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여객기의 계보(47) Boeing 767(Pt.2)

제트여객기의 계보(47)
Boeing 767(Pt.2)

 


글/ 이장호
 

2차대전이 끝나고 민간항공이 다시 부흥하던 무렵 무렵 더글러스(Douglas)와 록히드(Lockheed)는 민간여객기 시장을 과점하고 있었다. 더글러스는 DC-3 여객기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 “DC(Douglas Commercial)”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여객기를 선보였다. 경쟁업체인 록히드는 L-049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이라는 걸작 여객기를 내놓고 계속 성능을 계량하며 장거리 노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더글러스와 록히드의 대표적인 기종 DC-7, L-1649 콘스텔레이션 스타라이너는 왕복엔진을 탑재한 여객기 중 최고의 걸작 기종으로 194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누렸다.

반면 보잉은 스트라토크루저(Stratocruise) 기종 하나만으로 경쟁사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보잉 B-29 폭격기의 우수한 기술을 물려받은 스트라토크루저 여객기는 분명히 기술적으로는 앞서가는 기종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 공군이 독립하고 전략공군이 창설되면서 보잉은 자연스럽게 전략폭격기와 공중급유기 사업에 집중했다. 회사의 주력사업이 군용기 분야에 집중되면서 의도치 않게 보잉의 민간 여객기 사업은 뒤로 밀려났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 여객기는 불과 56대로 생산이 중단됐다.

707로 살아난 보잉 민항사업
이처럼 군용기 사업에 주력하던 보잉이 오늘날과 같은 대표적인 여객기 제작 전문업체로 거듭나게 된 것은 보잉 B-47 전략폭격기 개발이 큰 계기가 됐다. 고속비행으로 적진을 돌파하도록 개발된 B-47 전략폭격기는 1940년대 당시에 획기적인 첨단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후퇴익(swept wing) 기술과 제트엔진을 조합한 고성능 항공기였다.

보잉은 B-47 전략폭격기를 개발하면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해 보잉 707 여객기를 자체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707은 초창기 제트여객기 시장에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터보프롭 엔진을 선택한 록히드는 민간 여객기 시장에서 실패, 더글러스 역시 급성장하는 보잉을 뒤따라가는 상황에 놓였다.

707 여객기와 KC-135 공중급유기가 동시에 대량생산되는 성공을 거두자 보잉은 여세를 모아 다음 여객기를 내놓았다. 국내선 중단거리 기종으로 개발된 보잉 727 기종은 민간 여객기 전문업체로서 보잉을 확실하게 자리매김시켰다. 앞서 등장한 707 여객기보다 2배 가깝게 판매된 727 여객기는 혁신적인 3발 제트엔진 기종으로 미국 국내선의 제트화를 앞당겼다. 이어 등장한 보잉 737 여객기는 보잉에서 선보인 여객기 중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판매된 기종으로 처음 등장할 무렵에는 더글러스 DC-9, BAC 1-11 여객기와 힘겹게 경쟁했다. 그러나 점차 성능이 개량되면서 보잉의 대표적인 기종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보잉 747 점보여객기는 고성능 터보팬 엔진을 탑재한 대형여객기로 이중통로기 여객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747 여객기가 등장한 지 3년 만에 세상에 선보인 에어버스(Airbus) A300 여객기는 보잉이 독주하던 제트여객기 시장에 유일한 대항마로 등장했다. 비록 설립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1960년대에 지속적으로 성장했던 민간항공시장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유럽 공동으로 에어버스 A300 여객기를 내놓을 수 있었다. 쌍발 기종인 에어버스의 가장 큰 경쟁력은 높은 경제성으로 후속기종 A310 여객기가 개발되면서 운항비용이 저렴한 경제적인 기종이 민간 여객기 시장의 흐름을 주도했다. 반면 미국의 보잉, 더글러스는 경제성이 높은 중거리 쌍발 여객기 시장에 내놓을 기종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보잉, 새로운 여객기 콘셉트 연구
이러한 상황에서 보잉은 1970년부터 이탈리아의 국영 항공업체 아에리탈리아(Aeritalia)와 공동으로 소음발생이 적고 단거리 활주로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여객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QSH(Quiet Short Haul)라고 명명된 새로운 여객기는 길이와 주익의 크기가 40m로 707 여객기와 비슷한 크기였다. 주익에 고성능 대형 플랩(flap)이 설치된 QSH 여객기는 180~200명이 탑승하는 중단거리 기종으로 항속거리는 1,800~2,500nm(약 3,300~4,600km) 정도로 새로운 여객기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보잉과 아에리탈리아는 QSH 여객기의 개념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정도 규모의 여객기가 시장에서 충분한 판매량을 가지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여객기 시장수요와 개발기술의 방향성으로 판단할 때 장래에는 신형 중거리 여객기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확신했다. 




