시기에 모험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영국제 BAC 1-11 여객기가 미국의 단거리 노선용으로 진출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보잉 727 여객기보다 작은 BAC 1-11 여객기는 그만큼 잠재력이 풍부한 단거리 기종이었다. 

이에 따라 더글러스는 쌍발 100인승 여객기를 새로 개발했고 기대한대로 큰 성공을 거뒀다. 모두 976대가 판매된 더글러스 DC-9 여객기는 2인 승무가 가능한 기종으로 경제성이 매우 높았으며, 델타항공(Delta Air Lines)을 시작으로 미국 항공사의 큰 환영을 받았다. 반면 미국 시장에서 DC-9 여객기와 힘겨운 대결을 벌여야 했던 BAC 1-11 여객기는 불과 244대만 판매되는데 그쳤다. 보잉조차도 자사의 727 여객기와 겹치지 않으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더글러스 DC-9 여객기의 존재감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응하고자 보잉은 727 여객기의 크기를 대폭 줄인 쌍발 100인승 여객기를 내놓았다. 이 기종이 바로 보잉 737 여객기이다. 그러나 이미 DC-9 여객기의 매력에 사로잡힌 항공사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잉에서 분사해 오랜 기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 조차 선뜻 구매에 나서지 않을 정도였다. 미국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던 보잉 737 여객기를 구매해 사업을 살린 첫 고객은 바로 독일의 국적 항공사인 루프트한자(Lufthansa)항공이었다.
 

<DC-9>


DC-9을 기반으로 개발된 MD-80
사실 국내선에 취항하는 중단거리 기종은 구분이 모호한 측면이 강하다. 일단 미국의 국내선에 처음 취항한 보잉 727 여객기는 3발 150인승 기종이었다. 여기에 정면 대결을 피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한 더글러스 DC-9 여객기는 쌍발 100인승 기종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보잉에서 쌍발 100인승 기종인 보잉 737 여객기를 내놓자 더글러스는 회심의 반격을 준비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기종이 바로 더글러스 DC-9 슈퍼 80 시리즈(series)이다. 기본적으로 100인승 여객기인 DC-9-50 기종의 동체를 연장해 150인승으로 확장한다는 개념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더글러스는 1973년에 DC-9-50 기종의 개발을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개량형 여객기를 계획했다. 당시에는 하루가 다르게 터보팬 엔진(turbofan engine)이 발전하고 있었다. 보잉 747 여객기를 성공시킨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CF6 엔진의 개발이 성공하면서 종전에 제트 여객기용으로 많이 사용됐던 JT8D 엔진도 성능이 점차 개량됐다. 더글러스 기술팀은 동체를 연장하고 연비가 높고 소음이 적은 개량형 엔진을 탑재한다면 구형 엔진을 탑재해 시끄럽고 연비가 낮은 보잉 727 여객기를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아무리 봐도 같은 150인승 여객기라면 쌍발 엔진이 3발 엔진보다 경제적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1970년대 석유위기를 겪은 미국의 항공사는 연료 비용에 민감했고 경제적인 쌍발 여객기는 큰 환영을 받았다. 더구나 보잉 727 기종은 운항승무원이 3명이지만 DC-9 기종은 단 2명으로 비행이 가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80년대를 겨냥한 새로운 여객기라는 의미에서 슈퍼 80 시리즈는 스위스항공(Swissair)으로부터 15대의 첫 주문을 받고 1977년 10월에 개발이 시작됐다. DC-9 기종을 기반으로 개발됐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며, 개발 발표 이후 5년 동안 100대가 계약됐다. DC-9 시리즈 중에서 가장 큰 DC-9-50 기종을 기준으로 주익 앞쪽에서 8프레임(3.9m), 주익 뒤쪽에서 1프레임(0.5m)을 추가해 전장 45.6m이 됐다. 혼성 137석, 단일 172명이 탑승할 수 있는 DC-9-80 여객기는 이륙중량의 증가에 대응해 주익면적이 28% 증가됐고, 신형 JT8D-209 터보팬 엔진이 탑재됐다. 신형 엔진은 추력 증가와 더불어 특히 소음이 대폭 감소해 항공사의 큰 환영을 받았다. 또한 저시정 조건에서 안전한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CAT IIIA 계기착륙이 가능하도록 개발됐다. 

