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여객기의 계보(49) Boeing 757(Pt.1)

제트여객기의 계보(49)
Boeing 757(Pt.1)




글/ 이장호

1957년에 등장항 보잉(Boeing) 707 기종은 미국에서 개발된 최초의 제트여객기다. 윌리엄 앨런(William Allen) 회장의 큰 결심으로 시작된 보잉 707 여객기의 성공은 만년 3위에 머물던 보잉을 단숨에 1위 업체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유럽이 보유하고 있던 제트여객기의 주도권을 미국으로 가져오는데 기여했다.

미 공군의 KC-135 공중급유기로도 성공을 거둔 707 여객기는 이처럼 보잉이 민간여객기 전문업체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지만 자체적인 투자금액도 증가하면서 전체적으로 회사의 수익이 크게 늘지는 못했다.


다다른 727의 한계
1세대 제트여객기로 불리는 707 기종의 뒤를 이어 1962년 선보인 보잉 727 기종은 보잉 제트여객기 발전사에 가장 결정적으로 공헌한 기종이다. 727 여객기 전까지 미국에 등장한 여객기 중에서 가장 성공한 기종이라는 더글러스(Douglas) DC-3 여객기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수송기로 납품된 수량을 제외한 순수 민간 여객기 생산량은 1,000대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727 여객기의 1,831대라는 판매 기록은 매우 놀라운 수치다.

727 여객기가 높은 판매실적을 달성한 원인은 그동안 미국 국내선에서 사용됐던 구형 여객기를 대체하는 데에 적합한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국내 중단거리 노선을 겨냥해 개발된 727 여객기는 시설이 부족한 지방공항에서도 운항이 가능하도록 편의장비가 추가됐고 이러한 점이 구형 여객기와 차별화되면서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판매실적에서 약 1,000대 정도는 강력한 라이벌 에어버스 A300B 여객기가 등장한 이후에 달성한 실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에어버스 A300B 여객기는 쾌적한 탑승감, 높은 연료효율과 더불어 비행소음이 낮은 기종으로 727 여객기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다.


<727>

1970년대 초반, A300B 기종과 같이 소음수준이 낮고 폭이 넓은 여객기(wide body airliner)가 등장하면서 보잉은 727 기종의 개량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 세게적인 석유파동 이후 연료비용이 높아지면서 항공사들은 연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보잉은 727 기종에 연비가 향상된 프랫 앤 휘트니(P&W) JT8D 터보팬 엔진을 탑재했지만 A300B 여객기의 제너럴 일렉트릭(GE) CF6 터보팬 엔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CF6 터보팬 엔진은 보잉 747 점보 여객기에 탑재하기 위해 개발된 만큼 지름이 대폭 커지면서 연비도 크게 높아진 고성능 엔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727 여객기에 탑재된 JT8D 터보팬 엔진은 미 해군 A-4 스카이호크(Skyhawk), A-6 인트루더(Intruder) 공격기에 탑재된 P&W J52 터보제트 엔진을 민간 여객기용으로 개조한 엔진으로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특히 3발 제트여객기인 727 여객기가 민간 공항에서 이착륙할 때에는 웬만한 제트전투기에 맞먹는 큰 소음이 발생했다. 1960년대 727 여객기가 등장하고 미국 국내선 운항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지방공항의 운항편수가 크게 증가했지만 조용한 지방공항에서는 소음이 문제가 됐고 1970년대 초부터 미 연방항공청(FAA)을 중심으로 민간 제트여객기의 소음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더구나 승객이 많지 않은 지방노선의 경우 쌍발 엔진의 보잉 737 및 더글러스 DC-9 여객기의 수요가 늘고 있었다. 한 때 베스트셀러 기종이었던 727 여객기도 이처럼 A300B, 737, DC-9 기종의 가운데서 고전하는 형편이 됐으며 1974년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727>

무위로 돌아간 727 개량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보잉은 기존 727-200 기종을 기반으로 연비가 향상된 신형 엔진을 탑재하고 동체를 연장해 탑승 인원을 180명으로 늘린 727-300 기종을 개발하고자 했다. 727 여객기는 높은 소음 발생과 낮은 연비와 더불어 탑승객 수요가 155명에 불과해 1970년대에 급속하게 증가하는 여행객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항공사들의 불만이 있었다. 더구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A300B 기종과 비교할 때 좌석수 측면에서 매우 불리했기 때문에 보잉에서는 동체를 연장하고 엔진을 교체하는 등 최소 비용만 투자해 대응하고자 했다.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1975년 후반에 등장할 예정이었던 727-300 개발 계획은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을 비롯한 미국 주요 항공사로부터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항공사들은 이 기종이 연비 향상치가 크지 않고 소음규제 역시 일시적인 대응만 가능한, 오래 운용할 수 있는 기종이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보잉은 이미 5,000만 달러(약 610억 원)가 투입된 727-300 개발계획을 1975년 8월 취소했다.