보잉은 QSH 여객기 개념연구에 이어 자체적으로 "7X7"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급격한 기술 변화를 보여준 QSH 여객기와 달리 7X7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형태를 가지면서 경제성이 높은 140~150인승 여객기를 연구하는 목적이 있었다. 당시는 이미 더글러스 DC-10,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Tristar)와 에어버스 A300 여객기가 등장한 시기였기 때문에 새로운 기종을 준비하는 보잉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1973년까지 진행된 7X7 프로젝트를 통해 보잉은 쌍발 및 3발 여객기를 동시에 검토했다. 한편, 고객 항공사의 수요를 조사한 결과 미국의 항공사는 쌍발보다는 3발 여객기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할 때 7X7 프로젝트는 확실히 727 여객기의 후계자로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보잉의 입장에서는 유럽에서 등장해 미국 진출에 성공한 에어버스 A300 여객기를 강하게 의식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보잉은 140인승 쌍발 여객기 개발에 주력했다. 그러나 고객 항공사는 180인승 3발 여객기에 관심을 보였다. 보잉이 공개한 "751-666" 모델은 엔진을 주익 중간에 설치하고 세 번째 엔진은 727 여객기처럼 동체의 뒷부분에 배치했다. 이러한 엔진의 배치에 따라 꼬리날개로 T자형을 답습했다. 객실 배치는 여객수요 증가에 대비해 종전의 6열(3+3) 배치에서 7~8열 배치를 검토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잉의 7X7 프로젝트는 상당히 혁신적이고 독특한 기종이었다. 특히 소음을 줄이기 위해 엔진을 주익의 중간에 끼워넣는 방식은 초창기 제트전투기인 영국의 미티어(Meteor)와 유사했다.

A310의 역습, 결국 쌍발로
그러나 1978년 7월, 에어버스가 A310 여객기 개발을 발표하면서 모든 상황이 크게 변했다. 1970년대에 크게 발전한 고성능 터보팬 엔진의 가능성을 굳게 믿었던 에어버스는 확고하게 쌍발 여객기의 방향을 견지했다. 이러한 확신은 에어버스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요인 즉 우수한 기술력에 바탕이 있었다.

에어버스가 2명의 조종사로 상업운항이 가능한 A310 쌍발 여객기 개발을 발표하자 보잉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비행안전성을 감안할 때 보잉과 미국의 주요 항공사는 항공기관사를 포함하는 3인 승무, 3발 엔진을 포기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여겼지만, 유럽에서는 2인 승무, 쌍발 엔진 여객기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성 측면에서 승부가 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운항비용은 A310 여객기가 훨씬 유리했다. 이에 따라 보잉은 3발 여객기 개념을 포기하고 "보잉 767"이라는 이름으로 신형 여객기 개발을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기존 727 여객기를 대체하는 국내선 중단거리 여객기 시장을 목표로 하면서 7X7과 더불어 "7N7" 계획을 신설해 병행했다는 점이다. 단일통로기 여객기은 7N7 프로젝트는 선배격인 7X7의 조종실과 비행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같은 조종사가 두 기종을 모두 운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점은 항공사로 하여금 보다 유연하게 조종사 인력을 운영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할 수 있었다. 훗날 보잉 757로 구체화된 7N7 프로젝트는 7X7보다 시작이 늦어진 관계로 여객기 번호는 앞섰지만 실제 기종은 늦게 출시됐다.




독특한 외관을 가진 7X7은 고객 항공사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면서 점차 무난한 설계로 변화했다. 마침내 확정된 설계안은 쌍발 여객기인 737 여객기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737-300 기종이 출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기종인 A300 쌍발 여객기를 강하게 의식하고 개발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보잉의 개발팀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여객기를 연구해 얻은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767 여객기와 에어버스 여객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체의 크기에 있다. A300 여객기는 유럽의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단거리 노선에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게 넓은 객실에 많은 승객이 탑승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이와 달리 767 여객기는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데 중점을 뒀기 때문에 동체의 지름이 축소됐다. 얼핏 보면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 767 여객기의 동체는 A300 여객기보다 약간 작다. 일반석 기준으로 A300은 8열(2+4+2) 배치가 가능한 반면 767은 7열(2+3+3) 배치가 일반적이다. 또한 767은 동체 지름이 작은 대신 주익의 면적이 넓은 특징이 있다. 주익이 크면 고고도에서 순항비행을 할 때 성능이 향상된다. 특히 나중에 동체를 확대
· 연장해 개량형을 개발할 때에도 유리하다. 이륙중량이 증가하더라도 주익을 변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기 저항을 줄이고 주익의 양력발생을 높인 767 여객기는 비행성능이 높을 뿐 아니라 비행 중 연료가 절약돼 항속거리가 연장되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A300 여객기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운송할 수 있었지만 공기저항이 증가하면서 순항속도와 항속성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300 여객기는 동체가 크기 때문에 LD-3 대형 컨테이너를 탑재할 수 있었다. LD-3 컨테이너는 DC-10, L-1011 기종에 주로 탑재됐으며 A300 기종의 활용도를 높여주는 커다란 장점이었다.




이처럼 767, A300 기종은 동체 지름 규격에 따른 화물실 적재능력에 차이가 있었으며, 미국 항공사 팬암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은 화물실에 LD-3 컨테이너를 탑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767 여객기의 구입을 포기하고 A300/310 기종을 구입하기로 결정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사실 707 여객기를 최초로 도입하면서 제트여객기 시대를 선도한 팬암항공은 보잉 747 프로그램에서도 확실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DC-10, L-1011 기종에 탑재됐던 LD-3 대형 컨테이너를 탑재할 수 없는 767에 대해서는 큰 불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