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음속 돌파! 척 예거, 별이 되다

척 예거(Chuck Yeager·1923~2020·사진)가 세상을 떠났다.
세계 2차 대전 속 불시착에서 살아 돌아와 음속 장벽을 돌파했으며, 이후 베트남전 참가까지 전설과도 같은 일생을 보낸 그는 지난해 12월 7일 향년 97세로 타계했다.
예거는 미 공군의 시험 비행 조종사로서 1947년 10월 실험용 항공기 ‘Bell X-1’을 타고 인류 최초로 음속의 장벽을 돌파했다. 당시 B-29 폭격기에 탑재되어 1만3천미터까지 올라간 ‘X-1’은 마하 1.06(약 1,130㎞/h)의 속도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음속 장벽 돌파로 우주와 스타워즈, 인공위성으로의 길을 열었다”고 2007년 회고한 바 있다.
예거는 자신의 표현으로 “연구 비행”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끝없이 도전하는 조종사였으며, 타고난 전사이기도 했다. 첫 음속 돌파 6년여 후 음속의 2배 속도로 비행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으며, 시험 비행 조종사 경력의 막바지에는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훈련에 도움을 주었다. 최초의 미 정부 소속 시험 비행 조종사 중 한 명이 되기 전 2차 세계대전 동안 적어도 12대의 독일 비행기를 격추했으며, 20년이 지난 후 베트남 상공에서 127회의 전투 비행 임무를 수행한 전설이었다.


Photo : USAF

전설의 시작, 척 예거의 일생과 전투
수많은 ‘최초’의 삶을 살아온 예거는 찰스 엘우드 예거(Charles Elwood Yeager)라는 이름으로 1923년 2월 13일 웨스트버지니아주 미라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부였고 다섯 자녀 중 둘째였던 그는 사냥과 낚시를 하며 자랐는데, 후에 그는 12살 이전에 이미 흑곰 26마리를 사냥했다고 주장했다.
어린 예거가 비행기를 본 것은 사냥을 하다 머리 위 높게 지나칠 때 뿐이었다. 1991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비행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시력, 수학에 대한 재능, 사냥꾼의 본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최고의 전투 조종사 들이 공유하는 자질이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성공을 아버지의 덕으로 돌렸다. 예거는 아버지 앨버트 예거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은 채권과도 같았습니다. 내뱉은 말은 꼭 지켜야했고, 유년 시절 자신과 남매들에게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마치라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 남매는 모두 맡은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이들 치고는 꽤나 심한 훈육을 받았습니다.”


Photo : chuckyeager.com
 
예거는 1941년 9월 미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US Army Air Corp)에 입대했다. 그는 항공기 정비사로 교육을 받고 3개월 후 발발한 세계 2차 대전에 항공기 정비병으로 참전했다. 1942년 봄 그는 정비하던 쌍발 훈련기의 승객으로 첫비행을 경험에서 구토를 했다. 예거는 70여년이 지난 뒤 첫 비행 경험을 특별히 기억나지않고 구토 등은 신경쓰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유럽 상공에서 비행하는 ‘P-51 머스탱’ 전투 조종사로 성장했다. 1944년 3월 출격에서 처음으로 적기를 격추했는데, 후에 그는 “생각보다 훨씬 쉬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첫 격추 다음날 그의 8번째 출격에서 독일 전투기 3대가 비행 중인 예거의 무스탕을 급습했다. 당시를 떠올린 예거는 “제 비행기와 작별했죠”라고 말했다. 격추당한 그는 한쪽 다리에 총알이 박히고 한 손에 금속 파편이 박힌채 낙하산으로 땅에 내렸다. 그는 가벼운 부상일 뿐이었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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