727-300 개발 계획과 별도로 보잉은 보잉 "7X7"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보잉 7X7 기종은 150인승 727 여객기와 360인승 747 여객기의 중간에 위치하는 이중통로기로 처음에는 3발 엔진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이처럼 7X7 기종은 727 여객기를 확대 개량한 기종으로 직접적으로 A300B 여객기의 경쟁기종이 될 예정이었다. 보잉의 입장에서는 신형 여객기 개발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727 기종을 약간만 개량해 당분간 버틸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4대 항공사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항공에서 727-300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자 당초 계획에서의 변경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보잉은 727-300 대신 보잉 "7N7" 개발 계획을 시작하게 됐다.

보잉 영업팀의 판단으로는 국내선의 여객 수요 증가에 대응해 250인승 보잉 7X7 이중통로기가 운항을 시작하더라도 하나의 통로를 가진 단일통로기 수요는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보잉 737-100/200 여객기의 탑승인원은 10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727급 후속 기종을 포기한다면 737 기종과 7X7 여객기 중간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보잉은 제트여객기 사업의 기반을 만들어준 727 여객기의 후속기종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7N7 개발의 시작
보잉 7N7 개발 계획은 1976년 1월부터 시작됐다. 727-300 기종을 다각적으로 검토했던 콘티넨탈항공(Continental Airlines)은 7N7 계획이 시작되자 미련 없이 727-300 기종을 포기했다. 7N7 개발 계획은 727-300 기종과 달리 단순하게 엔진을 바꾸고 기체를 개량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기종을 개발하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연비가 우수한 신형 엔진, 새로운 디지털 조종실, 가볍고 튼튼한 기체 구조, 공기역학적으로 개선된 기체 설계, 낮은 운항비용 등 교체 대상인 727 여객기와는 차별화되는 장점을 목표로 했다.




<7N7>


7N7 개발 계획은 707, 727, 737 기종으로 이어져 온 단일통로를 가진 동체를 그대로 활용하지만 주익, 미익과 엔진은 완전히 새로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보잉의 입장에서는 7X7, 7N7 여객기를 동시에 개발하려면 비용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급적 개발비를 줄이기 위해 7N7 기종의 동체는 기존 동체를 활용하기로 했으며 신형 디지털 조종실과 비행조종계통은 먼저 개발이 시작된 7X7 기종에서 가져오며 개발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여객기의 모든 기계장치와 전자장비가 한 곳에 모인 조종실은 객실과 비교할 때 작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개발비가 필요하다.

보잉 개발팀은 자체적으로 164인승 "모델 761-161" 기종을 검토했다. 727 여객기처럼 T자형 꼬리날개와 쌍발 엔진을 가진 "모델 761-161" 기종은 최대한 7X7 기종과 공용화를 추구했다. 평소부터 727 여객기 대체 기종에 관심을 보였던 이스턴항공(Eastern Air Lines)과 영국항공(British Airways)에 대해 보잉은 1978년 1월 새로 개발하는 "모델 761-161" 계획을 설명했다.

두 항공사 모두 깊은 관심과 함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개발 개념에 대해 두 항공사는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해 보잉을 난감한 입장에 빠뜨렸다. 이스턴항공은 미국의 중거리 노선에 맞게 2클래스 165인승 여객기를 요구했지만, 영국항공은 유럽 대륙의 단거리 노선에 적합한 단일 클래스 190인승 여객기를 요구한 것이다. 특히 영국항공은 자사의 요구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에어버스 기종 구매도 검토하고 있었다.

이에 보잉의 개발팀은 동체를 연장해 2클래스 165~175석, 단일 클래스 190석을 수용할 수 있도록 객실의 규모를 결정했다. 이러한 절충안은 이스턴항공이 당초 요구했던 객실 크기보다 다소 커졌지만 향후 미국 국내선 여객 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수정을 거친 "모델 761-177"은 7N7 개발의 기준이 됐다. 마찬가지로 727 기종의 특징은 T자형 꼬리날개는 계속 유지됐다. 이처럼 7N7 기종은 727 여객기의 후속 기종이라는 점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순조롭게 개발이 진행되면서 1978년 보잉은 다양한 고객 항공사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160인승 7N7-100, 180인승 7N7-200으로 분리해 개발을 구체화했다. 1978년 8월 31일, 이스턴항공이 확정 21대, 옵션 24대, 영국항공이 확정 19대, 옵션 12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7N7 개발이 본격화됐다.

당초 영국항공은 자국의 항공산업 지원을 위해 새로 구매하는 7N7 기종의 탑재 엔진으로 영국제 롤스로이스(Rolls-Royce) RB211-525 엔진을 검토했다. 롤스로이스 RB211 엔진은 미국의 록히드(Lockheed)에서 개발한 L-1011 트라이스타(Tristar) 여객기에 사용된 터보팬 엔진으로 160~180인승 7N7 기종에 쌍발로 탑재하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유럽에서 공동개발하는 에어버스 A300, 310 여객기는 모두 미국제 엔진을 채택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제 엔진 탑재로 결론이 났으며 영국항공은 새로 개발하는 주익의 개발에 자국의 항공기 제작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처럼 1970년대에 내리막길에 놓여있었던 영국 항공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영국 정부와 영국항공은 여객기 구매산업에서도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