DC-9 슈퍼 80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인 DC-9-81 기종은 1979년 10월 18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순조롭게 개발된 DC-9-81 여객기는 1980년 9월 12일에 스위스항공에 인도됐으며, 10월 5일부터 취리히~프랑크푸르트 노선에 취항했다. 

1979년에 개발이 시작된 DC-9-82 여객기는 DC-9-81 기종과 동체는 같지만 최대이륙중량이 증가하면서 항속거리가 30% 이상 증가했다. DC-9-82 여객기는 1981년부터 납품이 시작됐다. DC-9-82 기종이 마무리되고 이어서 DC-9-83 기종이 개발되던 무렵인 1983년 6월, 더글러스의 모기업인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는 DC 시리즈 명칭을 를 MD 시리즈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여객기 전문업체인 더글러스는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1967년에 전투기 전문업체인 맥도넬(McDonnell)이 인수했었다. 인수된 이후에도 더글러스는 자회사로서 독립적으로 경영되면서 DC 시리즈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명칭 변경이 결정되면서 DC-9 슈퍼 80 시리즈는 MD-80 시리즈로 변경됐고, DC-9-81 기종은 MD-81, DC-9-82 기종은 MD-82 기종으로 변경됐다. 

이어서 등장한 MD-83 기종은 동체를 그대로 두고 연료탑재량을 증가시켜 항속거리가 DC-9-81 대비 60% 증가한 중장거리 기종이다. 이어서 1985년에 등장한 MD-87 여객기는 동체를 5.3m 단축하고 항속거리는 그대로 유지한 기종으로 20년 전에 등장한 DC-9 초기형을 대체하는 후속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나중에 등장한 MD-88 여객기는 MD-82 기종을 기반으로 조종실에 전자식 계기(glass cockpit)를 적용한 모델이다. 


<MD-88>

MD-80 미국 국내선을 석권
이처럼 MD-80 시리즈는 경제성이 높은 기종으로 1980년대 미국 국내선 시장을 석권했다. 경쟁사인 보잉은 727 여객기의 운항승무원을 2명으로 줄인 보잉 727-300 기종을 개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MD-80 시리즈와 경쟁하기에는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1984년에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적절한 시기에 맞춤형으로 등장한 MD-80 시리즈는 판매에 호조를 보였다. 연간 최대 150대의 판매를 어어 가던 MD-80 시리즈는 1992년 3월 23일, 누계 1,000번째 기체가 알래스카항공(Alaska Airlines)에 인도됐다. 한편 같은 해 6월 11일에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에 인도된 MD-83 여객기는 DC-9 이후 더글러스에서 생산한 2,000번째 쌍발 제트 여객기이다.
 
1979년부터 1999년까지 20년 동안 1,191대가 판매된 MD-80 시리즈는 전성기에 더글러스가 누렸던 아성을 다시 한 번 재현한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1985년 8월에 MD-82 기종을 처음 도입해 국내선 및 일본 등 단거리 노선에 주로 투입했다. MD-82 기종은 높은 연비, 낮은 소음, 넓고 편안한 좌석을 갖춰 쾌적한 기종으로 인기가 높았다. 1980년대 중반에 국내선에 취항하던 보잉 707 여객기를 대체한 MD-82/MD-83 기종은 모두 16대가 도입됐다. 중단거리 노선에서 장기간 취항한 MD-82/MD-83 기종은 2000년에 보잉 737-800/-900 기종이 도입되면서 차츰 일선에서 물러났다. 


<MD-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