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교 기장의 Flight Bag (3)





[조종 중 위급환자가 발생했던 이야기]

민항 조종사 생활을 하다보면 갑작스런 상황에 조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럴 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조종사 한 개인의 역량을 떠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종속변수들도 함께 도와줘야 한다. 예를 들어 동료 조종사들 간의 훌륭한 의사소통(CRM)이 이뤄져야함은 물론, 항공기 정비 상태도 좋아야 한다. 이 외에도 출발 및 목적지 공항 기상상태 등 안전운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모든 요소가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안전운항은 거의 보장돼 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요소가 호의적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따라서 조종사들은 만약에 생길 수 있는 비우호적인 요소에 대한 대비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 승객 건강 문제
위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가 바로 승객들의 협조다. 여기서 말하는 승객의 협조란 항공법에 명시된 사항 외에도 승객들 개개인의 건강을 포함하는 뜻이다.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듯 승객의 건강 문제로 항공기가 목적지공항이 아닌 출발공항 또는 항로상의 예비공항으로 항로를 변경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사실 민항 조종사들에게 이런 상황은 스트레스로 남는다.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다른 공항으로의 긴급착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일단 해당 항공사가 지불해야 할 재정적 손실이 적지 않고, 다른 승객들이 치러야 할 시간적, 물질적인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물론 환자 본인으로서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고 인명이 정말로 중요한 사항이지만 여러모로 긴급착륙은 그 갑작스러움에 있어 안전운항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다.

 
승객 건강 문제로 인한 긴급 착륙 경험
나 역시 민항 30년의 생활 중 승객 건강 문제로 긴급 착륙을 경험한 경우가 두 번 있다. 그 중 한 번은 십여 년 전 대만 항공사에서 근무했을 때 발생했다. 대만 타이페이 공항을 이륙해 암스테르담을 최종목적지로 하는 비행이었다.

대만을 떠나 항로를 잡고 일곱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고 지리상으로는 터키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때 객실장으로부터 다급한 호출이 들어왔다. 운항 중 객실로부터의 호출은 항상 어떤 사안이 결부돼 있기 때문에 달가운 호출이라기보다는 긴급한 호출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을 들어보니 60대 남자 승객 한 분이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호흡 곤란을 느끼고 있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평화로웠던 조종석 분위기가 갑자기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좀 더 자세한 상황을 듣기 위해 객실장을 조종석으로 불러들였다. 객실장 말에 따르면 환자가 발생한 즉시 객실 매뉴얼에 따라 초기 대응은 잘 이뤄진 상태였다. 우선 환자를 편안한 공간에 격리시키고 기내 방송을 통해 탑승 승객 중 의사 한 분을 찾아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의사의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비상착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전언이었다.



나는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수고 중인 의사 분을 조종석으로 모셔오도록 객실장에게 지시한 다음, 부기장에게는 환자 발생과 관련한 운항 지침을 찾아보도록 지시했다. 십 분정도 지나자 객실장이 의사 분과 함께 조종석에 들어왔다. 의사 분의 의견을 들어보니 현재 아주 위급한 상황은 아니나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목적지까지 다섯 시간 남은 비행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비상착륙을 권유한다고 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이와 같은 비상착륙은 아주 신중하게 결정될 사안이기 때문에 나는 회사 운항본부에 상황을 전파함과 동시에 회사의 의료 상담 의사와 조종석에 들어온 의사 간 직접 대화할 수 있도록 위성전화를 연결시켜줬다. 사실 인명과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에 의사나 조종사나 비행 속행에 대한 여부는 극히 신중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약 5분여의 통화가 끝나자 승객 의사는 나에게 환자상태를 고려해 긴급착륙하는 편이 안전한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나는 더 이상의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고 긴급착륙을 결정했다. 기장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갑작스러웠지만 무사했던 착륙 과정
어느덧 비행기는 터키 영공을 한참 지나 이스탄불 부근을 통과하고 있었다. 위치를 고려했을 때 가장 가까운 공항은 터키 이스탄불 공항이었지만 긴급 착륙 시에는 여러 사항을 고려해 착륙 공항을 선정한다. 우선 착륙 공항의 기상 상태, 활주로 길이, 착륙 후 지상조업 서비스 즉 연료 재급유, 환자에 대한 의료지원 가능 여부 등 최소한 십여 가지의 항목을 하나하나 점검한 뒤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시 제일 가까웠던 이스탄불 공항은 우리 회사 취항지가 아니었던 관계로 착륙 후 지상 협조 부분에 애로가 예상됐다. 나는 다시 의사와 통화해 환자의 상태가 앞으로 두 시간 정도 비행을 해도 괜찮겠는가를 확인한 후 회사 취항지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긴급착륙 공항으로 선정하고 회사 운항센터에 통보했다.

이어서 In Flight Medical Emergency를 선포하고 관제사에게 비엔나 공항으로의 항로허가를 요청했다. 조종석 분위기가 갑자기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시간 반 후면 착륙이 예상되는데 이것저것 준비하고 찾으려면 시간상으로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비엔나 공항은 내가 가본 적이 없는 공항이었기 때문에 각종 착륙에 관련된 차트를 꼼꼼히 살펴보는 등 세밀한 브리핑이 요구됐다. 착륙 후 택싱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어느 곳에 주기해야하는가 등 준비도 해야 했다. 더군다나 객실에는 상태가 위중한 환자가 탑승 중임으로 주기적으로 환자 상태를 확인해야하는 등 해내야 할 일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있었다.

이윽고 착륙 예정시간이 한 시간 이내로 다가오면서 기장 안내 방송을 재차 실시했다. 성숙한 승객들은 승무원들에게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상황을 이해하고 협조해줬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사이 착륙 예정 15분 전 쯤이 되면서 본격적인 접근관제가 시작됐다. 다행히 공항 기상상태도 양호했고 기내 환자를 위한 지상의 모든 준비가 돼 있어 안전하게 착륙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비엔나 공항의 착륙 활주로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록 예정된 계획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큰 문제가 없도록 협조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안전하게 착륙 후 지정된 게이트로 이동하자 게이트 옆에 주차된 앰뷸런스 옆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기내환자 최초 보고 후 약 두 시간 여 동안 긴급 착륙 상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안전하게 종료됐다. 비록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긴장됐던 일련의 In Flight Emergency였지만 승객의 안전 확보라는 기장의 제1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자긍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도감도 잠시 여전히 기내에는 수백 명의 승객들이 최종 목적지로의 비행을 갈망하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 했다. 그렇게 나는 최종 목적지를 위한 비행 준비를 위해 주섬주섬 조종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 정문교(항공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